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뭐에요?
< 1 >
방학이라 집에서 뒹굴 거릴 생각만 했는데 과제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도서관에 나왔다. 그 놈의 과제물은 학교를 다닐 때보다 많으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도서관에서 살아야 할 판이다. 그나저나 거의 1년 만에 도서관을 와서 그런지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리모델링을 한다고 3개월 동안 열지도 않았다. 내가 즐겨 앉았던 창가 자리도 사라진 것 같다. 밖이 시원하게 다 보여서 좋았는데. 다른 창가 자리도 이미 사람들이 다 차지한 것 같다. 나는 과제에 필요한 책을 찾아 그나마 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두 시간 쯤 지났을까 졸리기 시작했다. 과제도 꽤 열심히 조사한 것 같아서 잠깐 나가기로 했다.
나는 도서관 앞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그 곳에서 하늘을 보니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저기요?”
아까 도서관에서 본 것 같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ㄴ, 누구세요?”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날 빤히 쳐다봤다. 결국 답답했던 내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사람을 부르셨으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왜 말이 없어요?”
내 특유의 따지는 투로 그 남자에게 말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뭐에요?”
“네? 죽기 전에요? 그거야 뭐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낸다거나…… 아니 근데 이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또 아무 말이 없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물어봐서 대답해줬으면 고맙다고 인사정도는 할 수 있잖아!
“저기요, 자꾸 제 말 씹으실 거에요?”
참을성 없는 내 말을 계속 무시하는 그 남자를 보고 답답해 미치는 것 같았다. 그 때, 드디어 그 남자가 입을 뗐다.
“죽기 전에 가장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건…… 어떻게 생각해요?”
뭐지 이 남자. 대답이나 빨리 해주고 가야겠다.
“ㅁ, 뭘 어떻게 생각해요! 그걸 꼭 저한테 물어봐야겠어요?”
그 남자가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의자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아, 짜증나. 자료 조사는 내일하고 오늘은 그냥 가야지.”
나는 가방을 챙기고 도서관을 나왔다. 혹시 몰라 그 남자가 계속 있나 살펴보고 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아까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히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던 그 얼굴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소름끼쳐. 그렇게 섬뜩한 얼굴은 또 처음 봤네. 혹시 사이코 아니야?”
그 때, 그 남자의 말이 생각났다.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을 죽인다라……”
나는 순간적으로 3년 전 일이 떠올랐다.
< 2 >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친구들과도 잘 지냈었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그 아이가 전학을 왔다. 박나연이라는 아이였다. 큰 눈과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굉장히 예뻤고 전체적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안녕, 박나연이야. 캐나다에서 지내다왔어. 잘 부탁해.”
뭔가 딱딱해보였다. 선생님은 반장이었던 수진이 옆에 나연이를 앉혔다. 나연이가 전학을 온지 3일이 지났다.
“자, 그럼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
선생님의 말과 동시에 종이 쳤다. 나는 수진이와 가장 친했기 때문에 조례가 끝나고 수진이에게로 갔다.
“수진아, 매점 가자!”
“그래! 뭐 먹을 거야?”
“글쎄…… 가서 생각하지 뭐.”
“나 지갑 좀 꺼내고.”
수진이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나는 홀로 있던 나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연아, 우리 매점 갈건데 같이 갈ㄹ……”
“됐어, 안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연이는 거절을 했다. 그 때 나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우리가 학교 구경도 시켜줄게.”
“됐다니까?”
“나연아, 그래도 같이……”
“내가 됐다고 했잖아! 왜 사람 성질을 건드려? 내가 만만해 보이니?"
“ㅇ, 아니 나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화가 났나보다. 괜히 참견했나 싶기도 하고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러려고 했던 거 아니면 그냥 가. 그리고 나랑 친한 척하지마. 얼마나 봤다고 친한 척이야? 재수 없어.”
여기까지만 하고 매점으로 갔어야했다. ‘재수 없어.’ 이 한 마디가 옆에서 듣고만 있던 수진이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야, 지민이가 너 생각해서 같이 가자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됐냐? 전학 오자마자 꼭 그래야겠어? 친한 척하지 말라고? 누군 하고 싶어서 했냐? 친구도 없어서 놀아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네.”
“그럼 그냥 무시해. 너같은 애랑 친구 같은 거 안 해. 재수가 없으려니 뭐 이런 애들이 붙어?”
“이년이 미쳤나, 야! 너 말 다했어?”
“아니? 아직 남았거든? 내가 누구랑 놀던지 말던지는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안 그래?”
나연이는 세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나뒀다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수진이를 말렸다.
“수진아, 그냥 매점 가자. 화 그만 내고, 응?”
“지민아 미안한데 이대론 못 넘어가겠어.”
“수진아 그게 무슨 말ㅇ…… 수진아!!”
수진이는 나연이의 머리채를 잡으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은 핸드폰으로 이 장면을 찍기 시작했고 이 상황은 지금 조례가 끝난 옆 반 선생님이 오시면서 종료되었다. 그 날 이후로 수진이와 나연이의 사이는 멀어졌고 두 사람의 자리도 가장 먼 자리로 떨어졌다. 수진이는 전과 같이 반 애들과 잘 지냈고 나연이는 다른 반 애들과 지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나연이랑 같이 놀던 다른 반 애들이 수진이를 데리고 나갔다. 5분쯤 지났을까 수진이가 화난 표정으로 들어와 나에게 왔다.
“아니지?”
“응? 뭐가?”
“아니라고 말해. 아니라고 말하라고!!”
수진이는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왜 그래 수진아?”
그 때 종이 쳤고 정신을 차린 듯한 수진이는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수진이의 말이 거슬려서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교과서 정리를 하는 사이 수진이는 다른 애들과 나가버렸다. 왠지 수진이가 나를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입맛도 없고 해서 그냥 매점으로 가 음료수를 사들고 반으로 왔다. 음료수를 사오긴 했지만 먹기는 싫었다. 그냥 자기로 했다. 누군가 날 깨워서 일어났더니 수진이가 내 앞에 있었다.
“나랑 지금 얘기 좀 해.”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수진이는 밖으로 나갔다. 나도 재빨리 수진이를 따라 나갔다.
“수진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봤다.
“내가 아까 어이없는 말을 들어서 말이야.”
말? 아까 걔네들이 한 말인가?
“9반에 박나연이랑 같이 다니는 애들 알지? 너 걔네들이랑 친해?”
“어? 그냥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그냥 본론만 얘기할게. 네가 내 뒷담 까고 다닌다는데 사실이야?”
“뭐라고? 내가 네 뒷담을 왜해?”
“네가 우리 부모님 욕했다더라? 나 아빠 없다고?”
이건 무슨 소릴까.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수진아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ㄷ……”
“오해? 너 요즘 걔네랑 잘 붙어 있더라? 왜, 내가 아빠 없는 애라서 싫었니?”
“수진아! 난 정말 그런 말 한 적 없어!”
“닥쳐!!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수진이가 보여준 것은 카톡 캡처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내가 수진이에 대한 온갖 욕을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수진이에 대한 욕부터 시작해서 수진이 부모님 욕까지 섞여있었다. 며칠 전 9반 애들한테서 카톡이 왔었고 난 최대한 무시를 했다. 그런데 사진에는 내가 말한 적 없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건 조작이야. 나랑 수진이를 멀어지게 하려는 거야!
“진짜 실망이다, 신지민. 앞으로 아는 척 하지 말자.”
“수진아, 수진아!”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낀 나는 보건실을 들렸다가 교실로 향했다. 반에 들어서니 이미 반 애들은 날 경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힐끔 힐끔 날 쳐다봤고, 또 다른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야! 신지민, 친구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진짜 별로다. 수진이가 그동안 어떻게 참았대?”
“야,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
“야, 됐어! 더러워서 못 들어 주겠다.”
나는 나연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왜 그래? 나한테 왜 그러냐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애들이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야 신지민, 너 왜 나연이한테 그래?”
“뭐?”
나연이를 감싸준건 다름 아닌 수진이였다.
“수진아……”
“네가 나 욕해놓고 왜 나연이한테 뭐라 그러냐고. 네 잘못이잖아. 안 그래?”
울고 싶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야, 쟤 우는데?”
“참나, 지가 저질렀으면서 뭘 잘했다고 울어?”
“그러니까, 진짜 역겹다.”
반 애들은 모두 날 욕하고 있었고 나는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몰래 웃고 있는 나연이를 발견했다.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오른쪽 손은 나연이의 볼로 향했다. 때려버렸다. 정말 화가 나서 뺨을 쳐버렸다. 뺨을 때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애들은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다.
“억울해, 억울해서 미쳐버릴 거 같다고! 왜 내 말은 안 들어줘? 난 그런 짓 한 적 없단 말이야!”
정말 속상했다. 그렇게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교실을 나와 버렸다.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난 2주가량을 학교에 가질 않았다. 사실 아파서 갈 수가 없었다. 또, 2주 후엔 전학을 갔다. 그러곤 악착같이 공부만 했다. 박나연, 최수진. 그 두 사람에게 복수심이 불타올랐고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겠다고 다짐을 하며 공부를 했다.
어느새 3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그런 대학에 진학을 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억울해서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때 바보처럼 당하기만 했던 내가 짜증이 났다. 나연이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 이상한 남자가 씨익 웃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졌다. 복수심은 더 커졌고 나연이의 행방을 찾아보기로 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를 다닌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학교를 찾아갔다. 내가 전학을 간 이후로 두 사람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같은 대학까지 갈 정도로. 나는 그 두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렸고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이다?”
“너 설마, 신지민?”
나연이는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알아보기는 하네. 잘 지냈니?”
“네가 여길 어떻게……”
“최수진, 박나연! 너네한테 돌려줄 게 있어서 말이야.”
“뭔데?"
“3년 전 내가 너희한테 당했던 것들.”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나연이는 내가 귀찮다는 듯이 말을 했고, 수진이는 약간 불안한 눈으로 나와 나연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연아, 우리 그냥 말하자”
“말하긴 뭘 말해? 됐거든?”
저 두 사람, 분명히 나에게 숨기는 무언가가 있다.
< 3 >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때 가장 친했던 나연이가 캐나다로 유학을 간지도 3년이 지났다. 사실 지난 주말, 나연이가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국에 온 것이다. 그것도 우리학교에 전학을 왔다. 정말 반가워서 나연이와 작전을 짰다. 일부러 나연이를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나연이도 학교가 끝나면 재미있다고 웃곤 했다. 학교에선 싸우는 연기도 했었다. 애들 반응도 재밌었고 특히 신지민을 하루라도 빨리 떼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연이가 전학을 온 날 신지민을 떼어낼 작전을 치밀하게 짰다.
주말이 되었고 나는 나연이와 함께 놀고 있던 도중 나연이가 갑작스럽게 신지민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야, 넌 근데 걔 왜 싫어하냐?”
“그건 갑자기 왜?”
“아니 별로 나쁜 애거나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네가 싫어하니까 궁금해서. 너 원래 애들이랑 잘 지냈었잖아. 안 그래?”
“그냥.”
“뭐?”
“그냥 짜증났다고.”
“하여튼 최수진. 야, 그럼 걔 확실히 떼어낼래? 좋은 방법이 있긴 있는데.”
“뭔데?”
“내가 캐나다에서 썼던 방법인데 효과는 70% 정도? 어때, 해볼래?”
나연이가 알려준 작전대로 신지민을 떼어내기로 했다. 나연이가 새로 사귄 친구들도 날 도와주었다. 일단 신지민에 대해 반 아이들에게 나쁘게 말을 했다.
“야 신지민, 친구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진짜 별로다. 수진이가 그동안 어떻게 참았대?”
“야!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
“야! 됐어, 더러워서 못 들어 주겠다.”
반 애들은 내 말을 믿었는지 신지민이 들어오자마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신지민은 나연이에게 다가가 따지듯이 말했다.
“왜 그래? 나한테 왜 그러냐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반애들은 두 사람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야, 신지민! 너 왜 나연이한테 그래?”
“뭐?”
나는 신지민이 아닌 나연이를 감쌌다. 나연이가 말한 각본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수진아……”
“네가 나 욕해놓고 왜 나연이한테 뭐라 그러냐고. 네 잘못이잖아. 안 그래?”
이 연극을 끝마칠 때가 되었고 내 맘을 알아주는지 신지민은 울기 시작했다.
“야, 쟤 우는데?”
“참나, 지가 저질렀으면서 뭘 잘했다고 울어?”
“그러니까, 진짜 역겹다.”
반 애들은 모두 신지민을 욕하고 있었다. 나연이는 자신의 각본대로 흘러가는 게 재밌었는지 살짝 웃고 있었다. 신지민은 계속 울었고 오른손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나연이의 왼쪽 뺨을 세게 때렸다. 애들은 물론, 나와 나연이까지 벙쪄 있었다.
“억울해, 억울해서 미쳐 버릴 거 같다고! 왜 내 말은 안 들어줘? 난 그런 짓 한 적 없단 말이야!”
신지민은 이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정신을 차렸고 나연이에게 갔다. 반 애들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야, 괜찮냐?”
“저, 시발년이…… 야, 수진아. 나 지금 저년한테 맞은 거냐? 와, 내 각본 쩌는 듯. 어떻게 내가 말한 그대로 되냐?”
“너 캐나다에서도 맞았었냐?”
“응, 그 때도 지금이랑 상황 똑같았어.”
“야, 너 볼 부었다. 보건실 가자.”
그날 이후로 신지민은 2주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자, 얘들아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좀 해봐!”
담임선생님의 말에 애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지민이가 그동안 아파서 학교에 못 나왔는데 오늘 전학을 갔어. 갑작스럽게 가서 마지막 인사는 못했어. 다들 그렇게 알고, 이번 주 주번은 11번이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자!”
담임은 잠깐 나를 불렀다. 신지민에 대해서 물었지만 내 대답은 ‘몰라요!’ 이 한 마디뿐이었다. 신지민,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 날 이후로 신지민이란 이름과 신지민이라는 사람은 나와 나연이의 머리에서 깨끗이 잊혀져갔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성적이 비슷했던 나연이와 함께 같은 대학에 다녔다. 대학 생활을 하던 도중 갑자기 신지민이 우리를 찾아왔다.
< 4 >
“나연아, 우리 그냥 말하자.”
“말하긴 뭘 말해? 됐거든?”
저 두 사람, 분명히 나에게 숨기는 무언가가 있다. 수진이는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무언가를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사람처럼. 반면에 나연이는 꿀릴 게 없다는 듯 당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 두 사람이 그럴수록 나는 더욱 더 두 사람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다. 나연이보다는 수진이를 통해서 알아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수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진아, 네가 숨기고 있는 게 뭐야?’
10분쯤 지나자 답장이 왔다.
‘무슨 소리야? 숨기다니…… 그런 거 없어!’
‘아까 너 되게 불안한 거 다 보였어. 네가 아까 말하려던 게 뭐야?’
‘그런 거 없다고 했잖아.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쉽게 말을 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꽤나 골치 아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그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세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말해줄때까지 나 계속 이렇게 너 괴롭힐거야.’
수진이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내일 2시에 너희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나. 기다릴 거야.’
10분이 지나도록 답은 오질 않았다.
‘그럼 오는 걸로 알게. 내일 봐.’
오후 2시가 되었다. 막상 수진이를 기다리고 보니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날 배신했던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무슨 일인지는 알아내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왔다. 후회감이 들던 순간, 카페 문이 열리고 수진이가 들어왔다. 안색이 창백했다.
“미안해.”
수진이는 다짜고짜 사과를 했다.
“뭐가 미안한데?”
“처음부터 다 짜고 친 거였어.”
“뭐?”
“나연이랑 나랑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어.”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럼 처음 본 사이가 아니라는 거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싫었어. 그래서 너 나한테서 떼어버리려고 나연이랑 짠 거야. 나연이한테는 그냥 싫다고 말했는데, 솔직히 같이 다니면서 난 항상 너한테 비교당하면서 살았어.”
“누가 우리를 비교했다고 그래? 난 비교 같은 거 당한 적 없어.”
“그랬겠지. 넌 완벽했어. 나보다 공부나 예체능 같은 것도 잘했고 심지어 친구관계, 집안도 빵빵했어. 그래서 질투 났어. 그리고 비교는 네가 아닌 내가 당했으니 넌 당연히 모르겠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수진이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어쩔 줄을 몰랐다.
“선생님도, 애들도 다 내가 아닌 널 좋아했어. 그러면 그럴수록 난 너와 더 친해졌어. 널 비참하게 떨어뜨리기 위해서.”
“이런 말을 지금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사과하려고. 사실 나 사과 같은 거 못하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미쳤던 것 같아.”
나도 답답했다. 피해자는 난데 수진이는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거슬렸다.
“난…… 난 너네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쳤어. 꿈에 너 네가 나와서 잘 수가 없었어. 너에게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꿈에서 네가 날 욕할까봐 잠을 못 잤어.”
“그러니까 사과하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잖아.”
그 때 또다시 카페 문이 열리고 나연이가 들어왔다.
“야, 최수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제 그만 밝힐 때도 됐잖아. 얘가 일부러 우리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안 나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최수진, 너한테 예의라는 것도 있었냐? 너 3년 전까지만 해도 저년 싫다고 난리쳤었어. 기억 안나?”
“맞아, 그랬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답답해지는데 어떡하라고! 너도 이제 그만 사과해.”
“야! 신지민, 너 뭐한 거야? 얘한테 뭐라고 했길래 얘가 갑자기 이래?”
갑자기 불똥은 나에게 튀었다. 미안한 구석도 없이 뻔뻔하기까지 한 나연이를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박나연, 너 따라 나와!"
“하,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쫄 거 같냐? 나 아직 할 얘기 남았어!”
“닥치고 나오기나 해!”
수진이는 나연이를 억지로 끌고 나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남은 과제를 하러 도서관을 다시 갔다. 그 사이코 같은 남자는 보이질 않았다. 그때 나에게 한 의미심장한 말이 계속 거슬리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로 살인을 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그 남자를 잊고 나는 과제를 끝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들어갔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포털사이트 중앙에 있는 기사 제목이었다.
‘서울 □□구 살인사건···… 10년 전 일 복수하려다···…’
나는 그 기사에 들어갔다. □□구라면 우리 동네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일지가 궁금했다. 기사의 내용은 이러했다.
‘□□구에 사는 김씨(28)는 지난 18일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박씨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살해 동기는 10년 전 김씨가 박씨와 그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유였다.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근처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박씨를 살해할 계획을 짰다. 김씨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기사에는 김씨라는 사람의 사진이 나와 있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핸드폰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방학 첫 날 만났던 그 남자와 김씨의 얼굴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도서관에서 만난 이유는 살인을 하려고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을 하려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실제로 살인을 했다. 그리고 자살까지 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한 달여 동안 그 남자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그 남자는 잊혀져갔다.
또다시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우린 처음 만날 때처럼 서로를 이해해줬다. 아직도 나연이와의 사이는 좋지 않다. 나연이는 계속 나와 수진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나는 3년 만에 도서관을 갔다. 그동안 학업에 바빠서 도서관을 올 겨를이 없었다. 사실 김씨 생각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문득 3년 전 기사의 뒷내용이 궁금해졌다. 그 때 들어갔던 포털사이트에 ‘서울 □□구 살인사건’이라고 쳤더니 수십 개의 기사가 나왔다. 나는 그 중 한 개의 기사를 읽었다.
‘김씨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내 말을 들어준 사람은 10년 동안 딱 한 사람뿐이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내 질문에 답을 해준 사람도 그 사람뿐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김씨가 말하는 그 한 사람이 나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김씨가 사회적인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쌍해졌다.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이기에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전화벨이 울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수진아.”
“이따가 만나는 거 안 잊었지?”
“그럼, 당연하지 늦지 마라!”
수진이와의 약속장소로 가는 도중 김씨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단 한명의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수진이도 김씨처럼 쓸쓸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직 나연이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지만 그건 차차 해결해나가기로 다짐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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