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인문책쓰기(타임캡슐2044)

9. 연재가 쓰는 연재소설

madangsoi 2015. 4. 18. 22:49

‘함께 있음’, 그 위대함과 따뜻함 속으로

 

 

 

 

 

 

 

우리는 ‘함께 있음’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다. 무엇보다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내가 짧은 세월이지만 살아가며 느껴본 바에 의하면 함께 있음의 힘은 간과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이제부터 나의 기적과도 같았던 ‘함께 있음 체험기’가 시작된다.

때는 내가 중1때인 2년 전으로 넘어간다. 정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낯설기만 했던 중학교에 입학하였던 나는 모든 생활이 마음에 안 들던 찰나였다. 새로 만난 반 친구들 또한 적응되지 않았으며 중학교의 ‘교복 문화’마저 낯설기만 하였고 이제 중학생이라는 위압감에 그저 방황하고만 있었다. 성적은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고 친구 관계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질 않던 도중 주변의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나는 나와 친구들, 혹은 주변 인물들을 비교해가며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도저히 학교 수업도 듣기 싫고, 부모님의 이래라 저래라 하는 꾸중과 잔소리들도 듣기 싫었던 나는 이젠 모두 끝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끝내려는 마음을 먹었다. 사실 이유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초반 적응되지 않았던 낯선 환경과 부모님과 학원 등 주변에서의 폭력적인 분위기. 내 주변의 모든 요소들이 나의 숨을 죄는 기분이었다. 하여튼 그리하여 찾게 된 한강 광진교. 추운 날씨였던 12월 겨울바람은 정말이지 그 당시의 내 기분과 같이 싸늘하기만 하였으며 외로움은 더해가고 있었다. 저 밑의 강물을 내려다보며 극단적인 생각들이 들고 있었다. 마음의 정리를 하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 때 한 중년의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냐고, 무슨 일 있냐고, 나쁜 마음가지고 저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 아니냐고 나에게 참견 아닌 참견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내 마음에는 그 말이 정말이지 따스한 손길과도 같았던 것이다. 나는 그 중년의 아저씨에게 신뢰를 하게 되었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설명하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 아저씨는 말없이 꼭 껴안아 주셨다. 마치 나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처럼…….

그리하여 나는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강 자전거 길을 마냥 목적지 없이 걷고 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시간쯤 지났을까. 나의 할아버지 댁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나는 그 몇 시간 만에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학원도 안가고 무작정 길을 떠나 할아버지 댁이 있는 용산구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 아무런 문제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만약 그 날 그 아저씨와 함께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그건 아마 상상하기 끔찍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함께 있음’의 소중함을 알려준 사건이 있다.

어느덧 나도 이제 16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먹게 되었고 그 나이만큼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아직 버리지 못한 아주 나쁜 습관인 학원을 가기 싫어하는 습관은 내 몸에서 빠져나갈 줄을 모르고 ‘어떻게 해야지 오늘은 학원을 빠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새로운 학년에 올라오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이강희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 친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아버지가 검찰 일을 하셔서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에 3년간 있었던 친구이며 나와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알게 된 사이이고 친하게 지낸 것은 이번년도 들어오면서 가능하게 된 일이다. 이 친구는 스페인어 실력이 수준급인 친구이다. 그런데 내가 이 친구와 친해지며 또 왠지 모를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부모님이 공부를 죽어라 시키지도 않고 그렇게 딱히 혼내는 일도 없다고 한다. 공부도 나보다 못하는 친구인데 나보다 훨씬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나의 자괴감은 더욱 커지게 되었으며, 공부만 죽어라 하던 내 자신이 성적은 또 잘 나오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여러 선생님들께 꾸지람을 듣고 기분 나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름대로 한 성격하고 기분파이기도 했던 난 그날도 역시나 학원이 가기 싫어졌다. 마침 학교에서도 종례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학원을 빠지기에는 딱 좋은 조건이었다. 집에 가는 것도 싫어지고 학원에 가는 것도 싫어진 나는 2년 전 그 날처럼 목적지 없이 한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려고 하였다.

그 때였다. 당연히 나에게 다가왔던 친구가 있었으니, 그 역시 강희였다. 나는 나처럼 보잘것없는 아이에게 손길을 건네주었던 강희가 당연히 고마울 따름이었고 같이 게임도 하고 노래방도 가자고 하기에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시간 두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의 걱정들과 고민들이 점차 사라져 가기 시작하였으며 혼자라는 두려움이 사라지게 됨을 직접 보았다. 마치 벼랑에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던 나를 잡아준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나는 두 번이나 ‘함께 있음’의 중요성과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함께 있는 것의 중요성은 벼랑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뻗는 것과 같으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만 생각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에 따라 ‘함께 있음’의 가치를 잊고 혼자 잘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나와 같이 삶에 불만을 가지고 삶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나는 이 글을 펴내는 날로써 나와 동병상련인 여러 힘든 이들에게 희망과 힘을 내라고 전해주고 싶다. 함께 있음으로써 받는 ‘힐링’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마지막으로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자 특히 현재의 초6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 나이의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성적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심지어 대학교까지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에 목메며 살아왔고, 그로인해 자괴감에 빠져있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무지함의 결과였으며 결코 초등학교 성적으로 인해 결정되는 일은 없었다.

결론은 초6에서 중2까지의 여러 동생들에게 절대로 성적에 목메지 말 것. 그리고 성적 때문에 시무룩하지 말 것. 이 두 가지를 우리나라 여러 나의 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며 그 동생들의 초보 부모들에게는 아이에게 책만한 교육이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며 아이 곁에 ‘함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어서 아시길 바라며 이렇게 나의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