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9일. 14시 53분 이수역 사당 방향.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깡마른 할아버지가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대화 중 이었다. 워낙 목소리가 쩌렁쩌렁해서 주위를 끌만큼 언성이 높았다.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식에 대한 투정을 할아버지가 하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욕하는 소리가 무척 높아지자 할머니가 지청구를 한다.
“그래서 당신이 자꾸만 애들한테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거라구요!”
“무슨 소리야? 자식이 잘못하면 어른이 옳은 소리, 쓴 소리 하는 게 당연한 거지!”
노인의 목소리는 고은규 장편소설 [트렁커]를 읽는 나를 포함한 지하철 승객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고성의 웃음과 함께 장난기어린 목소리가 승강장을 울렸다. 그때 예의 그 노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뭐하는 거야? 여기가 자네들 안방인가? 요즘 지나치게 대중이 모이는 곳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청춘들이 많다더니 여러 사람 있는 데서는 좀 조용히 해야지. 원, 분별이 그리 없어서야.”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쩌렁쩌렁한 노인의 목소리에 그만 다정한 장난을 그만두고 바로 옆 신문 가판대에 서서 쭈뼛쭈뼛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조용히 서 있었다.
14시 57분.
사람들은 다시 조용히 사당행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5-3에서 나는 4호선 지하철이 동작역에서 뒤차가 앞차를 잡아먹는 듯한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내 옆의 신사도 같이 모니터를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와, 뒤차가 앞차를 잡아먹고 있구만!”
친구로 보이는 같은 또래의 신사가 대꾸했다.
“앞차가 연착되어서 뒤차가 진입하지 못하고 있구만! 좀 더 기다려야겠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잠시 동안의 정적을 깨고 예의 노인이 옆 의자에 앉은 한 노인과 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승객들은 추운 겨울의 지루한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요즘 어른들이 어른 노릇을 못하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간다 말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를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 이겁니다.”
“시절이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허허!”
“시절은 무슨 시절입니까? 시절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사회의 어른,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훈육해야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참, 대단하십니다. 젊은이들에게 할 말 다하시고!”
“그게 나이 든 사람들의 몫이지요. 할 말은 하고 잘못된 것은 지적해야 사회가 바로 돌아갑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인의 목소리는 더욱 더 커졌다. 일약 우리 시대의 어른론으로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그리 틀린 말씀은 아니었지만 예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귀에 거슬렸다. 노인에 대한 거부감은 지체되고 있는 지하철 4호선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14시 59분.
예의 노인은 우리 시대의 어른론을 여전히 펼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참 대단하고 멋진 노인이었다. 예의 어른론을 쩌렁쩌렁하게 펼치던 노인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의 아내는 조금 떨어져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 역력한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노인은 신문 가판대 옆에서 조용히 지하철을 기다리던 예의 그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순간 노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틈을 타서 승객들의 시선이 노인의 발걸음을 수상하게 쫓고 있었다. 마치 카메라의 앵글처럼 집요하게 모든 승객들의 시선이 노인의 발걸음을 훑고 있었다. 노인은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지휘를 하듯이 예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른이 얘기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가는 거야. 사람들 많은데서 심하게 애정 표현, 장난치지 말고 알았어.”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는 순간 얼굴이 불어졌다.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은 어이없다는 듯 침묵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노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사람이? 어른이 말씀 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수긍을 해야지. 왜 말이 없어. 어른 말을 무시하는 거야?”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이 노인에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냥 가세요. 저희 할아버지도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아까 지적하셔서 조용히 서 있는데 왜 또 말씀을 하셔서 사람 무안하게 하세요.”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을 말렸다.
“이 젊은이가! 그래, 어른이 어른 노릇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야?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가면 되지? 뭐가 그리 억울해. 참, 요즘 세상 어른 노릇하기 정말 힘들다, 힘들어!”
“됐고요. 그만 하세요. 사람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요. 집에 가셔서 할아버지 자식들이나 잘 가르치세요. 아까 들어보니까 그 집 자식들도 잘 못하나 보던데……”
“뭐야? 한계가 있어! 자식들? 내가 어른 노릇하는데 감히 뭐라고? 너는 부모도 없냐? 부모도 없냐고?”
노인의 아내, 할머니가 나섰다.
“제발, 그만 좀 하라구요! 그 놈의 목소리 좀 낮추고요. 그 놈의 목소리 때문에 안에서나 밖에서나 되는 일이 없다고요. 아이구, 내 팔자야.”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을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말렸다. 노인은 계속해서 우리 시대의 어른론을 펼쳤고 그의 아내인 할머니는 노인을 잡고 밀어내려고 했지만 노인의 힘은 완강했다. 지루한 오후 3시의 4호선 사당행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지루하고 짜증나는 시간을, 연착되는 지하철에게 돌리고 있었다.
15시 02분
오이도행 지하철이 드디어 이수역에 진입했다. 노인과,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의 다툼은 지하철 밖에서 지하철 안으로 쩌렁쩌렁하게 물수제비처럼 강제 이주시키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객들도 함께 그 쩌렁쩌렁한 말다툼을 지켜보면서 짜증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고, 이내 스마트폰이나 MP3를 들으며 리시버로 귀마개를 대신하고 있었다. 순간 한 승객이 옆의 친구에게 말했다.
“야, 이거 오늘 인터넷에 올라 오겠고마!”
“그래, 그럴 거야. 아무튼 그 어르신 무지하게 목소리 크구만, 아주 화통을 삶다 못해 구워 드셨나봐!”
오이도행 지하철은 사당역까지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노인의 어른론으로 서라운드로 도배되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었고 중간 중간 노인의 아내와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의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끼어들어 말리는 목소리만이 들렸다. 2분 동안의 시시비비는 고은규의 장편소설 [트렁커]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아, 저 노인은 정말 대단한 어른론으로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를 부당하게 처벌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정말 힘이 들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권의 한파가 몰려 들어 가뜩이나 힘든 하루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15시 04분.
사당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환승을 위해 썰물처럼 내렸다. 노인과 그의 아내도,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도 내렸다. 먼저 내린 키가 크고 핸섬한 청년과 키가 적당하고 통통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는 억울한 눈빛으로 화를 삭였지만 그네들의 마음에서는 아마도 욕설이 빗발쳤을 것이다. 분명히!
따라 내린 노인은 예의 어른론을 아까 이수역 의자에 같이 앉았던 처음 만난 노인에게 앵무새처럼 리플레이하고 있었다.
“요즘 어른들이 어른 노릇을 못하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간다 말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를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 이겁니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 쩌렁쩌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짜증과 동경이 함께 밀려오는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사당역 5-3에서 지름길 계단으로 올라서는 내게 노인의 아내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제발, 그만 좀 하라구요! 그 놈의 목소리 좀 낮추고요. 그 놈의 목소리 때문에 안에서나 밖에서나 되는 일이 없다고요. 아이구, 내 팔자야.”
노인은 참 대단한 우리 시대의 어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 올라올 기사가 머릿속으로 오버랩 되었다.
우리 시대의 어른론 펼치던 어르신 결국 대망신 당해!
오후에 형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를 닮은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지하철에서 웬 어르신이 우리 시대의 어른론을 주장하시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치어서 그만 엄마를 닮은, 아니 엄마가 분명한 사람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가 운전하는 사람이 웬 지하철? 오늘 형수님이 차를 쓰는 바람에 지하철로 업무 보러 다니다가 엄마 닮은 사람을 봤으니까 나 보고 지하철 이용할 때 꼭 눈 여겨 보라는 말을 한다. 순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마치 범행의 현장을 들킨 사람처럼! 하지만 밝게 웃으면서 꼭 그러리라 약속을 했다. 아무튼 엄마는 벌써 1년 10개월 이상 집에 편지로만 연락을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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