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11. 스마트폰과 네이트 온이 만났을 때

madangsoi 2014. 2. 27. 12:28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서른일곱의 주부입니다. 맞벌이를 하는 남편과 함께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한 달 전부터 말 그대로 먹구름 낀 인생이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정말 안 되기만 하던 수요일 오후였습니다. 평상시 카톡으로도 전화를 잘 하지 않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도랑이 아빠, 웬 일이야?”

“나, 지금 집이야!”

예의 그 무뚝뚝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이어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항상 출입할 때마다 들리는 소녀시대의 [소녀시대]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 있어?”

“일은? 그냥 오늘 강의가 일찍 끝났고 예정 되었던 회식은 팀장님이 자기 스케줄 때문에 내일로 옮기자고 해서 이렇게 생각에도 없던 조기 퇴근을 한 거지!”

“그렇구나! 친구들도 아직은 퇴근 전이겠고…… 그럼 집에 있을 거야?”

“근데 왜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거야? 자기가 열어 놨어?”

“아니, 오늘 비 예보 있었는데 무슨, 창문을 열었을까? 엄마가 다녀가셨나?”

“좀 뭔가 이상하다. 안방도 열려있고 잠깐만 기다려봐!”

“……. 여보! 도랑이 아빠!”

순간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기분 나쁜 소리였다.

“……. 여보 안방에 귀중품 놓은 거 없지? 도둑이 들었나봐. 여기저기 수납장은 다 열려 있고 농도 다 열려있어!”

“정말이야. 아, 웬만한 것은 다 엄마 아파트에 다 가져다 놨어.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나마 다행이다. 없어진 물건은 없어 보이네. 현금도 집에는 없었지?”

“그래. 불행 중 다행이다. 이따가 봐!”

“경찰에 신고해야겠지!”

“경찰에 신고는 무슨, 그냥 내버려 둬봐! 내가 지금 회사에 이야기하고 집으로 갈게.”

정말 도둑이 남의 집에만 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죠. 사실 베란다 쪽 창문이나 문단속은 항상 잘 해왔기에 남편의 말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렇게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불행 중 다행이라면서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막 톨게이트를 지나는 순간 저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커플링이나 금반지 등등은 다 엄마 집에 가져다 놓았는데 며칠 전에 대학 동기 모임에 가려고 결혼반지를 집에 가져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2천만 원이나 하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예물함은 다이아반지를 토한 채 그 자리에 서글프게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거실에 서 있었습니다. 안방과 거실, 다용도실, 아이의 방까지 뒤진 흔적이 있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왔습니다. 최근 두 달 사이에 벌써 10층 이하의 집에 여섯 건의 도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마다 도난에 주의하라는 벽보가 붙었는데 몰랐냐고 되물었습니다. 하늘이 노래졌지만 방법은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아파트 현관에 설치된 CCTV와 단지마다 원거리에서 촬영되는 CCTV가 있어서 수사는 급진전될 거라고 하더군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다른 귀중품들은 엄마 집에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우울한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제게 8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 거였습니다. 36송이 장미와 함께 말입니다.

“근데 왜 36송이야?”

“응, 나머지 한 송이는 당신!”

생전 하지 않던 립 서비스를 들으면서도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속으로는 조금 이상한 감이 들었지만 이 기쁜 현실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남편과 야릇한 키스를 나누었습니다. 왼쪽 약지에서 남편이 선물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도둑맞은 다이아반지로 오버랩 되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가끔씩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범인을 추적중인데 조만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애써 문자를 외면했습니다.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아이를 갖기에 참 좋은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나도 오랜 만에 신혼처럼 아이의 방해 없이 즐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6개월 전에 왔던 이 편지 기억하지? 근데 오늘 온 편지 내용이 정말 급반전이야.”

“그래요? 혹시 남편의 자작극!”

“맞아, 자작극! 그 정도면 ‘사랑과 전쟁’ 수준인데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어!”

 

경찰은 가끔씩 문자를 보내왔다. 범인을 추적중인데 조만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문자를 외면했다.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인데 여자는 이미 도둑이 누구인줄 알고 있었어. 남편 몰래는 아니었지만 시험 삼아 방에 휴대용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뒀다는 거야. 최장 3개월을 볼 수 있고 또 날마다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으니까! 대학 친구들 모임 끝나고 며칠 간 너무 바빠서 친정집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져다 놓을 시간은 없고 해서 보험 드는 심정으로 설치했다는 거야. 마침 직장에서 샘플로 받았던 건데 한두 주 정도 자신이 쓸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남편이 다이아몬드 반지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작극을 벌인 거지. 전문 털이범처럼 품질보증서까지 가져갔던 거야. 그리고는 아내에게 2캐럿짜리 대신 5부의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해서 위로했고……. 문제는 서재에서 일하던 남편이 누군가와 전화로 카톡을 한 거지, 집 밖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 화근이었지. 남편이 서재 PC에 네이트 온을 로그인한 채 카톡을 한 거였어. 남편과 남편의 애인이 주고받는 카톡 내용이 서재에 있는 PC에 그대로 중계가 된 거지. 아내는 이를 알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대. 왜냐하면 자신의 삶에서 남편이 누구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자신도 육체적 관계를 맺는 남친이 있었다는 거지.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일 때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거였대.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오래된 자동차를 바꾸는 것과 같았대. 남편은 그저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든든한 배경으로서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대. 다른 사람들, 특히 친지나 친구들이 모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대. 쿨하게 남편과 둘째 아이를 만들기로 했대. 물론 셋째 아이도 생각하고 있대. 요즘은 부유한 가정의 상징은 아이 셋 있는 가정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대.”

“그럼 남편은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니, 남편은 자신의 범행이 완전 범행인 줄 알고 더욱 더 아내와 애인 사이를 오가며 더욱 성실하게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대. 원래 이중 생활하는 사람들이 인간성도 좋고 성실하고, 게다가 성적 파워와 기교도 뛰어나다잖아.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의 아내를 보라고 두 집 살림을 정말 잘했지. 물론 한국방송공사의 [사랑과 전쟁] 시리즈도 마찬가지고……”

“정말 대단한 반전이다. 근데 그 여자는 왜 이 사실을 편지로 써서 우리에게 보냈을까요?”

“글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대나무 숲’으로 우리 방송을 선택한 게 아닐까 생각해! 우리 방송만큼 마니아층은 많아도 사실 대중적인 인기를 의미하는 청취율도 낮으니까 그랬을 거야. 아마도 그 여자는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대하고 있는 지도 몰라. 중요한 것은 편지의 주인공이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있을 거라는 거지! 아마도 여기 적힌 주소도 모두 가공된 걸 거야. 이 여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한둘은 아닐테고! 혹시 남편이 이 사연을 듣는다면,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자신과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그렇겠지. 아마도 이 여자는 일부러 남편에게 우리 방송, 편파방송을 들어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얘기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우리 방송 시간대에 일부터 남편과 함께 드라이브나 쇼핑을 핑계로 차에 올라서 무드를 잡으면서 남편 들으라고 했을지도 몰라. 참, 마지막에 이 편지를 자신의 생일날에 방송해달라고 했어. 방송에 채택된다는 가정 하에. 참 상당히 도발적인 여인이야. 이 여자는 한 단계의 위의 페이소스를 느끼겠지. 그건 형용 못 할 오르가즘인지도 몰라. 아무튼 정말 대단해. 우리 이 편지 어떻게 할까? 방송으로 내 보낼까 아니면 우리 팀만 알고 말까?”

“내용을 분리해서 소개하죠.”

“내용을 분리한다. 그러면 새로운 사연인 것처럼 하자, 이 말이지! 좋아!”

‘사랑과 전쟁’이 드라마라면 이 사연은 팩션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남의 편지를 읽고 일말의 패턴을 만들어 소개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임청수와 정성만은 자신들이 처음 편파방송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편파 방송의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편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소설처럼 써 보내는 방송! 편파 방송은 종합편성채널보다 훨씬 낮은 0.7%의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편의 시청률이 1%만 되도 대박이 나는 것처럼 지역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표방하는 우리 프로그램의 청취율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마니아층을 겨냥한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3년제 청소년 학교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학교 성인 학생 유치 및 홍보를 위해, 그리고 만학도들의 학업 성취도 고취를 위해 시작한 우리 방송은 다음 카페와 연계되면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듯 방송이 만학도를 위한 발표장으로 막, 파종장에서 여리디여린 연록색 맹아(萌芽)가 살포시 피어올라, 건강하던 아이에게 온 젖몸살을 하듯이 갑자기 일이 벌어졌다. 학력을 속인 아내와 당장 이혼하겠다는 남편의 보복성 항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전화로 유야무야가 되지 않자 우리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사회 저명인사인 남편의 입장과 학력을 속이고 오랫동안 네 자녀를 의사, 검사, 교사, 그리고 간호사로 키워낸 아내를 위한 한 편의 소설, 아니 대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3일이 지난 후 편지를 받은 남편의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편지였다. 이해는 충분히 하겠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우리는 실망을 접을 수 없었다. 하루가 더 지나고 우리는 결국 방송을 접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 마지막 방송을 위한 멘트를 준비하고 있던 시간에 빠른 등기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예의 그 사회 저명인사 남편의 또 다른 장문의 편지였다.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다시 우리가 보낸 편지를 버리려다가 다시 한 번 더 읽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공무원으로 살면서 타인의 아픔과 그림자는 잘 이해하고 해결하던 자신의 모습이 허영과 위선이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했다. 사실 자신 하나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친 채 가사를 돌보기 위해 희생한 누나와 남동생,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도 새삼 깨달아서 이번 주말에 가족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우등상과 개근상을 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그리고 이제는 인 서울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할 것이라고 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누나와 여동생에게도 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고 했다. 아내가 아파할 것이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제안에 기꺼이 요리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고 자랑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편파방송은 기사회생했고 이후 주소와 이름은 익명성을 유지한 채 전략적으로는 밀월 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편 덕에 우리는 우리 원고 중 최고의 작품을 문화방송의 여성시대에, 우리 편파방송의 이름으로 한 꼭지를 맡아서 방송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반전도 이만하면 대박이지 않은가!

'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독서는 나의 힘  (0) 2014.07.13
12. 극단의 시각  (0) 2014.07.13
10. 처음에 대하여  (0) 2014.02.26
9. 내 시각이 소수의 시각이 될 때  (0) 2014.02.22
8. 사실과 진실  (0) 201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