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며, 1학년 5반 구원순!
“띠리리리링~”
“여기 MBC인데요 연말 방송대상 코미디 작품상 후보에 구원순 씨도 올라있으니 시상식 날 꼭 나오세요.”
혹시 꿈이 아닐까? 아, 얼마나 이런 날을 기다렸던가, 나는 졸업앨범을 꺼내 놓고 동창생들에게 E-메일을 띄우며 “안 나오면 다쳐!”라는 요즘 유행하는 협박 문구까지 짤막하게 집어넣었다. 새로 구입한 갈색투피스를 폼 나게 입고 ‘정동 체육관’에 도착하니 그곳엔 수상자와 가족, 보도진 등으로 꽉 찼고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앞자리를 향해 들어가는데 중간쯤에 자리한 동창들이 나를 알아보고 환호하는 게 아닌가, 사실 요즘 내가 쓰고 있는 작품도 모두 이들과 연관이 있기에 개개인이 곧 주연이며 조연인 셈이다.
우리 반 왕푼수였던 K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그녀를 대하니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K를 주제로 다뤘던 작품들이 특히 많았던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우상이 슈퍼주니어라면 나의 과거 우상은 차인태였다. 그가 진행하는 별밤에 취해서 얼마나 많은 미래를 꿈꿨었던지……. 몇 년 전 라디오 프로에서 동상 수상자로 지명되어 갔을 때 방송국 사장 대행 자격으로 나의 우상 차인태 님이 주는 부상을 받아들고 오래도록 가슴 떨림의 추억을 지니기도 했었다. 헌데 오늘밤 사회자로 그가 다시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니……,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 기술, 감독, 제작 등등의 수상자 호명이 끝나고 드디어,
“오늘의 영예의 대상은? 두두두두둥!”
교향악단이 한껏 분위기를 돋우자 그가 다시 말했다.
“네, 버라이어티 부문 작품상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오늘의 대상은 요즘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구원순 씨의 [그들만의 교실]이 영예의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중간 좌석에 앉아 있던 동창들이 일제히 꽃다발을 안고 무대 위로 뛰어들었다. 한편 무대 좌우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중고교 4년 동안의 온갖 추억어린 교실 풍경이 과장되긴 했으나 적나라하게 동영상으로 편집되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특히 체육실기 윗몸 일으키기 시간에 매트리스 위에서 7, 8명이 나란히 누워 옆으로 흘러내리는 뱃살을 감추려고 자꾸만 웃옷을 끌어내리는 장면이 나올 때, 관중들은 폭소를 자아냈다.
나는 수상 소감을 한마디 남긴 후 차인태 아나운서와 막 포옹을 하려는 순간,
“불이야!”
소리와 함께 내 책상을 쾅!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오재연이,
“언니! 어제 밤 뭘 했길래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자는 거야?”
오, 허무한 가을날의 꿈이여 야속한 오재연이여, 그러고 보니 어제 너무 과음한 탓에 잠깐 낮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며칠 전 조선일보 독자란 ‘미니 칼럼’에 [이익치와 장밋빛 주가]라는 제목으로 내 글이 실렸었다. 학교에 오니 회장 언니가 그 기사를 오려서 교실 뒤편 우리들의 소식란에 붙여 놓았다. 동네에선 유명 일간지에 나왔으니 술 한 잔 사야 된다며 나를 그냥 놓아두질 않았다. 3교시 시작 전에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말했다
“선생님, 저요 술병이 나서 조퇴해야겠어요.”
선생님께선 웬 술이냐며 웃으셨고, 난 돌아오는 길에 새천년의 코미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58세가 아닌 18세 소녀가 되어 하루빨리 꿈이 아닌 현실이기를 기원하며 쪽빛 하늘을 향해 속으로 외쳐 됐다.
‘하느님! 꿈으로 끝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려움 속에서 공부하는 학평 학교 학생 모두에게 원하는 것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세요.’
유난히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단풍 나뭇잎 끝자락에 앉아 이 글을 쓰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지구본 닮은 눈알을 굴려대며 회색빛 하늘을 선회하며 곡선을 그려댄다.
구원순의 글은 재미가 있다. 점점 구성력이나 어휘력이 향상되고 있고 무엇보다 디테일이 현실처럼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는 데다 유머와 위트가 묻어나고 골계(滑稽)에 바탕한 풍자가 압권이다. 구원순의 글을 읽으면 정말 사람 냄새가 난다. 양귀자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을 읽고 나서 더욱 디테일하게 인물이나 상황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렸던 교내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던 ‘5月에 취해서’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그 중에서 자신의 학급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작동 국립묘지 녹음사이에 철쭉이 함께 어우러진 이곳엔 묘지가 풍기는 음습함이나 적막감보다는 잘 가꾸어진 조경 탓일까, 이국의 풍취마저 느껴지며 기말고사를 며칠 앞둔 긴장된 마음을 아름다운 자연에 맡겨둔 채 이 글을 쓴다.
도덕(야당) 선생님
항상 시계바늘 5분쯤의 각도로 머리를 갸웃하시며 열강을 하시다가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열중이신 교장 성생님을 볼 때마다 남다른 존경심이 든다!”, 고 하시며 “여러분들도 열심히 배워 시대에 민감한 현대인이 되라!”며 용기를 주신다.
컴퓨터(베스트 드레서) 선생님
언제 보아도 세련된 의상과 말씀하실 때의 ‘톤’이 기분에 관계없이 균형을 잃지 않으며 특히 시험 볼 때 최고의 인기인이시다.
사회(슈퍼마켓맨) 선생님
주부 성인 학급에만 들어오시면 진땀이 난다며 쩔쩔 매시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족집게라 불릴 만큼 한국사능력시험에 대비한 핵심을 잘 짚어주셔서 좋다. 그리고 선생님의 사모님은 슈퍼마켓을 홀로 운영하시는데 선생님은 퇴근 후에 슈퍼마켓 뒷정리를 해주시고 셔터를 내려주시는 슈퍼마켓 셔터맨, 즉 슈퍼마켓맨이다. 선생님께서는 슈퍼맨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는 편파방송 지킴이, 슈퍼맨 정성만 국샘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마마보이) 선생님
‘핸섬보이’라고도 하며 노, 소를 기리지 않고 서로 ‘내꺼’라며 박박 우겨대는 우리들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과학(팔방미인) 선생님
아들 가진 엄마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나요? 이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유부녀이신데. 동안이라서 결혼 안한 아가씨로 오인할 만큼 요조숙녀의 상징으로 신사임당이라 불린다. 더구나 예리한 통찰력은 과학에 걸맞게 우리들 속마음까지 훤히 꿰뚫어보시니 별명 그대로 팔방미인이시다.
한문(귀족) 선생님
선생님이 입실하시면 우리의 왕언니가 뜨거운 눈길을 종이컵에 담아 접대하는 걸 잊지 않으시니 어느 날, 끝나고 비장(?)한 각오로 왕언니를 불러 세운 후 “언니! 아무리 언니가 물질공세 펴 봐도 선생님 마음은 나한테 있을 걸?” 했더니 복도에 주저앉아 눈물이 나도록 웃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글썽였던 왕언니다.
음악(총각 아빠) 선생님
선생님의 멋진 지휘력은 음악실을 환상적으로 뒤덮지만 이젠 하산(졸업)할 날이 멀지 않은 우리들은 도무지 흥에 겨워하지 않으니 안타깝다. 고등학교에 가면 다시 총각같은 아기아빠를 오매불망 사랑해 볼까나!
국어(마당쇠) 선생님
우리의 호프라고나 할까? 박학다식하시며 때로는 진한 설화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펼쳐놓으실 때 끈끈한 언니들이 많은 우리 반은 열광했고 아직도 중학교 1학년 때의 국어시간을 잊지 못한다. 게다가 마당극과 만나게 해주었는데 정말 개그맨 같은 선생님이다.
세계사(호빵맨) 선생님
성인반 앞에만 서면 작아지신다나 어쩐다나. 어떻든 수업에 활력을 넣어주시며 조선시대엔 왕에게 사약을 받으면서까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쳤다던 어리석은 벼슬아치들을 잘 꼬집어 주시던 일이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술․가정(순이 엄마) 선생님
“이렇게 어려운 전문용어를 순이 엄마도 몰라. 영이 엄마도 모르지만 선택받아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은 다 알고 있으니 얼마나 축복 받은 삶이냐!”며 우리 모두를 뭉게구름 위에 둥실 띄워주시니 이 또한 감사하고……
수학(투덜이 스머프) 선생님
학생들이 경기(끼)를 일으킬 만큼 싫어하는 과목, 하지만 눈치 빠른 수학선생님께선 어느 날 멋진 선전포고를 하셨으니 “여러분들이 졸업하기 전에 기념으로 수학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한마디 말씀이 시험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으니 선생님 말씀이야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우리 마음을 배려해 주시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역시 우리 학교 좋은 학교가 아닌가. 이제는 투덜이 스머프라고 부르지 않아야겠다.
체육(날으는 돈까스) 선생님
알라딘의 요술 램프의 거인 지니처럼 거구에 귀여운 구석이 있는, 여자의 마음을 가장 잘 파악하시는 선생님, 특유의 나긋나긋한 음성은 삼바 춤을 추고 싶게 만들고 올드 펜들에게 신뢰와 인기 그 자체이시다.
마지막, 영어(박정희) 선생님
전형적인 교사상으로 선생님만 대하면 박대통령이 연상되는 성실한 타입으로 꼽히는 분이다. 우리 성인 학생들의 로망인 영어 과목을 맡고 계셔서 딸 가진 학생들이 서로 줄을 대려고 하고 있으나 내년 5월이면 아름다운 신부와 결혼을 한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중학교 졸업을 하고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같은 스승님들, 끝으로 우리 학교 대비마마(국사 선생님)께서도 하루 빨리 산후 조리 마치시고 학교로 돌아오시길 고대하며 5月의 신록에 흠뻑 취해서 몽롱한 기분으로 오늘의 야외수업은 감히 선생님을 해부하는 결례를 범하며 하루를 접는다.
인물 묘사에 관심을 보이던 구원순이 소설 한 편을 더 써 가지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소설의 제목은 [학교 앞집 할아버지]였다.
불교의 수호신이라는 사천왕상!
난 노인을 그렇게 불렀다.
오늘도 노인은 두 손으로 지팡이를 콱 움켜쥔 채 부리부리한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당장 시비를 걸어볼 태세다.
조금 전에 우리 학교 청소년 남학생 몇 명이 노인의 집 대문 앞에 삐딱한 자세로 서서 가래침을 탁탁 뱉으며 담배꽁초를 휙휙 던졌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이, 쓰발 자식이! 오늘도 젼나 늦네에?”
입만 열었다 하면 상스런 욕설이 일상적인 대화다. 사천왕에게 이 모습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는 지팡이를 허공에 내저으며 “이 후레자식들! 호랑이도 안 물어 갈 썩을 놈의 새끼들” 등등…… 그런 노인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아이들은 비실비실 웃음을 흘린다. 그리곤 재수 없다는 듯이 작은돌맹이를 축구공 차듯 날려서 주차해 놓은 승용차 뒷 꽁무니를 ‘탁’ 소리 나게 때리더니 사라진다. 노인의 욕설이 다시 시작된다.
꼭 이맘때였던가. 아니 어쩌면 5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 중 가장 기분 좋은 기후를 체감했던 날이었으니까. 재잘대며 호호대며 혹은 구두 굽 소리를 딱딱거리며 요란스러운 등교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 노인이 집 앞 대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노려보며 말했다.
“거 좀 조용히들 다녀요. 나이 먹어 학교 댕기는 게 뭔 자랑들이라고 그리 떠들어 싸.”
갑자기 부끄러웠다. 그 순간 노인이 미워야 했는데 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을까? 우리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살금살금 걸었다.
2학년이던 어느 날. 멀리서 노인집 앞에 죽음을 알리는 붉은 등이 걸렸다.
‘아니, 그 노인이……’
가슴이 막 뛰었다. 그 동안 수없이 부딪쳤건만 난 한 번도 노인에게 인사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집 앞에 거의 다 왔다. 그때 활짝 열어놓은 대문사이로 노인의 굽은 등이 보였다. 무언가 값나갈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을 들었다 놓으며 가끔씩 지팡이로 헤집고 있었다. 일단은 안도하며 학교 계단을 올랐다. 하루 종일 마음이 뒤숭숭했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일까? 아니면 노인의 아내였을까? 나중에 누군가 그랬다. 그날의 죽음은 노인의 아내였다고…… 갑자기 노인이 측은해 보였다.
3학년이 되고 7월 초. 봄이 막 꿈틀댔다. 재연이랑 만나서 학교에 오는데 사천왕 노인이 대문밖에 앉아서 봄 햇살에 힘없어 보이는 몸뚱이를 맡겨 놓은 채 상념인지 무상인지 모를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꼭 해봐야지’하는 생각에 재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재연아, 우리 저 노인에게 인사 한 번 해 볼까?”
그러자 재연이는 씩 웃었다. 좋다는 뜻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자신에게 이골이 난 듯한 노인 앞에 바짝 다가서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러자 노인이 벌떡 일어섰다.
‘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인사하는 겨?’라며 지팡이로 내 등짝을 후려칠 것같은 생각에 살짝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머! 노인은 나보다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답례하는 게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1학년 때부터 시도해 볼걸. 이제와 생각하니 노인이 우리를 미워한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노인을 피했었던 게 아닐까?
며칠 동안 노인이 보이지 않으면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노인의 고함소리도 차츰 줄어들었고 침 뱉고 욕하는 아이들도 졸업을 했나보다. 오늘 아침은 셋이서 올라오는데 노인이 예의 그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조금은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우리들이 여중생처럼 깜찍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노인은 오래 전부터 친숙했던 사람에게 하듯이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예에, 계단 조심해서 올라 가슈.”
계단을 오르다가 멈추어 서서 우린 서로에게 물었다.
“지금 할아버지가 뭐라 하셨지?”
“응, 계단 조심해서 올라가래에.”
갑자기 흐린 하늘이 파래 보였다. 그날 이후 내 가방엔 알사탕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언젠가 노인을 만나면 손 위에 알사탕을 얹어놓고 노인의 손에도 온기가 흐르는지 느껴볼 참이다. 왜냐하면 노인의 피는 파란색일거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쎄 자전적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쓰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순의 글은 탄탄하고 신선해 보여서 좋았다. 마치 자신이 졸업반이 된 것처럼 상상 속의 노인을 통해 우리 학교에 대한 학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살갑게 화해의 모드로 풀어내는 살가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울컥하는 감동의 물결이 몰려왔다. 이제 회갑이 다가오는 나이지만 나는 구원순에게 마흔에 등단해서 여든한 살, 소천하기 전까지 왕성하게 작품을 썼던 박완서 선생님을 감히 언급했다. 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한다고 했다. 회갑에 문단에 등단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생활 속의 살아있는 문학을 소개한다. 생활 속에서 가까운 사람, 자신의 글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학을 논하고 문학과 가까이 하는 것도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막연해 보이던 꿈이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좋아했다. 회갑에 첫 소설집을 내고 싶다고 했다. 40년 차이의 청년들과 함께 스토리텔링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감사했다. 나는 이제 망년지우(忘年之友) 구원순과 문우(文友)가 되었다. 감사했다.
'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우리 시대의 어른론! (0) | 2014.07.13 |
---|---|
13. 독서는 나의 힘 (0) | 2014.07.13 |
11. 스마트폰과 네이트 온이 만났을 때 (0) | 2014.02.27 |
10. 처음에 대하여 (0) | 2014.02.26 |
9. 내 시각이 소수의 시각이 될 때 (0) | 2014.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