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2. 늦깎이 학생

madangsoi 2014. 2. 1. 18:30

공종숙!

공부만 하는,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만, 숙제를 하는 노모를 위해!

 

사당동에 위치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덕신중·정보산업고등학교 교지 [德新 큰바람 신바람]에서 만났던 덕신 출신 2002학년도 졸업 선배, 박종숙의 [끝내지 못한 숙제]를 읽는다. 이 시를 보다가, 우리 학교 친구들이 내 이름으로 지어준 삼행시를 곱씹는다. 공부와 문학, 그리고 팔순의 엄마를 위해 친구들과 멀어져야만 했다는, 동문은 아니지만 동병상련의, 박종숙이라는 만학도 선배. 나이는, 그때 나이가 나와 동갑이었다고 덕신의 교지는 특별 취재기 형식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고1. 중학교를 마치고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른들의 학교에도 왕따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사 알았다. 서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선생님. 오히려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성적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친구가 있다고 성적이 떨어지는 절대적인 기준도 없다고 했다. 팔순의 어머니를 위해 죽는 날까지 숙제를 해야 한다는 시적화자의 감수성이 참 애달프다. 성은 달라도 이름은 같은 선배를 보면서 나는 부럽다. 살아있는 엄마가 있어서 부럽다.

 

팔순의 어머니는/ 쉰 살의 딸을 배웅하며 / 차조심해라/ 밥 굶지 마라/ 공부 열심히 해라 하신다// 체증처럼 가슴을 누르던/ 못 가르친 딸에 대한 평생의 한/ 초등생의 책가방을 안 듯/ 어머닌 내 가방을 열어보며/ 오늘은 뭐 배웠냐 하신다// 옹이 박힌 소나무처럼/ 툭툭 불거진 손마디/ 어머니 손은/ 가시가 찔러도/ 나는 여전히 보드랍다// 바위처럼 눌러앉은/ 류머티즘을 안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심은/ 못다 한 숙제가 있음이어라// 책가방 메고 인사 하는 딸이 있어/ 행복하다시는 어머니!/ 나는 내일도 모레도 학교엘 가야 한다/ 어머니 숙제가/ 끝나지 않도록/ 죽는 날까지 난 학생이어야 한다.//

 

선배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특히 총동창회장 선배들은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학교에 대한 원망이 없다. 물론 있겠지만 그들은 학교에서 성공적으로 졸업한 사람들이다. 총동창회장만 그런 게 아니다. 총학생회장들도 그렇다. 지난 3년간 만났던 총학생회장들은 한결같이 선구자의 모습이다. 남보다 앞서 가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성실하다. 자신만만하다. 진실 되다. 그래서 그들이 부럽다.

공주에서 남편과 함께 오직 아들딸, 남매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농사일은 내가 하고 남편은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평생의 한을 풀 기회가 찾아왔다. 딸이 좋은 혼처를 만났다. 외과의사! 집안도 좋았지만 사위, 이 사람이 우리 딸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다. 결혼을 하는데 아무 것도 필요가 없단다. 몸만 오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했다. 우리의 성의를 무시한 게 아니라 우리 처지를 잘 이해하는 사돈의 배려로 딸아이의 아파트는 그렇게 내 몫으로 남았다. 딸아이는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아니라 서울대 간호학과 출신의 딸을 사돈 내외는 무척이나 예뻐했다. 무엇보다도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고 바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에 더욱 기뻐하셨다. 손이 귀한 집안에 아들 쌍둥이를 낳고 다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리 손녀를 낳았다.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어찌나 배려를 하시는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하셨다. 나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남편의 굴레를 피해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은 쫓아와서 나를 데려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편은 서울 지리에 정말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딸의 도움으로, 아니 사돈의 도움으로 도우미를 파견했다. 남편은 벌써 삼년 째 혼자 생활하고 있다. 내가 보고 싶다고 하지만 서울에 올라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내후년 2월이면 졸업을 한다. 기분 같아서는 서울에 대학을 가고 싶지만 응석받이 남편을 위해 대학교는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에 가고 싶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최근에는 종종 나를 찾아 서울을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팔순의 엄마와 살면서 엄마는 여전히 내게 따뜻한 학부모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 부부교사인 아들처럼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되는 게 소원이다. 물론 그때는 56세 대학 새내기! 졸업하면 60세. 정식 학교 교사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꿈은 크게 가지고 싶다. 만 63세까지 교사를 할 수 있다고 하니 4년 정도 모교에서 만학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하면 선생님들은 격려하시지만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웃으면서 막막해 하신다. 우리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 부임하는 꿈을 꾸고 산다. 아직은 도전한 선배들이 없다고 한다. 아무도 하지 않았기에 내가 하고 싶다고 당차게 얘기한다. 그래서 이즈음은 동네의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학교에 다녀보라고 말한다. 3년 전에는 아는 분의 소개로 알게 된 나보다 18세 위의 언니를 당신중학교에 입학시켰다. 언니는 나처럼 남편을 고향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놈의 밥이 뭔지? 도우미까지 파견하고 왔다는 언니도 나와 동향 사람이다. 언니는 우리 엄마와 성격이 잘 맞았다. 덕분에 세 여자가 살면서 날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나지만 70의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한 언니는 정말 대단하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면 74세! 물론 호적상의 73세라지만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나와 동명의 덕신 출신 박종숙 선배의 ‘우리 엄마’란 시를 다시 읽어본다. 참 애틋한 엄마를 가진 만학도 선배다. 아니 참 좋은 엄마와 딸이다. 내게 딸이 이렇게 애처로운 벗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녁노을처럼 수줍게 잠시 몽상에 잠긴다. 에메랄드빛 푸딩처럼 야릇해서 좋았다.

 

어머니는 오늘도/ 내가 모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간판 읽기를 하신다.// 내가 예닐곱 살 때쯤 하던 놀이를/ 팔순이 지난 어머니가/ 천진한 얼굴로 즐기신다.// 아는 글자가 보이면 큰 소리로/ 긴가민가한 낯선 글자 앞에선/ 우물거리듯 속으로 읽으신다// 동굴을 빠져나온/ 태양 앞의 나무처럼/ 겁내지 않는 눈으로 보는 그 세상// 손가락 세워 이것저것 가리키며/ 연신 감탄하는 어머니 놀음/ 어머니 등에 업혀 내가 하던 그 놀이였음을// 내가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저 아기의 모습이라도 좋으니/ 엄마라고 부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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