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악구 서원동 24시 우동, 짜장 3,000원 집에는 아침부터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테이블이라고는 겨우 열세 개밖에 안 되는 이곳 진짜루는 부부가 함께 우동과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0원이었지만 일하던 알바생들을 8시간 3교대에서 2교대로 하면서 한 명을 내보낸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이어서 일 년에 한 명 꼴로 알바생들을 내 보냈고 20년 넘게 이어온 2,000원의 꼬리는 마지막 알바생을 보내고 난 후의 일이었다. 이제 회갑을 넘긴 부부는 2,000원에서 3,000원으로 가격을 올리면서도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만은 항상 모자람 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짜장면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고춧가루도 시골 동생 집에서 직접 가져다 쓰는 등 국산만을 고집하는 경영철학으로 원가절감뿐만 아니라 건강과 위생에 대해서도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올해도 막 장사를 마치고 동네 사람들과 간단한 음식들을 만들어서 진짜루에서 송년 모임을 하려고 하는데 통유리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부부보다 나이가 조금 어려보이는 오십대의 엄마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진짜루로 들어섰다. 주인 부부는 금세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20년 전, 그러니까 1992년 즈음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가게보다 두 배가 넘는 30개의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배달원도 4명이나 되는 잘 나가던 진짜루였다. 그때 부부는 막 마흔이 넘었으므로 활기 넘치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배달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홀에서 일하던 직원 넷도 보너스를 주어서 돌려보내고 한 해를 마무리하던 그날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두 시간 일찍 문을 닫고 이웃과 함께 먹을 탕수육과 팔보채, 양장피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들 둘을 데리고 진짜루에 들어섰다. 겨울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가을 가디건을 겹쳐 입은 엄마와 유행이 지난 검은색 잠바와 회색 잠바를 입은 두 아들은 탕수육 소자를 주문했다. 보기에 배가 많이 고파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주인아주머니가 주문을 도왔다.
“탕수육 소자를 드시는 것보다 세트를 주문하세요. 14,000원에 탕수육 소자와 짜장면 두 그릇이 나옵니다. 게다가 오늘은 특별히 10,000원에 추가 할인 되거든요. 많이 드릴게요.”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앞 접시 하나 더 주시고요 가위 좀 주세요.”
“여기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요!”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
주인아저씨도 덩달아 기분 좋게 주인아줌마의 주문을 되풀이 했다. 주인아저씨는 탕수육은 중자로, 짜장면은 보통보다 조금 많이 담아내었다.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 나갑니다.”
맛있게 요리된 탕수육 중자와 짜장면 곱빼기에 가까운 보통 두 그릇이 13번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엄마는 아들 둘을 위해 짜장면을 십자로 잘라 주었다. 아들 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짜장면의 절반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엄마의 옆 접시에 덜어내었다. 엄마의 옆 접시가 넘쳐나고 있었다. 엄마는 미안한 듯이 아까운 짜장면을 서둘러 입으로 가져갔다. 순간 세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는 정말 천천히 짜장면과 탕수육을 엄마 먼저, 아들 먼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11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석의 13번에서 이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진짜루에 모인 서원동의 상인들은 의식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그들 가족의 무사 안녕을 빌어주고 있었다. 13번 테이블이 비자 주인 부부는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줄 거면 짜장면 곱빼기로 주지 그걸 그냥 보통으로 줍니까? 인색한 양반 같으니라고.”
“너무 많이 주면 다음에 또 오기가 거북할까봐 한 덩이를 반으로 나누어 얹어 주었어. 그리고 당신도 봤겠지만 탕수육은 거의 중자 이상이었다고. 뭘 알고 따지셔.”
부부는 서로의 마음 씀씀이에 짓궂게 장난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얼굴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주인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보회집 사장도 웃고, 진진 칼국수 부부도 웃었다. 다들 그렇게 웃으면서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이 부분의 선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젊은 엄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진짜루의 송년회 시간을 준비하는 열시가 넘어서야 문을 두드렸다.
“탕수육 세트를 주문할게요. 아직도 10,000원에 탕수육 소자와 짜장면 두 그릇이 나오나요?”
“네, 그럼요. 그리고 앞 접시 하나에 가위도 준비할 게요. 여기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요!”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
주인아저씨도 덩달아 기분 좋게 주인아줌마의 주문을 되풀이 했다. 주인아저씨는 탕수육은 중자로, 짜장면은 보통보다 조금 많이 담아내었다.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 나갑니다.”
맛있게 요리된 탕수육 중자와 짜장면 곱빼기에 가까운 보통 두 그릇이 13번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엄마는 아들 둘을 위해 짜장면을 십자로 잘라 주었다. 아들 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짜장면의 절반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엄마의 옆 접시에 덜어내었다. 엄마의 옆 접시가 넘쳐나고 있었다. 엄마는 미안한 듯이 아까운 짜장면을 서둘러 입으로 가져갔다. 순간 세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는 정말 천천히 짜장면과 탕수육을 엄마 먼저, 아들 먼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11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석의 13번에서 이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진짜루에 모인 이웃의 상인들은 의식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그들 가족의 무사 안녕을 빌어주고 있었다. 13번 테이블이 비자 주인 부부는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잘 했어. 오늘은 눈치 채지 않게 한 덩이 반을 둘로 나누어서 내놨는데, 잘 했지?”
“잘 했어요. 엄마는 작년에 입었던 그 가을 가디건을 안과 밖을 바꾸어서 입었더라고요. 동생은 형이 입던 검은 점퍼를 입었고 형은 낡았지만 세련된 남색 점퍼를 입었더라고요. 가난해 보였지만 아이들이 참 엄마를 위하는 모습이 정말 눈물이 나서 감추느라 혼이 났어요.”
해마다 진짜루는 영업이 잘 되어서 가게를 확장하고 인테리어도 바꾸게 되었지만 13번 테이블은 항상 12월 31일에는 예약석이 되었다. 그 테이블만은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오히려 세 모자에게 부담이 될까봐 고민 끝에 바꾸기로 했지만 위치는 바꾸지 않았다. 형은 이제 교복을 입고 예의 남색 점퍼를 입고 왔고 동생은 형에게서 물려받은 검은색 점퍼를 입고 왔다. 예의 13번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을 한다.
“탕수육 세트를 주문할게요. 그런데 짜장면 곱빼기로 하면 얼마를 더 내야 하지요?”
“네, 천 원씩만 더 내시면 됩니다. 앞 접시 하나에 가위도 준비할 게요. 여기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요! 짜장면은 곱빼기 둘!”
“13번에 탕짜면 세트 하나! 짜장면은 곱빼기 둘!”
주인아저씨도 덩달아 기분 좋게 주인아줌마의 주문을 되풀이 했다. 주인아저씨는 탕수육은 중자로, 짜장면은 곱빼기보다 조금 많이 담아내었다.
“13번에 탕짜면 곱빼기 세트 하나! 나갑니다.”
맛있게 요리된 탕수육 중자와 짜장면 곱빼기보다 눈에 띠게 많은 곱빼기 두 그릇이 13번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엄마는 아들 둘을 위해 짜장면 곱빼기를 십자로 잘라 주었다. 아들 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짜장면의 절반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엄마의 옆 접시에 덜어내었다. 하지만 엄마의 옆 접시가 넘쳐나지 않고 있었다. 주인아줌마가 옆 접시 대신 넓은 접시를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미안한 듯, 감사한 듯 짜장면을 서둘러 입으로 가져갔다. 순간 세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는 정말 천천히 짜장면 곱빼기와 탕수육 소자, 아니 중자를 엄마 먼저, 아들 먼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11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석의 13번에서 이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진짜루에 모인 이웃의 상인들은 더 이상 가슴 졸이지 않았다. 확장된 가게 덕에 마음껏 울고 마시고 먹을 수 있었다. 13번 테이블이 비었고 주인 부부는 그제야 가격표를 다시 원래대로 바꾸고 있었다. 탕짜면 세트는 벌써 가격이 18,000원에 책정되어 있었다.
2002년, 세 모자가 진짜루에 12월 31일마다 방문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들은 진짜루를 방문하지 않았다. 내리 삼 년째 일이었다.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세 모자의 소식은 진짜루에 모인 사람들은 후끈 달아오른 얼굴로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10시가 넘고 11시가 이제 20분이 남은 시간, 갑자기 가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예의 가디건 대신 연두색 패딩 점퍼를 입은 엄마가 짧은 머리의 군인, 그리고 남색 패딩 점퍼를 입은 청년과 함께 진짜루에 들어섰다. 순간 주인 부부와 상인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13번 예약석에 앉은 그들에게 향하는 주인아줌마의 발걸음은 분명 긴장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를 주문할게요.”
“아, 네. 세트로 하시면 더 나으실텐데요.”
“아닙니다. 오늘은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 주세요. 아주 특별한 날이거든요.”
“여기 13번 테이블에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 하나요!”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 하나!”
주인 부부의 목소리에 이웃 상인들의 마음도 환하게 울렸다. 이내 주인아저씨는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를 양보다 조금 많게 준비했다. 양도 양이지만 삼선 짜장에나 들어가는 새우와 전복, 죽순, 석이버섯에 능이버섯까지 함께 넣어 준비하고 있었다.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가 13번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너희 둘이 엄마를 도와준 덕에 산림감시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지었던 빚을 삼 개월 전에 다 갚을 수 있었다. 무고로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화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너희 둘이 정말 엄마를 잘 도와주어서 정말 고맙다.”
“형이 저를 위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단기하사로 입대한 덕에 올해 제가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무슨 소리야. 가족이니까 함께 돕고 양보하고 살아야지. 형은 네가 직장 일을 하는 엄마 대신에 집안일을 잘 해주고 새벽마다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해준 덕에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간 거야. 고맙다.”
형이 단기 하사로 입대하자 가족은 잠시 12월 31일의 행복한, 사소한 가족 회식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형이 잠시 휴가를 나온 날, 가족은 사소한, 아니 아주 특별한 가족 회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인 부부는 주방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함께 이 이야기를 어렴풋하게 듣고 있던 이웃 상인들 역시 술기운을 빌어 마음껏 울고 있었다.
2011년 12월 31일. 진짜루는 이제 회갑을 넘긴 부부가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이어진 경영난으로 규모를 줄였다. 알바생들마저 모두 정리하고 부부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24시간 영업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마련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 상인들과 함께 하는 송년 회식만은 올해도 이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가게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꾼 이웃들이었지만 진짜루에서의 송년 모임만은 계속하고 싶어 했다.
막 11시가 넘어서는 그 시간 진짜루의 문이 열렸다. 세련된 양장을 입은 중년의 여인과 남색 정장을 한 두 청년이 들어섰다. 음식 준비에 바쁜 주인 부부대신에 이웃 상인들이 먼저 그들을 알아보았다. 탕짜면 세트의 그 세 모자였다. 이웃 상인 중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주인 부부를 불렀다. 주인 부부도 그들을 알아보았다.
“짜장면 보통 하나, 곱빼기 둘에 탕수육 대자 가능한가요?”
엄마를 대신해서 큰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주문을 했다.
“아니, 지금은 우동이랑 짜장밖에 안 하는데……”
성보 사장이 입을 열자 주인아저씨가 입을 막았다.
“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 13번 테이블의 예약 손님이 오셨으니 당연히 준비할게요. 마침 오늘 송년회 준비하느라 재료도 있으니까요.”
주인아저씨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주인아줌마는 예의 주문을 외쳤다.
“13번 테이블에 짜장면 보통 하나, 곱빼기 둘에 탕수육 대자요!”
주인아저씨가 즐거운 비명처럼 푸르게 화답했다.
“짜장면 보통 하나, 곱빼기 둘에 탕수육 대자!”
진짜루는 음식 내음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이내 주인아저씨는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를 양보다 조금 많게 준비했다. 양도 양이지만 삼선 짜장에나 들어가는 새우와 전복, 죽순, 석이버섯에 능이버섯까지 함께 넣어 준비하고 있었다. 짜장면 보통 하나에 곱빼기 둘, 탕수육 대자가 13번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잘 먹겠습니다. 사실 우리 애들이 짜장면 하면 사족을 못 썼거든요. 그것도 항상 곱빼기로 먹었답니다. 그러다가 농사를 지으면서 궁한 살림에 산불감시원을 겸했는데 어느 날 산불이 났어요. 잔불을 다 끄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다시 산불이 난 겁니다. 이웃이 밭두렁을 태우다가 불이 번졌는데 남편에게 뒤집어 씌웠죠. 화병이 난 남편은 날마다 술로 괴로워하다가 간경화로 저 세상으로 갔어요. 그리고 저는 방화범으로 몰린 남편의 벌금을 내기위해 농공단지에서 일하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두 아이들이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하고, 주말에는 예식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주었어요. 특히 작은 애는 항상 늦게 귀가하는 저를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어요. 큰애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휴학을 하고 하사관으로 입대하면서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죠. 동생은 형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올해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서울대 보라매 병원에 외래교수 겸 외과의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물론 큰애는 단기 하사를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가서 현재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엄마는 말을 하다 말고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탕수육에 과하게 첨가된 전복과 죽순도 맛있게 먹었다. 아들 둘도 식성이 참 좋았다. 짜장면 곱빼기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다 먹고 탕수육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김치에 싸고 깍두기를 얹어서 먹는다. 주인 내외가 서비스로 준 군만두까지 짜장 소스에 묻혀서 잘도 먹었다.
“사실 19년 전에 진짜루에 들어설 때 돈이 만 원밖에 없었어요. 좀 더 있었지만 그 이상 지출한다는 건 그때는 상상할 수 없었어요. 아들들은 정말 먹깨비처럼 식성이 대단한데 제게 양보했던 거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주인부부께서 마음을 쓰셔서 거의 짜장면 곱빼기의 양을 먹었어요. 그것도 저희들이 부담을 가질까봐 해마다 조금씩 양을 늘려주시는 것을 보면서 미안한 줄 알면서도 이런 분들이라면 우리가 부담을 드려도 되겠다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남편의 벌금도 다 갚고 남편의 억울한 사정도 무고한 분이 풀어주셨어요. 한 동안 제가 좀 몸이 아파서 진짜루에 올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 작은아들이 서울대 보라매 병원에 발령을 받으면서 꼭 진짜루에 가서 진짜루 주인어르신과 이웃 분들께 한 턱 쏘자! 하고 제가 오늘 아들 둘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쏠 테니 마음껏 주문해서 드세요.”
“어, 이런! 오늘은 우리가 다 음식 준비해서 가져왔는데, 어쩌나?”
성보 횟집 사장이 또 입을 열려다 주인에게 제지를 당했다. 이웃 상인들 모두가 성보 횟집 사장에게 약속이라도 한 듯이 검지 손가락을 자신들의 입에 가져갔다.
“우리 의사선생님 노래 한 번 들읍시다. 살림도 잘한다고 하니 노래도 잘 하겠네!”
“무슨 소리야. 형만한 아우 없다고 우리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노래 한 번 들읍시다.”
“아, 그러지 말고 어머니 노래 한 번 들읍시다. 남편의 무고를 풀고 벌금까지 다 갚으시고 게다가 두 아들을 학교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을 만든 위대한 신사임당의 노래!”
“네, 제가 먼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먼저 노래를 불러야할 분이 계십니다. 저희 두 사람에게 사람 사랑을 몸소 가르쳐 주신 주인아저씨의 사람 냄새나는 노래부터 듣겠습니다. 어떠세요?”
다들 좋다고 박수를 쳤다.
“참고로 이번에 교단문학상 공모에서 저희 형이 대상을 받았는데요 제목이 [짜장면 곱빼기 한 그릇]이랍니다. 주인아저씨, 아줌마와 여러분들이 주인공인 수기, 아니 소설을 저희 형이 써서 장원인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상금은 오늘 우리 진짜루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께 드리려고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동생의 손에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형을 대신해서 두 청년의 엄마가 주인 부부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주인 부부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세 사람의 진심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 부부는 이제 맘 놓고 울었다. 이웃 상인들도 울었다. 모두가 울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 엄마도 웃고 두 아들도 웃었다. 하지만 눈에서는 서설(瑞雪)이 내리고 있었다.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진짜루에서 진짜루 감동의 짜장면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웃의 아픔과 기쁨을 내 일처럼 아파하고 기뻐하는 진짜루의 진짜 사람 사랑의 파티가 강산에의 [라구요]와 함께 가는 해를 아쉬워하면서 깊어가고 있었다. 오는 해를 기대하면서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2012년 흑룡의 해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어때요, 선생님?”
구원순이 물었다.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패러디한 작품이었다. 나는 대답대신 웃었다.
“괜찮아요? 제대로 변형을 하려고 했는데 정말 어려워요.”
“좋네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잖아요. 처음 치고는 정말 좋은 습작입니다. [우동 한 그릇]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패러디한 줄조차 모를 정도네요.”
“선생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한 번 시작했는데 잘 되었나 물어보고 싶었어요.”
“물어보면 아픈데. 솔직하게 말씀드릴 게요. 전반적으로 기존의 [우동 한 그릇]을 뼈대로 같은 듯 다르게 살을 잘 붙였어요. 물론 산림감시원인 아버지의 사망이 건조하게 처리된 게 아쉽고요, 얼마의 벌금을 내야했는지가 불분명하네요. 리얼리티가 담보되려면 이 부분을 좀 더 현실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교단문학상 상금을 진짜루 주인부부에게 모두 주는 것은 현실성이 좀 부족하죠. 반 정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구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30%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상금의 전액을 진짜루 주인부부에게 주는 것은 사회통념상 어울리지 않는다, 뭐 그 정도! 아무튼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습작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문리(文理)가 트이는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음에도 한 번 지도 부탁드릴 게요.”
“그럼, 감 사오세요. 아니면 감이랑 사과 사오시던가요?”
“감, 사! 네, 그럴 게요. 암튼 말장난의 대가답습니다.”
“저희 고향 동네는 원래가 경마장이죠. 말장난을 생활화하고 삽니다. 언어유희 어렵지 않아요. 개그콘서트의 ‘꺾기도’가 우리 고향 스타일이거든요.”
“네, 잘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마당극 한 번 더 했으면 좋겠어요.”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다들 점점 바빠질 테니까요. 중 3때가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시 뭉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데 다시 뭉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우리들의 꿈같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네요. 고마워요, 구원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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