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파란만장한 삶을 소설처럼 써보는 편파 방송! 만학도 방송, 이제 시작합니다. 오늘은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샘물체를 닮은 필체가 살가운 문장과 더불어 우리들의 마음을 편지 속으로 폭 빠지게 하네요.”
“네, 오늘 사연은 많이 특별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늦은 나이에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항상 우리 방송을 애청해주시는 애청자 여러분들은 정말 우리 사회가 왜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고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심 먹고 조금은 졸린 오후 3시 주간 성인반 학생들은 하교 시간이고요 야간반 학생들은 막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오늘은 제 시간에 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이겠습니다.”
“오늘 사연 함께 들어보실까요. 정성만 선생님께서 전해드리겠습니다. 편파 방송! 레츠 고!”
“네, 학교사랑 나라사랑 편지쓰기 대회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이고요, 교육과학기술부, 서울특별시 교육청과 부산광역시 교육청이 함께 후원한 푸른세대 수범사례 발표대회에서 서울시 교육감상 수상작품입니다.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 1학년 김순옥 학생의 사연입니다. 영문 편지, 이제는 읽을 수 있어요!”
모두 다 해 보았습니다. 원망도 했습니다. 울기도 했습니다. 후회도 했습니다. 다 해 보았습니다.
원망! 어릴 적부터 원망을 가지고 살았지요. 어머니께서 나를 왜 학교를 안 보내주었을까 하고요. 어린 나이 13세 때 같은 나이의 친구들은 중학교를 진학했는데, 저는 중학교를 못 갔습니다. 학교와 집, 그리고 시장! 꼭 학교 앞을 지나야만 시장을 가지요. 어머니께서 심부름을 시키면 학교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너무 싫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게 되니 창피하니까요.
하지만 어머니 심부름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엄하셔서 거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학교 앞을 지나려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푹 수그리고 다녔습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다녔지요. 어머니를 많이도 원망했습니다. 진학 못한 창피함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열세 살 어린나이에 종갓집 장녀로 태어난 저를 무척이나 일을 시키셨습니다. 설거지, 빨래, 청소 등등. 17, 8세 때 일입니다. 하루는 논에서 모내기를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점심을 하려고 집에 먼저 들어 왔지요. 점심밥을 해 놓고 있으니까 식구들이 모두 들어오셨어요. 바쁘게 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는데, 할머니는 물 가져와라, 할아버지는 밥 더 가져와라, 김치 가져와라, 얼마나 심부름을 시키시던지. 배고픔을 참지 못한 저로서는 순간 화가 버럭 났습니다. 앉지도 못하고 서서 들고 먹던 밥그릇을 마당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던져버리고 울며불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을 시키려면 밥은 먹여 가면서 시켜야 되지 않느냐고요? 배고파서 죽겠는데 왜 이렇게 심부름을 시키냐고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조용히 저를 끌고 밤나무 아래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어른들 계시는데 지금 너의 행동이 어떠했느냐 하시며 저를 얼마나 때리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를 밤나무에 묶어 버렸습니다. 너는 여기서 호랑이 밥이나 되라며 엄마는 올라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렇게 배가 고팠을까?, 한없는 후외가 됩니다.
세월은 흘렀습니다. 결혼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네가 못 배웠으니 남편도 못 배운 사람을 만나야 무시당하지 않으며 산다고 똑같은 남편을 만났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기술도 없는 그런 사람. 시부모님도 모두 안 계신 남편. 남편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삼성동 지하 단칸방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큰딸 다섯 살 때 일입니다. 근처 아파트 청소를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해도 된다고 해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러 올라가면 놀이터에서 모래 장난하며 놀고 있던 아이는 엄마가 안 보이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며 엄마를 부르며 찾으러 다녔지요. 그러는 아이가 불쌍하였는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자기네 아이와 놀게도 하고 그 집일을 도와주면 어떠냐고 하시기에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아침에는 아파트 청소하고 저녁 무렵엔 그 집 빨래며, 청소를 3시간 해주고 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내 몸 하나는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데, 주인집 남자 아이 둘이 우리 딸을 얼마나 괴롭히고 때리는지 맘에 안 들면 가라하고, 아이들이 하는 말이었지만 얼마나 서운하던지. 또 울었습니다.
세월은 더 흘렀지요. 학력을 허위로 작성하고 우체국에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영어 편지가 나오면 옆으로 슬쩍슬쩍 놓고 했습니다. 그래도 가능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영어 편지는 많아지고 일하는 사람은 줄어서 일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코너에 몰렸지만 잘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네 친구가 나의 학력을 퍼뜨리기 시작하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영어 편지를 들고 와서 하는 말이 “김 여사, 이 편지 어디어디에 넣어?” 하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만 스스로 그 우체국을 그만 두었지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좋은 직장을 그만 두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집 밖을 안 나갔습니다. 우울증까지 겹치며 죽고 싶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 따지듯 이야기 했습니다. 나를 왜, 왜, 왜? 안 가르쳐주었냐고 원망했습니다, 어머니를.
얼마만큼 지났을까요?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달력 한 장을 찢은 그 큰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못났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는 어릴 때 외숙모가 외할머니한테 잘못 해줘서 나는 결혼을 하면 시집 식구들에게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정작 너희에게는 소홀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딸아, 너에게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잘못했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구나 하시며, 당신도 배우지 못한 그 글씨체로, 삐뚤삐뚤하게 적은 편지 한 통을 처음 받았습니다. 울었습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남편이 볼까봐 감추고, 들을까봐 속으로 울었습니다. 후회했습니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결국 이 사실을 안 남편에게도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셨겠지, 하며 나무라더군요. 그래도 나는 그게 아니거든요. 우체국에서 스스로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당신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했다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도 금방 잊어버려도 배워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가슴이 뭉클 하다시며, 그래 잘했다, 잘했구나! 항상 너 하나만 가르치지 못한 게 이 엄마 마음 한 구석이 미어지듯 아파했던 것을 잘 했구나 하시며, 이 엄마 중학생 학부모가 되었구나. 학부모가 학비를 대 줘야지. 너 배우고 싶은 만큼 다하거라. 땅이라도 팔아서 학비 줄게, 하시네요. 엄마도 이제 한이 풀리겠구나 하시네요. 그렇습니다! 당신중학교에 들어와서 국어 시간 3분 스피치 하던 날. 이 이야기를 하며 울던 그 날이 엊그제 같건만 벌써 일 년이 넘었어요. 중학교 3학년인 오늘. 담임선생님! 저희 반을 위해 얼마나 애틋하신 지 감사하고요. “3학년 되니까 좋으시지요?” 하시는 말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요 저는, 원망도 해 보았습니다. 울기도 해 보았습니다. 후회도 해 보았습니다. 모두 다 해 보았습니다.
2011년 9월 20일, 당신중학교 3학년 3반 김순옥 올림.
“네, 가슴 아픈 사연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축하할 일이 김순옥 학생에게 있었네요. 먼저 당신중학교를 졸업한 일입니다. 저희 편파방송이 축하 선물 드립니다. 대불대학교가 드리는 문화상품권 보내드릴 게요.”
“정성만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올해 3월 3일 삼겹살 데이에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입학하셨답니다. 하마터면 딸의 출산 때문에 입학을 포기할 뻔 했는데요 사돈어른이 도와주셔서 야간 과정 1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축하해주세요. 여기는 편지로 파란만장한 삶을 소설로 써보는 방송, 편지로 만들어가는 파란 꿈같은 방송, 편파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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