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국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12시가 넘어 새벽 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방방 뛰어서 그런지 취기가 많이 가시고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일까,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손은 벌써 화면의 통화 버튼을 모션하고 있었다.
“임청수, 어디야? 또 술 한 잔 하고 있겠지.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했잖아. 밤새 술 마시고도 새벽같이 학교에 와서 아닌 척 앉아 있던 둔한 척했지만 약삭빨랐던 놈.”
“어떻게 알았냐? 샘들이랑 한 잔 하고 노래방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다. 너는 어디냐?”
“보라매공원 근처에서 한 잔하고 있다. 좋은 정보 줄 테니까 와라. 삼성 쉐르빌 1층 패밀리 마트 옆 교촌치킨이다. 밖에서 마시고 있으니까 눈에 금방 띌 거야.”
“알았어. 지금 신림 사거리 택시 안이니까 바로 갈게. 근데 혼자 있냐?”
“왜?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알았어. 그분이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화를 끊고 택시기사에게 보라매공원 쪽, 롯데백화점으로 방향을 바꾸자고 했다. 새벽 공기를 가르던 담황색 해치 서울 택시는 신림역 방향을 뒤로 하고 유턴을 해서 당곡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보라매 롯데백화점을 지나서 삼성 쉐르빌 앞에서 내렸다. 길 건너 교촌 치킨 앞에 박국희와 정장 차림의 중년신사가 앉아 있었다. 뼈 없는 간장 치킨에 황도 안주를 놓고 박국희는 소주를, 중년의 신사는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와!”
“늦은 시간인데 내일 출근 안 해?”
“고양이 쥐 생각 하냐? 참, 여기 강영식 서울시 의회 교육의원님이야. 인사해라.”
강영식!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리고 낯익은 이름이었다. 악수로 인사를 대신하고 처음처럼 한 잔을 받아 마셨다. 후래자 삼배 운운해서 내리 세 잔을 마시고 황도 복숭아를 조금 베어 물었다. 연신 땀을 닦는 강영식이라는 사내는 분명히 내가 아는 인물같았다. 내게 도움이 될 인물이라? 순간 하인정과 함께 이야기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강영식. 문서수발 갔다가 박국희 사무실에서 네이트온으로 생중계되던 사람의 이름이기도 했다. 서울시 의회 교육의원 강영식! 이제 대 놓고 일을 벌이겠다는 의미 같았다.
“강의원님 얼굴이 정말 낯이 익어요.”
“당연하죠. 제가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사람입니다. 좋지 않게 제적을 당하고 이후 정말 열심히 학교 다녀서 고교 졸업하고 대학 진학해서 이제 좀 살만 합니다. 선생님께 한문 시간에 배웠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개나 닭이 집을 나가면 쉽게 찾지만 마음이 집을 나가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집 나간 마음을, 개나 닭처럼 찾아나서는 게 학문이다. 정말 멋진 수업이었습니다. 방심(放心)하지 말고 작심(作心)하는 것이 학문의 시작이다. 아마도 맹자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수업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아, 네! 그래서 낯이 익었습니다. 아무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노력하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자, 한 잔 하시죠.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그래서 말인데 너도 우리와 함께 하자. 당신정보에서 열심히 해봐야 정규학교 봉급의 90%라는 사문화된 규정 때문에 할 일은 할 일대로 다하고 박봉이잖아. 거기다가 일주일에 이틀은 야간 수업하고, 야간 수당이라고 10만원 주고. 애들 간식비도 아니고, 참.”
“올라서 12만원인데. 그러니까 교육청이나 교과부에서 인건비 보조 제대로 해주면 되잖아.”
“물론 말은 쉽지. 올해부터 학평 학교들 예비군 훈련 여름방학 때 하루 하던 거 폐지된 이유가 뭔지 알아? 사이버 대학도 학평이야. 그러니까 사이버 대학 강사들까지 다 여름방학 하루 예비군 훈련해야 된다고 민원이 들어온 거야. 근데 사이버 대학에 적만 두고 예비군 훈련 안 받으려는 사람들 다 인정하다간 예비군 훈련 존폐 위기까지 나왔다는 거 아냐. 그래서 부득이 폐지되었지. 이게 문제인 거야. 학평 학교들 인건비 다 주면 사이버대학교는 물론 너희와 유사한 시설들이 들고 일어날 거야. 공익법인 만들면 신분보장 해달라는 것도 마찬가지야. 현재 임용고시 경쟁률이 10대 1이 넘잖아. 그 사람들 자리도 점점 줄여야하는데 학평 선생님들 먹고 살게 해달라고 신분 보장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거야. 사립학교들 요즘 정교사 안 뽑는 거 알잖아. 아무리 뽑으라고 해도 못 한대. 학교 운영이 안 된대. 그렇게 하려면 인건비랑 시설비 지원 늘려달라는 거지. 문제는 사립학교 재단이 자신들 주머니에서는 한 푼도 못 내겠다는 게 문제야. 너희 학평도 몇몇 학교 빼고는 인건비 보조금 22만원 할 때나 79만원 할 때나 매번 똑같이 이야기하지. 어렵다. 어렵다. 그리고 몇 년째 등록금 동결되었다. 그런데 매년 한 명씩 정원 줄이다가 삼년 새 5명씩 줄여서 현재 한 반에 40명씩이 됐는데도 유지되고 있잖아. 이게 무슨 의미겠어. 그전에 폭리를 취하고도 교사들에게 어렵다, 위기다, 하면서 사립학교 재단 닮아서 자기네 돈 한 푼 안 쓰고 열심히 축재(蓄財)했다는 거지.”
“그러니까 감사를 좀 잘하면 되잖아. 수당과 봉급 제대로 주라고.”
“감사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야. 잠깐 스쳐 가면 되는데 왜 그 짓을 해. 그냥 지나가는 거야. 그래야 승진하는데 어렵지 않지.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라. 고령화 저출산 사회가 되면서 학급 정원 줄여야 하니 일반 사립도 정원 채우기 힘든 실정이고, 방통은 살려야겠으니 만만한 학평을 죽이기로 한 거지. 교육감, 장관, 교육청 관계자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학평은 홀로 외롭게 투쟁하는 거지. 성질 급한 분은 학교를 접었고 법을 모르는 분은 학교를 빼앗겼지. 그나마 법을 잘 아는 분들은 이번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입후보한 분들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원해서 많이 당선시킨 것같더라. 아무튼 이제부터는 누가 더 많은 입법부 사람들, 국회의원을 등에 지느냐에 달렸어. 그래도 우리가 더 유리하다고 본다. 쉽게 모든 학평을 죽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우리가 찍으면 그 학교는 문 닫는다. 당신중고가 일 순위야. 그러니까 네가 총대를 매줘라.”
“나는 학교가 문 닫으면 변호사인 이종형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소송 준비 진행 중이야. 내가 직업을 선택할 때 당신중고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었지. 그것도 서울특별시 교육감 학력인정. 해서 내가 취업을 한 거고 우리 학교 다른 선생님들도 직업을 선택했어. 만약에 당신중고가 비학력인정이었다면 우리는 다른 학교나 다른 직업을 선택했겠지. 승산이 90% 이상이래.”
“물론 승산이야 있겠지만 법과 싸워서 이겨봐야 상처뿐인 영광이야. 학교 문 닫고 소송에서 이기면 뭐해. 백수로 길거리에 나앉은 다음에 뭘 할 거야. 대기업에서 대기발령 나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모든 굴욕을 이기고 살아남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두 손 두 발 들고 제 발로 나가. 왠지 알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시켜서 오너들이 내보내는 거야. 그게 현실이야.”
“그래서 선생님도 현실을 택하라는 겁니다. 내가 있고 직장이 있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안에서 도와주시면 당신중고는 그냥 한 방에 가는 겁니다. 부장님은 교무부장 몇 년 하시다가 교감, 교장 역임하고 당신중고에서 이사나 이사장 하면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면 됩니다.”
“그래, 임청수! 아주 간단해. 학생들에게도 지금 학교보다 공익법인이 된 학교에서 일반 특성화 고교처럼 전교생이 장학금 받고 다니는 거야. 선생님들도 그들 패밀리만 나가고 다 신분 보장 되는 거야. 우리 둘이 약속할 게. 물론 5년 이상 근무자에 한 하지만 말이야. 너는 손해 볼 게 없어. 마흔 두 살에 어디 가서 다시 시작할 거야?”
“그래도 내가 16년을 몸담았던 곳인데 어떻게 그러냐? 또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자의 마지막은 뻔한 거잖아.”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들께는 피해가 가지 않게 조치하고 보장하겠습니다. 저는 교장, 교감, 행정실장에게 받은 비인간적인 수모를 잊을 수가 없을 뿐입니다.”
“그래 눈 딱 감고 같이 하자. 네가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인간적인지 알아. 너 기억하지. 당신중고 합창대회! 내가 그때 고등학교 때 복수하려고 했다가 보기 좋게 물 먹은 거 말이야. 처음에는 네 경력 탓을 했어. 나는 그때 초년병이었고 내가 맡은 반은 2학년 3반, 너는 6년차 학생부장에 3학년 1반 담임이었잖아.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고 음악선생님도 우리 반이 이길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결과는 끔찍했어. 오합지졸같았던 너희반 아이들이 청바지에 하얀 와이셔츠와 블라우스를 입고 관악문화복지센터에서 다섯 손가락의 ‘풍선’을 환상의 하모니로 부르던 모습, 이어서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체육대회 때도 그랬지만 3학년 1반은 뭔가 일사분란하다는 생각을 했어. 개막식 때보다 폐회식 때 더 많은 반은 흔치 않은 게 우리 학교 현실이었잖아. 담임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장악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어. 관악체육공원 인조잔디를 뚫고 나가는 건 우리 반과 너희 반, 둘뿐이었지. 정말 보기에 좋았어. 네가 없어도 있어도 상관없이 줄을 지어서 종목별 선수가 나갔다가 경기가 끝나면 줄을 서서 응원석으로 돌아오는 모습. 출발할 때 ‘당신!’을 외치면서 잘 싸우고 돌아오겠다고 인사하고 출발하고, 잘 싸우고 돌아오라고 박수 치는 모습, 경기가 끝나면 이기든 지든 질서정연하게 돌아와서 이겼다고, 또는 미안하다고 ‘당신!’을 외치고 거수경례하면 잘 싸워서 멋지게 이겼다고, 또는 잘 싸웠지만 아쉬웠다고 박수 치는 모습. 당시에 선배 선생님들을 통해 들으니 그게 고3이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어느 학년이든 임청수가 맡은 반은 그렇다고 했어. 그리고 다른 학급에 가면 또 다시 당신고 학생다워진다고 했어. 미스터리라고 했어. 부러웠지. 그런데 대조적이게도 우리 반 아이들은 조금 이상했어. 우리 반 아이들이 긴장을 했는지 불안해하는 거야. 오장박의 ‘내일이 찾아오면’을 부를 때까지는 정말 좋았어. 말로 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가 느껴지는 거야.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거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율처럼 다가오는 거야. 정말 그랬어. 신비로운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다가왔어. 그런데 자유곡 한돌 작사, 작곡의 ‘터’를 부를 때 알았어. 내 욕심이 과했다는 것을. 아니 그 당시에는 몰랐어. 3학년 1반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담임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야. 하지만 우리 반은 내가 너, 임청수를 이기기 위해 대중가요와 민가를 아이들의 생각은 반영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야. 신형원을 떠올렸던 거야. 그녀의 카리스마를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어. ‘자유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거지. 일방적으로! ‘얼어붙은 압록강아 한강으로 흘러라 같이 만나서 큰 바다로 흘러가야 옳지 않겠니. 태극기의 펄럭임과 민족의 커다란 꿈, 통일이여 어서 오너라. 모두가 기다리네. 불러라 불러라, 우리의 노래를. 그날이 오도록 모두 함께 부르자. 무궁화 꽃내음 삼천리에 퍼져라. 그날은 오리라 그날은 꼭 오리라.’ 몰라! 이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도. 결과는 주야간 성인 학급까지도 물리치고 3학년 1반이 1등을 차지한 그 순간, 나는 정말 부러웠고 다시는 합창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물론 지금도 합창은 나의 꿈이야. 그랬다는 거야. 너에게 있는 특별한 생각, 담임수당은 학생에게, 부장 수당은 부원에게! 이런 말이 가장 하기 싫지만 나는 이제 너를 미워할 수가 없어. 네가 자랑스러워. 그래서 네게 기회를 주고 싶어. 우리 함께 정말 괜찮은 선생님이 되어 보자. 그러려면 덧니처럼 쓸데없는 부분은 잘라 내야 한다. 임청수, 영원히 소외된 학생들과 함께 하려는 너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처음엔 네가 미웠다. 하지만 이제 안정된 직장에서 바라본 너의 모습은 참 안쓰럽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떡메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믿지 말라던 하인정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 하루, 엄밀히 말하면 어제와 오늘 사이에 학평을 살리겠다는 사람과 죽이겠다는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현재 같은 팀이다. 하인정과 박국희는 둘 다 내게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심할 것인가? 혼란스러움을 이기려고 처음처럼을 계속해서 마셨다. 새벽이 저만치 오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새벽비가 내렸다. 눈에서 자꾸만 빗물이 흘러 내렸다.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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