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20. 합창대회

madangsoi 2014. 8. 8. 17:50

“이번에는 우리 반이 꼭 이긴다.”

대전여고와의 합창대회가 열렸다. 1, 2학년 24개 학급 중에서 절대로 예선 통과를 할 수 없다고 저주를 했던 음악선생님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우리 2학년 9반이 예선 4위로 턱걸이 하면서 대전여고와의 연합 합창대회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담임은 예의 쌍욕을 하면서 우리에게 비비빅을 한 개씩 돌렸다.

“날마다 불알 냄새만 휘날리는 줄 알았더니 굼벵이를 닮았냐? 구르는 재주가 있었어. 아무튼 본선에 가서도 잘하면 내가 라면땅 한 봉지씩을 사줄 테니까 예선 때처럼 일사분란하게 잘들 해 봐라.”

담임은 일사분란에 악센트를 주어서 말했다. 그런데 아니, 저 라면땅은 언제적 레파토리인가? 아무튼 라면땅 먹기 싫어서라도 본선에서 꼴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류가 반 전체에 돌았다. 물론 우리에게 히든카드가 있었다. 우리 반 5번 전지음(全知音)이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전두환 대통령과 일가친척이며 자기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5촌 당숙이라고 했다. 대전여고 음악선생님인 아버지는 전두환 대통령과 4촌 사이였다. 하지만 이미 그분은 대통령에서 물러나자마자 백담사에 가셔서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같은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전덕환’이라는, 녀석의 아버지는 아들을 음악인으로 기르기 위해 이름을 지음(知音)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故事)처럼 자신의 음악을 잘 알아주는 아들이 되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녀석은 공부도 잘하고 플롯도 잘 분다. 아마도 제 아버지가 원하는 음대에 인 서울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음이는 자랑처럼 대전여고와의 합창대회가 열리면 우리 반이 무조건 우승이라고 했다. 평소에 뻥을 치는 녀석이 아니라서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자기 아버지와 약속을 했단다. 자기가 합창대회에서 우승 못 하면 가출을 할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우리 학교 음악선생님에게 압력을 넣어서 꼭 우리 반이 우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은 믿지 않았다. 우리가 합창대회에 올인 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음악선생님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였다. 절대로 예선 통과 못 하리라는 음악선생님의 저주를 반드시 깨겠다는 신념이 우리를 뭉치게 했다. 전체 58명 중 농구부 2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합창에 참여했다. 테너, 바리톤, 베이스! 음악을 잘 모르는 우리를 전지음은 닦달했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테너는 오히려 노래를 잘 못 불러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지음은 우리가 보기에 노래 잘하는 아이들을 베이스 파트로 보냈다. 그 다음은 바리톤. 그리고 나머지는 테너. 물론 노래를 제일 잘하는 근수와 도현이만은 테너 파트로 배정했다. 우리는 하루 세 번 모였다. 원래는 하루 한 번 모이기로 했지만 점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하루 세 번 모였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테니스장에서 조회와 종례를 하고 점심시간에 20분씩 합창 연습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 세 번씩 합창 연습을 하게 된 것은 학교 동아리 합창반 반장인 2학년 10반 박국희의 한 마디가 불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음악선생님의 저주가 우리를 독 오르게 했다면, 그의 수제자인 박국희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휘발유를 뿌린 격이 되고 말았다.

“야, 너네 반은 그냥 포기해라. 음악선생님께서 심사위원이신데 너희에게 내린 저주를 극복하겠다고? 아서라, 말아라. 놀지를 말아라.”

“박국희! 아, 저 놈 꼴 보기 싫어서라도 꼭 예선 통과 한다.”

근수가 테너 톤으로 말하자 아이들은 분노의 웃음을 날렸다. 그렇게 우리들의 합창대회는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합창은 혼자서 부르는 게 아니야. 근수와 도현이는 솔로 부분만 빼고는 테너 파트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화음(和音),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거야. 혼자 아무리 잘해봐야 불협화음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그 이유를 좀 이해해라.”

지음이가 다시 한 번 하모니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아무리 들어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가끔씩 바리톤과 베이스 중 일부가 테너 파트를 따라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지음이가 테너 파트에 들어갈 실력의 아이들을 다수 바리톤과 베이스에 배치한 덕에 날이 갈수록 우리 반의 실력은 우리가 보기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음악시간은 음악선생님의 저주로 시작해 저주로 끝났다. 지음이 아버지와 친구 사이인 음악 선생님은 지음이 아빠랑 지음이 반이 예선 통과 못하는데 걸었다고 했다. 음악선생님의 아들과 지음도 친구였는데 두 아들 친구만은 지음이 쪽에 걸었다고 했다. 지음이와 음악 선생님 아들이 이기면 원하는 것 한 가지 씩을 들어주기로 했으며 어버지들이 이기면 대학 입학 때까지 흡연 금지, 야간 외출 금지를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번 합창대회는 지음이 입장에서는 사활을 건 전쟁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나마 우리들이 음악선생님의 저주에 공동전선으로 나선 것이 지음이에게는 천군만마(千軍萬馬)였음에 틀림이 없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서서히 악보를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합창대회가 시작되었다. 강당에 모인 1, 2학년 24개 학급은 대부분 긴장하고 있었다. 물론 이미 포기하고 그냥 무대에 올랐다가 내려올 반도 적잖이 보였다. 그러니까 10개 정도 학급 중에서 4등 안에 들어야 했다. 우리 반은 운이 없게도 2번이었다. 아무래도 초반에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음악선생님의 저주와 박국희라는 왕재수가 있었다. 극복해야할 목표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지음이의 지휘에 눈을 떼지 않았다. 시작은 불안했으나 끝까지 나름대로 연습 때의 실력 이상을 발휘한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자 지음이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우리에게 윙크를 했다. 지루한 순서들이 지나갔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학급들이 지나갔다. 그런 반들은 이미 포기한 반이거나 연습 때보다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리라고 지음이를 대신해서 근수와 도현이가 말했다. 21번째 우리들 공공의 적 박국희네 반이 나왔다. 복장부터 준비가 대단해 보였다. 역시 박국희의 지휘 하에 우리보다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달 수는 없었지만 우리 합창대회 수준에서 최고의 실력이었다. 2학년 1반이 마지막으로 합창을 마치자 박국희를 포함한 합창반이 나와서 우리 시대 최고의 히트곡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을 불렀다. 김민정 작사, 송시현 작곡의 노래는 이선희가 왜 우리들의 영원한 누나인지를 알게 하는 수작이었지만 거기에 박국희가 있었기에 우리 반은 애써 흥분하지 않았다. 이어서 한상억 작시, 최영섭 작곡의 ‘그리운 금강산’에 이르자 우리들은 쌓였던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합창반의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인 방송반 정현우가 나와서 교감선생님을 무대로 모셨다.

“자, 이제부터 한 달 후 대전여고와의 합창대회에 참가할 학급을 호명하겠습니다. 4위부터 호명하겠습니다. 발표는 교감선생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여러분 모두, 우리 대고인 모두가 우승입니다. 먼저 2학년 9반!”

우리는 우리의 귀를 의심했다. 우리 반이 호명된 것이다. 우리는 함성을 질렀고 담임은 특유의 앞니를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라면땅을 우리는 먹어야 한다. 이어서 교감선생님이 3등, 2등, 1등을 불렀다. 1학년 3반, 1학년 9반, 2학년 10반이었다. 박국희의 10반이 1등을 했다. 하지만 우리 반은 음악선생님의 저주와 박국희의 비웃음을 극복하고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얼떨떨한 주말이 지나고 우리들의 합창대회 준비는 계속되었다.

 

오후 5시에 현정이를 만났다. 대전여고 2학년 4반인 현정이네는 2등으로 본선에 진출했다고 했다. 연기군 남면 성남중학교 동기인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게 우연인가, 필연인가? 뭐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현정이 언니는 소문난 미인으로 우리 동네 내 당고모 할머니의 손자인 용길이형과 결혼을 해서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합창대회까지 1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각자 연습을 하러 간다.

“끝나고 밥이나 먹을까?”

“끝나면 바로 우리 담임이 결과와 상관없이 저녁 사준다고 해서 어렵다. 다음에 만나자!”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 ‘나중에 만나자!’가 내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친교적 기능이라는 친한 척하는 기능이 아니기를 바랐다. 핸드폰이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우리가 나중에 만날 일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 나중에 시골에 가면 만나자. 꼭 우승해!”

나 역시 친교적 기능이 가득한 인사말을 전했다. 사실 나와 현정이는 초등학교부터 다를 정도로 만나기 힘든 그저 흔한 중학교 친구였기 때문이다. 덧붙여 ‘우승해!’라는 상투적인 인사말을 남겼다. 참 애틋한 내 감정이 수상하다. 나는 그때 이미 마음에 둔 여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현정이를 보는 눈이 아주 애틋했다. 아마도 합창대회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밤에 인천에 있는 내 여친에게 편지를 썼다. 죄의식에서 비롯된 촌극이었다.

합창대회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은 지음이의 저주로 이번에는 여덟 팀 중 1번을 뽑았다. 하지만 지음이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며 우리에게 힘을 내자고 했다. 리허설은 8번부터 진행되었다. 우리의 원수 박국희 반이 8번이었다. 녀석들은 예의 포스를 풍기며 대고 1위다운 풍모를 보였다. 하지만 예전의 우리가 아니었다. 7번은 현정이네 반, 대전여고 2학년 4반이었다. 남학생만의 합창을 듣다가 여학생의 합창을 듣는 맛이 사뭇 상큼했다. 야릇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여학생을 우리 학교에서 보는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가 평상심을 잃고 있었다. 체육관 바닥에 앉은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계단 위에 앉아있는 대전여고 여학생들에게 추파를 던지는가 하면 아예 침을 흘리는 녀석도 여럿 보였다. 교복 자율화 시대에 맞게 강당 안은 우중충한 회백색의 남학생을 중심 배경으로 빨주노초파남보 화사한 여학생들이 디귿자 모양의 환을 그리며 합창대회에 참가한 2개 학교 8개 학급의 합창을 경청하고 환호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색 반소매 티를 입은 우리 반이 1번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영 작사, 조용필 작곡, 조용필 노래의 ‘여행을 떠나요!’를 지음이의 지휘에 맞추어 부르는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하나가 되었다. 근수와 도현이가 번갈아 가며 독창을 한다. 우리가 듣기에도 아름다운 하모니가 울린다. 아, 이게 하모니구나! 하는 생각이 우리 2학년 9반 모두를 지음이의 지휘봉과 손가락에 꽂혀 황홀경에 이르게 하고 있었다. 이제 고3이 되면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여행을 떠나요’를 즐겁게, 맛있게 불렀다. 도시에 숨은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내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신비한 하모니가 전개되고 있었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봐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여행을 떠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떠나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지음이의 지휘봉과 우리들의 화음이 절묘하게 노래의 끝을 알렸다. 아니,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결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해냈다. 음악 선생님의 저주와 박국희의 비웃음을 이겨내고 이렇게 당당하게 대전고와 대전여고의 연합합창대회 본선에서 1번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열고 있었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라면땅 담임과 파이팅을 외쳤다. 땀을 닦고 몇몇은 어딘가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끽연(喫煙)을 하고 온 모양이다. 담배냄새가 훅 풍겼다. 못 말릴 놈들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하모니를 이룬 사이가 아닌가? 나도 한 모금 빨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시골에서 농사일에 바쁜 엄마를 대전까지 불려오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끌려오게 할 수는 없었다. 사내대장부가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면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객석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미 4번, 우리 학교 1학년 9반이 진행 중이었다. 지음이는 내리 네 학급을 다 본 모양이었다. 아직까지 우리 반보다 잘한 반이 없다는 투로 구시렁구시렁 대고 있었다.

5번은 우리 학교 1학년 9반이었다. 합창반 부반장 최지영의 실력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약간 실수는 있었지만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의 ‘흥부와 놀부’를 잘 마무리 짓고 있었다. 6번은 대전여고 1등 2학년 9반이었다. 베르너의 외국곡 ‘들장미’를 3부 합창으로 정말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하고 있었다. 심사의원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음악선생님 특유의 긍정의 고갯짓으로 보아 그의 눈에는 합격임이 분명했다. 지음이가 긴장을 했는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7번은 현정이네 반이었다. 그런데 비숍의 합창곡 ‘즐거운 나의 집’을 부르기도 전에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지휘에 강아지, 반주에 조미료라는 사회자 현우의 멘트가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참고 있던 대전여고 학생들까지 웃음을 참지 못하자 양교의 학생부장님들이 제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미 현정이네 반은 평상심을 잃고 무대에서 죽을 쑤고 말았다. 현정이가 고개를 숙이고 무대를 내려가는 모습이 더욱 애틋했다. 아, 나 이러면 안 되는데……

“드디어 여러분이 기대하던 마지막 순서입니다. 대전고 예선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2학년 10반입니다.”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동무생각’입니다. 지휘에 박국희, 반주는 이시영입니다.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정현우와 함께 사회를 담당한 대전여고 반송반장 진수진의 마지막 멘트에 객석의 양교 학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감동보다는 이제 합창대회, 아니 행사가 끝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합창반의 반장답게 박국희와 이시영은 고전 중에 고전, ‘동무생각’으로 교내 1등을 차지한 팀답게 오늘도 정말 기가 막히게 합창을 이끌어낼 것이었다. 그런데 반주자인 시영이와 국희가 서로 주도를 하려한 탓인지 시작이 불안했다. 지음이의 해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음이가 손에 땀을 쥐면서 ‘동무생각’이 끝날 때까지 그 사실에 집중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지음이는 지금 아버지들과의 내기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우리 2학년 9반 모두는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 편하게 웃고 있었다. 즐기고 있었다. 음악선생님의 저주를 이겨낸 우리가 아닌가!

결과가 발표되었다.

정현우와 진수진이 무대에 올랐다. 대전여고 교장선생님과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무대에 올라오셨다. 심사를 맡은 우리 학교 음악선생님과 대전여고 음악선생님인 지음이 아빠와 또 다른 심사위원인 태너 박인수 교수도 무대에 올라왔다. 양교 교장선생님 포함 5인의 심사위원의 평가를 학생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3위입니다. ‘흥부와 놀부’를 부른 대전고등학교 1학년 9반!”

최지영과 다른 한 명이 나와서 상장과 트로피를 받았다. 박국희 쪽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엄지를 추켜세우는 것을 우리가 보았다. 우리 반에서 불길이 솟았다. 박국희네 반이 1등이라는 수신호! 우리는 그게 사실임을 알면서도 정말 인정하기 싫었다. 이번에는 최지영마저도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2위는 대전여고 2학년 9반이 차지했다. 이제 우리들의 희망은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 학교와 대전여고에서 각 한 팀씩이 입상을 했다. 남은 1위는 어디로 갈까?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로 향했다.

“네, 영예의 1위를 발표하겠습니다.”

“네, 영예의 1위는 일단 저희 학교가 아니네요. 대전고등학교가 차지했어요.”

“정말입니까? 와, 진짜네요. 대전여고가 양보해 주었습니다. 대고인 여러분, 위로와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체육관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지음이가 말했다, 힘없이!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이제 금연부터 해야겠다. 야간 통행금지도 받아들이고!”

지음이의 하소연인지 넋두리인지를 뚫고 사회자의 멘트가 강당에 울려 퍼져 나왔다.

“네, 오늘 대전고등학교와 대전여자고등학교가 연합으로 개최한 합창대회 우승 학급을 발표하겠습니다. 발표에는 테너 박인수 교수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테너 박인수입니다. 여러분의 합창 정말 잘 보고 잘 들었습니다. 평소 음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합창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울러 오늘 대중음악과 클래식이 끝까지 경쟁을 했습니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우리들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면 모두가 아름다운 우리들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합창대회가 여러분을 어떤 모습으로든 한 단계 성장시켰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모니를 이루지 못한 학급은 학급대로 쑥스러움과 부러움이라는 성찰의 기회를 얻었을 겁니다. 물론 하모니를 이루며 합창의 참맛을 맛본 몇몇 학급의 학생들은 이런 것이 합창의 묘미구나, 이렇게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이 느낌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신 대전고등학교와 대전여자고등학교 두 분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특히 두 분 음악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그러면 발표하겠습니다. 영예의 1위는, 대전고등학교 ‘여행을 떠나요’를 부른 2학년 9반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렇게 합창대회는 끝이 났다.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졌다. 라면땅 파티를 남기고 말이다. 손영광 음악선생님은 이후에도 꾸준히 우리에게 저주하셨다. 음악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처럼 손의 영광을 이루기 위해 또다시 합창반을 데리고 대회를 준비를 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기뻐하면서 ‘손 선생님의 예상이 영 꽝!’이라며 들으라는 듯이 농담을 던졌다. 선생님은 방백인양 우리들의 놀림을 애써 못 들은 척 하시면서 예선 탈락했어야할 학급이 1위를 한 것은 신의 저주라고 하셨다. 박국희는 여전히 합창반 반장으로서 전국대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합창대회였다. 합창대회. 내가 아닌 우리 되기! 하지만 나를 위로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인수 교수의 말이 마파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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