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18. 두 통의 편지

madangsoi 2014. 7. 13. 00:53

“안녕하세요. MBC FM 여성시대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사람들과 만납니다. MBC 표준FM 라디오 95.9MHz에서 날마다 만나는 우리들의 살아있는 이야기. 우리 MBC FM 여성시대는 여성들만의 방송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세상 누구나의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매일 오전 9시 5분에 시작, 11시까지 진행됩니다. 안혜란, 홍지은 연출, 박금선, 성기애, 김보라 작가와 함께 합니다. 매주 여러분을 찾아가는 여성 시대의 새로운 코너. 매주 화요일 2부 순서 ‘파란만장 나의 성공기’는 다음 카페 인터넷 라디오 방송, 이른바 편파 방송과 함께 합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들, 그래서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우리의 인생은 결국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합격한 이야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업이야기, 불화를 이겨내고 용서와 화해를 이룬 인간관계 이야기, 열두 번 채이고도 기어이 이룬 사랑이야기, 단칸방에서 내 집 갖기까지의 이야기, 방황하는 아이를 사랑으로 일으켜 세운 이야기, 그 외에도 성공과 우정과 사랑을 이뤄낸 다양한 분야의 파란만장한 ‘성공기’를 올려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의 편파방송과 함께 만학도들의 꿈과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진행은 편파방송의 두 진행자가 함께 합니다.”

 

“MBC 라디오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 매주 화요일 2부 순서는 파란만장 나의 성공기는 다음 카페 인터넷 라디오 방송, 편파 방송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임청수입니다.”

“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갈마동에서 온 사연입니다. 저는 정성만입니다.”

 

저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용포리 두진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는 늦깎이 학생 안진진입니다. 어려서부터 대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빠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남동생 둘은 제가 미싱공으로 일해서 대학까지 가르쳤습니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오빠가 태산같이 공부를 잘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감히 공부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골보다는 도시가 낫겠다는 생각으로 충남 대덕군에서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대전으로 나왔습니다. 지금은 대전광역시 대덕구로 편입 승격되었습니다. 공장에서 미싱공으로 일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라는 노랫말처럼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돌았습니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셔츠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아니 속옷땀 바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돌았습니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접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등록금 내는 날도 함께 빨리도 찾아왔습니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돌았습니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계절은 또 바뀌어 빨간꽃 노란꽃 꽃밭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돌았습니다. 잠시 쉴 짬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소개해 준 야간 중학교에 갔습니다. 졸음을 참으면서도 공부했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에게 학업을 포기하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추위보다 더위보다 더 힘들었던 건 멸시와 조소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두 남동생에게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오빠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오빠네 가족은 그렇게 미국에서 유학이 아닌 이민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두 남동생의 학비를 벌면서 생각했습니다. 너희 둘만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도 중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두 남동생은 생활력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두 남동생을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나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은 계속 가슴에만 남아있었습니다. 다시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올 때 운명처럼 남편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집장만을 위해 일과 출산, 육아가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두 아들을 연달아 중학교에 보내면서 결심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자! 그래서 큰아들과 함께 공부하려고 서른여덟에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운명은 제게 한 학기를 마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실하고 자상했던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하늘이 캄캄했지만 두 아들을 위해 실망할 수도 울 수도 없었습니다. 두 남동생은 여전히 자신들 먹고 살기 힘들다면서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말뿐인 감사함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배부른 투정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살았던 남편에게 남은 것은 빚잔치를 하고 나자 달랑 집 한 채가 남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땀의 결실인 사업은 공중 분해되었습니다. 다행히 두 아들은 성실하게 전교 석차 10등 이내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큰아들은 동생을 위해 전액 국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바로 삼성전자에 취직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산업대학교 항공운항과에 합격을 했습니다. 등록금은 물론 용돈까지 벌어 쓰면서 동생을 위해 일하는 큰아들을 보고 작은아들도 형에게, 아니 내게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눈물이 났지만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에게 눈총을 받을 정도로 마냥 웃고 살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기뻐서 눈물이 나려했지만 두 아들에게 행복한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늘에 있을 남편에게도 성실한 당신 덕에 내가 호강한다고 웃음으로 인사하는 매일이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문제는 대전에서 서울에 통학하기 힘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기숙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기일에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시간을 쪼개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큰아들은 봉투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그곳에 학사장교 합격통지서가 들어있었습니다. 잠시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자신의 적성을 살려서 공군 단기장교로 입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어서 작은아들이 봉투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이게 뭐냐?”

“한 번 열어 보세요.”

봉투 안에는 천만 원짜리 수표 2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두 아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작은아이가 말했습니다.

“형과 제가 그동안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각자 천만 원씩 모은 돈이에요. 딱 천만 원씩이라고 정한 것은 아닌데 오늘 아버지 제사 지내러 오기 전에 엄마에게 좋은 선물을 드리려고 한다고 했더니 형도 준비했다는 겁니다. 은행도 같은 국민은행이라서 함께 수표를 준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각자 준비했는데 이심전심(以心傳心)인가 봐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모았니? 너희들 쓰기도 부족했을 텐데. 게다가 엄마에게 거의 용돈도 안 받은 너희들이 어떻게?”

나는 정말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요. 물론 부족하지만 엄마가 대학에 들어갈 때 등록금으로 준비한 겁니다.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 등록금도 제 월급이랑 동생의 알바비로 조금씩 충당하기로 했어요. 엄마는 엄마 생활비만 벌만큼만 일하세요. 공부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엄마 갈마동의 정원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네요. 오늘 아버지께 제사지내면서 약속할 게요 엄마의 평생의 꿈을 이루어 드릴게요.”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호랑이가 시집가는 날처럼 햇살 가득한 하늘에 소나기가 내리는 격이었습니다. 그날 함께 남편 제사를 지내고 함께 음복을 하면서 지난날을 원망하는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우리 가족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감사의 축배를 제안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이제 장남으로서 작은 일을 해냈습니다. 진달래!’

‘아버지, 형과 함께 엄마 잘 모시고 엄마의 평생 꿈을 이루시게 해드릴 게요.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진달래!’

‘여보, 정말 당신의 두 아들, 아니 우리 두 아들이 내게서 울음을 빼앗아가 버렸어요. 앞으로 계속 웃음 잃지 않고 잘 살게요. 진솔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진달래!’

 

그해 겨울 서구 갈마동에 있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학교인 정원중고등학교에 가서 두 아들과 함께 야간반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자원입대한 큰아들이 중위에 진급하고 얼마지 않아 저는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기 전인 4학년 때 임용고시에 합격한 작은아들은 다음 해 3월 서울 동작구에 있는 강남중학교에 부임했습니다. 중3 담임인 아들은 엄마의 고등학교 입학식에 가보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이 대신 그 자리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두진 아파트에 통학을 하면서 가사도우미로서 열심히 한 할아버지를 위해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편파방송의 두 선생님이 전해주시는 편지들의 파란 빛깔에서 날마다 피곤을 날려줄 청량함을 맛봅니다. 이제 2년 후면 대학에 진학합니다. 서울로 갈까 대전에 남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 서울로 보냈으니 저는 대전에 남아 하늘에 있는 우리 어리광쟁이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두 아들은 제게 학부모로서 잔소리를 할 겁니다.

“엄마, 기왕 시작했으니 인 서울을 목표로 하는 겁니다. 다른 생각은 마시고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형설지공(螢雪之功)! Impossible is nothing! 불가능, 그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끝까지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편파방송에 편지 보내서 편파적으로 아들들 자랑해도 될 자격 있지요?

 

“네, 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

“우리 부장님, 또 눈물 흘리시느라 말씀 또 못 하시네요.”

“네, …… 정말 알토란같은 두 아드님께 박수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양희은, 강석우 씨! 이 어머니께 좋은 선물 하나 부탁드릴게요.”

“네, 강석우 씨가 하나 드릴 겁니다. 저도 참 어렵게 자랐지만 이 두 아드님처럼 감동적이고 희생적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주 성질이 욱하는 데가 안 좋았거든요.”

“네, 삼성전자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갤럭시 S2 HD LTE 선물로 드리고요, 월말에 행남자기 제공 본 차이나 3세트, 엘지 시네마 3D SMART TV 55인치와 패밀리 레스토랑 VIPS 가족 식사권 4세트 받으실 후보 되겠습니다.”

“네, 어머니 이제 고등학교 숙제는 스마트 폰으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정 선생님, 아무튼 우리가 여성시대 덕에 정말 더욱 스마트한 세상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자니 가마니 같고, 두고 보자니, 보자기 같네요.”

“하하, 부장님의 허걱, 언어유희. 함께 듣겠습니다. god가 부릅니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로 더 잘 알려진 [어머님께]!”

 

어려서 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끊여 먹었던 라면/ 그러자 라면이 너무 지겨웠어/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고/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지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중학교 1학년 때 도시락 까먹을 때/ 다 같이 학교 모여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부잣집 아들 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어/ 반찬이 그게 뭐냐며 나에게 뭐라고 했어/ 창피했어 그만 눈물이 났어/ 그러자 그 녀석은 내가 운다며 놀려 댔어/ 참을 수 없어서 얼굴로 날라간 내 주먹에/ 일터에 계신 어머님은 또 다시 학교에/ 불려 오셨어 아니 또 끌려 오셨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비셨어/ 그 녀석 어머니께 고개를 숙여 비셨어/ 우리 어머니가 비셨어//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아버님 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어/ 맛있는 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갖게 됐어/ 그리 크진 않았지만 행복했어/ 주름진 어머니 눈가엔 눈물이 고였어/ 어머니와 내 이름에 앞 글자를 따서/ 식당 이름을 짓고 고사를 지내고/ 밤이 깊어가도 사람들은 떠날 줄 모르고/ 사람들의 축하는 계속되었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갔어/ 피곤 하셨는지 어머님은 어느새 깊이 잠들어 버리시고는/ 깨지 않으셨어 다시는//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나 한 번도 말은 못했지만/ 사랑해요 이젠 편히 쉬셔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이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어머님께], 짜장면이 복수표준어가 되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던 데니 안의 기사가 기억납니다.”

“예, god 멤버들의 호소력이 짙은 랩과 화음, 그리고 감미롭고 호소력 있는 김태우의 가창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가사가 주는 무게도 대단하죠.”

“대들었어. 비상금. 어머니와 내 이름에 앞 글자를 따서 식당 이름을 짓고 고사를 지내고, 이런 가사들은 한 편의 소설, 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음 사연은 방금 전 사연에 흡사 답장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정착한 오빠가 여동생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입니다.”

 

동생, 미안하네.

방송이라 자네 이름을 대지 못하는 점 이해하시게! 자네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맡기고 홀로 나 잘난 맛에 서울에서 의대를 마치고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복한 집안의 네 올케를 만나서 가족들 다 버리고 떠난 유학은 순탄했다. 뉴욕에서 처가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끝내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정착하게 되었다. 외과 외래교수가 되었고 아이들은 자라서 미국 사람이 다 되어 갔단다. 하지만 내 가족보다는 처가 식구에게 모든 것을 우선했다. 아버지에게 겨울 내의 한 벌 보내고, 엄마에게 용돈 한 번 보낸 게 전부였다. 자네 올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아이들은 미국 사립학교에서 잘 성장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네 올케였다.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사람이었고 고생을 모르고 살아서인지 자꾸만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외과의사라는 게 그렇단다. 빚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명예욕을 가지고 계셨던 장인의 요구에 의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명문 컬럼비아대학에 남게 된 게 문제였다. 올케는 자꾸만 히스테리를 부렸고 급기야 알콜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급기야 마약에 손을 대게 되었지. 작은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어. 제 형과 달리 미국 상류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장인이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아내는 한국에 가서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알콜 의존을 극복하고 마약은 정신과 치료를 통해 이겨냈지. 아마도 한국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결혼 전에 서로 사랑했던 남자의 힘이 강했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내게 이혼을 요구했다. 나는 이 결혼은 나와 아내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당신의 아버지, 장인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장인도 딸의 몰락한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협의 이혼을 했다. 문제는 아내가 아니라 작은아들이었다. 미국 상류 사회에 적응을 못했던 작은아들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자신을 무시하고 핍박했던 백인 아이들 일곱 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일곱 명 중 4명이 즉사하고 3명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불구가 되고 말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 2명이 더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아마 한국에도 이 뉴스가 전해졌을 것이다. 그 사건의 한국계 미국인이 내 작은아들이다. 결국 장인어른이 나서서 사건을 처리했다. 상상하기 힘든 보상을 해주었다. 물론 작은아들이 피해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법의 판단을 받는데 적절한 작용을 할만한 미국 저명 변호사들이 로펌을 통해 배당되었다. 아마도 실형을 크게 받겠지만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이 많은 감형을 받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헛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차라리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았다면 아내와 작은아들, 내 가족을 잃지 않았을텐데. 이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와 두 동생, 그리고 너를 생각하지 않았다. 참 이기적이지? 그런데 말이다. 우연히 듣게 된 한국 방송의 여성시대를 듣다가 생각했다. 내가 네게 용서를 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네게 용서를 빌 수 있는 방법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네가 이 편지를 방송으로 듣고 내게 답장을 해준다면 나는 네게 용서를 빌고 싶다. 그리고 네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다는 헛된 생각을 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동생아!

나만 알고 나만 위해, 그리고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았던 내 부끄러운 삶에 대해 네게 용서를 구한다. 모든 짐을 네게 주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그저 대나무 숲에 가서 내 궁한 목숨을 위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했던 복두쟁이처럼 나 살자고 이렇게 여성시대에 글을 보낸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네가 이 편지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 난 이기적이다. 하지만 네가 이 편지를 꼭 들었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바보 같은 삶을 살았던 오빠가!

 

“……”

“……”

“……”

“……”

몇 초라고 하기에는 긴 시간 동안 스튜디오는 조용했다. 찬물을 끼얹은 것과는 다른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방송 사고였다. 여동생에게 보내는 일반적인 반성의 내용을 상회하는 이 묵직하고도 아이러니한 편지의 내용. 한편의 드라마가 이보다 더한 인상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원 생방송이 갖는 묘한 매력! 편파방송도 여성시대도 잠깐 침묵이 오고 갔다. 묘한 기운에 숙연해 있던 안혜란 PD를 대신해서 항상 이성적인 판단으로 위기마다 대처를 잘했던 홍지은 PD의 멘트가 진동과 함께 붉은색 형광빛으로 떴다. 방송 사고는 겨우 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민한 애청자는 벌써 짐작하고도 남을 몇 초였음에 틀림이 없다.

‘진행하세요. 바로 음악 하나 보낼 게요. 한 편의 소설 같은 편지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여성시대를 깨우는 이 소리, 편파방송의 두 선생님께서 눈물 흠뻑 흘리게 했습니다. 함께 듣겠습니다. 이승철과 크리스티나가 부릅니다. I Believe!’

강석우를 대신해서 관록의 양희은은 에드립을 펼친다.

“네, 한 편의 소설 같은 편지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여성시대를 깨우는 이 소리, 편파방송의 두 선생님께서 눈물 흠뻑 흘리게 했습니다. 함께 듣겠습니다. 이승철과 크리스티나가 부릅니다. I Believe!”

“이승철 씨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크리스티나의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 정말 우리의 아픈 마음과 닮았네요. 준석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하세가와 타츠오가 절규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오버랩 됩니다.”

“네, 강석우 씨의 목소리도 이 분위기에 딱 맞아요. 장동건 씨와 오다기리조 씨의 모습이 선합니다. 그런데 우리 편파방송의 두 선생님은 아직도 말씀이 없으시네요. 임청수 부장님 우시는 거 아니죠?”

“네, 맞아요! 우리 부장님 지금 엉엉 울고 있습니다. 양희은 씨 덕에 방송사고 면했습니다. 부장님을 위해 노래 하나 신청할게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주현미 씨의 ‘신사동 그 사람’ 띄워 주세요.”

“네, PD님 오케이 사인 들어왔습니다.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야 여성시대나 편파방송이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노련한 여성시대 프로 방송인들은 그렇게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네, 안진진 씨와 같이 삼성전자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갤럭시 S2 HD LTE 선물로 드리고요, 월말에 행남자기 제공 본차이나 3세트, 엘지 시네마 3D SMART TV 55인치와 패밀리 레스토랑 VIPS 가족 식사권 네 세트 받으실 후보 되겠습니다.”

“미국에도 보내드립니다. 미국과 연결을 해보면 좋을텐데 현재 분위기 봐서는 생략하는 게 낫겠습니다.”

“매주 화요일 2부 순서는 파란만장 나의 성공기는 다음 카페 인터넷 라디오 방송, 이른바 편파 방송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2부가 끝나가고 있었다. 57분 교통정보는 8시 경에 일어난 동부간선도로에서 화물차와 K5 승용차 간의 정면충돌 사고와 안전거리 미확보로 인한 연쇄 9중 추돌 사고로 인한 정체로 인해 9시 30분 이전에 막히던 올림픽대로와 남부순환도로의 정체가 서서히 풀려서 출퇴근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전하고 있었다. 낭랑한 교통방송 리포터의 쾌활하고 명랑한 목소리는 가라앉았던 스튜디오를 아침햇살처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편파방송 스튜디오 역시 두 선생님과 방송반원들로 인해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흘 전!

“네, 안준 박입니다.”

“안녕하세요. 편파방송 임청수입니다. 박안준 선생님이신가요? MBC 여성시대 매주 화요일 2부 순서 ‘파란만장 나의 성공기’는 다음 카페 인터넷 라디오 방송, 이른바 편파 방송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연 보내신 박안준 선생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은 박안준이 맞기는 한데요 원래 이름은 안준입니다. 외자 이름이죠! 처가에 아들이 없어서 미국으로 유학 겸 이민하면서 First name을 처가의 성인 박(朴)으로 바꾸었습니다. 밀양 박이 본관이죠. 그래도 제 성은 그냥 두었습니다. 안흥 안(安)씨! 아들들 First name은 박이고 또다른 First name이 안입니다. Tom Ahn Park, John Ahn Park. 이번에 사고를 친 녀석이 John Ahn Park입니다. 장인어른이 아마도 박경리 선생의 [토지] 펜이었던 모양입니다. 최서희가 김서희가 되고 김길상이 최길상이 되었던 스토리 말입니다. 하동이 아니라 간도에서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내와 이혼했지만 저는 밀양 박 씨 가문 사람입니다. 아버지에게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장남이 가문을 배신한 겁니다. 그래서 더욱 부모님께 연락을 자주 못합니다. 경제적으로 돕고 싶지만 아버지는 너나 잘 살라고 하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라디오 생방송 중에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런데 본래 성이 안 씨였다고요? 그럼 혹시 안진진이라는 사람을 아세요?”

“네, 제 바로 밑 여동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장님께서 아시죠?”

“이번에 그 분도 저희 편파방송에 사연을 보내주셨거든요. 그런데 성만 빼고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남매인 것처럼 일치하는 겁니다. 그래서 설마 했거든요. 와,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요.”

“필연이겠지요. 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려는 주님의 필연 말입니다.”

“그렇게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동생 분의 편지를 스캔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받아 보시면 아시겠지만 동생분이 고생은 많이 하셨지만 지금 건강한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하고 다복하게 살고 계세요. 땀흘리지 않고 거저 무언가를 받을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방송 중에 전화 연결 가능할까요?”

“네, 한국에 있을 때도 진진이는 그렇게 꿋꿋한 아이였죠. 저도 제 과거를 모두 말하고 제 동생 안진진에게 사과를 하고는 싶지만 잘살고 있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 작은아들 때문에 우리 가족 이야기가 언론에 공개되면 한국에 있는 제 동생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부탁인데요. 안진진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알아봐 주세요. 공짜는 절대로 싫어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원하는 만큼 드릴 수 있습니다.”

“네, 제가 잘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맡겨주시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메일은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기다리겠습니다.”

잉글랜드 요크셔 지방 사람들의 꿈처럼 들리는 New York의 치즈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안준 박에게서는 투박한 충청도 한밭의 내음이 태평양을 건너 아스라이 전해오고 있었다. 밀양 박 가문의 아들이 된 사람. 밀양 박 가문의 대를 이어준 사람. 그러면서도 순흥 안(安) 씨를 또다른 First name으로 가진 사람! 그리고 미국의 어두운 면을 극렬하게 보여주는 New York 총기 난사 사고의 주인공인 작은아들의 아버지인 사람. 파란만장(波瀾萬丈)! 그에게 딱 어울리는 성어다.

 

메일이 왔다. 안준 박, 안준은 편파방송 임청수 부장의 첨부파일을 읽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았던 자신과 너무도 다르게 살았던 여동생의 삶이 한없이 측은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여동생의 삶이 어쩌면 자신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날마다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자신만을 위해 성까지 바꾸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소설 [토지]까지 언급하며 자신을 변호하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서 혐오감을 느꼈다. 오히려 여동생의 일신우일신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보다 혼자서 두 아들을 키워냈다는 사실보다 더한 감동은 아버지 없이도 꿋꿋하게 성장한 두 조카에게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현실에 대해 항상 욕이나 하면서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가족을 버리고 미국에 정착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여동생 가족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자신과 자신의 두 남동생이 얼마나 파렴치한가를 성찰하게 되었다. 반성하게 되었다. 눈물이 났다. 편파방송 임청수 부장은 여동생을 도와줄 방법을 또 다른 첨부 파일에 담고 있었다. 아주 멋지고 여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계획이었다. 편파방송의 그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같은 계획이었다. 아니, 그만이 할 수 있는 멋진 계획이었다. 자신은 임청수 부장이 부탁하는 대로 소정의 금액, 한 달에 이백 만원을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또 하나의 제안이 들어와서 흔쾌히 응했다.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일 년에 4기분 164만원이 든다고 해서 3명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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