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은 시청, 시청역입니다.”
2호선 시청역에서 내린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48 서울시 교육청에 가는 길. 오후의 햇살은 벌써 여름처럼 뜨겁다. 훅하는 열기가 넥타이를 풀게 한다.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기분 좋게 나온 길이지만 마음은 무겁다. 문서수발함에 들러 문서를 수발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우리 학교 행정실은 직원이 너무 없다. 경리부장을 겸한 행정실장과 사무직원 한 명이 전부다. 그래서 오늘의 나처럼 교육청에 가는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문서수발함에 들르는 것은 일상사인 것이다.
오늘은 7층 학교혁신과에 들를 일이 있다. 서울특별시 동아리한마당 연극마당에 나가기 위해 장학사를 만나러 간다. 상당히 호의적인 장학사는 우리 학교를 권역별 예선 없이 출전하는 특혜를 주었다. 오늘은 그에 대한 답례로 인사차 방문하는 길이다. 유선으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사람 일이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부담스러운 사람과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애써 눈을 피하기 일쑤다. 하늘 향해, 상박 15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본관에 들어서서 학교혁신과의 사무실 위치를 파악한다. 넓은 공간과 깔끔하고 중후한 인테리어가 부러움을 사게 한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우리같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학교들은 한두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설이 열악하다. 평생교육법이 정하는 교실과 복도의 면적이 16평 이상이니까 25평이 기준인 정규 학교에 비해 태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실속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실속도 없어 보인다. 또 대부분은 증축과정에서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샌드위치 판넬을 사용하여 간이주택의 형태를 띠거나 컨테이너박스 자체로 교실을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학평 선생님들과 연수 등을 이유로 개별 학교에서 만나면 서로 보기가 민망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좋은 시설이 보이면 서로 부러워하기도 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기로 한다. 살도 빼고 교육청 분위기도 맛볼 겸, 일석이조라고 홀로 생각한다. 로비를 가로지르다가 게시판에 눈을 돌린다.
꿈의 학교 행복한 서울 교육! 아래로 교육청 CI가 눈에 보인다. 휘장의 의미! 휘장은 세 개의 타원으로 구성된 사람 형태로서 도덕적 창의적 자율적인 ‘인간중심 교육’을 지향하고, 팔을 벌린 형태는 무한한 가능성과 포옹력과 함께 ‘열린교육의 이미지’를 상징하며, 주색상인 청색은 미래지향의 발전적 이미지인 희망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보조색은 녹색으로 젊음과 성장의 의미를 함축한다. 휘장의 색상은 바탕색을 흰색으로 하고, 미래지향의 발전적인 희망의 의미를 상징하는 주색상은 청색[별책 : PANTONE 293C(Cyan 100% + Magenta 60%)]을 젊음과 성장의 의미를 상징하는 보조색은 녹색[별책 : PANTONE 3275C(Cyan 90% + Yellow 50%)]을 각각 사용한다. 이런 의미라는 것을 대충은 알았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휘장을 가진 서울시 교육청은 행복할 것이다. 순간 서울특별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교육감의 인사말이 생각났다.
“꿈의 학교, 행복한 서울교육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들이 웃을 때 세상이 함께 웃습니다.
학생들의 얼굴이 환할 때, 나라의 미래도 환해집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양한 꿈이 자라는 희망교육,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모두의 재능이 꽃피는 혁신교육,
함께 하는 참여교육을 이루겠습니다.
꿈의 학교, 행복한 서울교육의 문을 함께 열어 주십시오.
서울특별시교육감 감도현.
1심에서 4,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교육감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후보자 매수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을 받은 감도현(55) 서울시교육감이 항소심에서 더 무거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법정구속은 면했다. 이에 따라 감 교육감은 대법원 확정 판결(8월)까지 ‘4개월 시한부’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교육계와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즉각적인 사퇴’와 ‘흔들림 없는 직무수행’을 놓고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18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유재석)는 2010년 4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사퇴한 대가로 박명수 전 서울사대 교수에게 3억 원을 지급한 혐의(지방교육자치법 위반, 공직선거법 준용)로 기소된 감 교육감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4,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법령 해석을 다투고 있어 법률심인 상고심에서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며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감 교육감은 ‘공소제기 후 구금 시에 직무 정지’되는 규정에 따라 교육감 직을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 상고심에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교육감 직을 내놓고, 선거비용 보전으로 받은 40억여 원도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
재판부는 “감 교육감이 금전 합의를 뒤늦게 알았고 박 전 교수 측의 줄기찬 금전 지급 요구가 있었다.”면서도 “교육 비리를 앞장서서 막아야 할 교육감이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수억 원이나 되는 큰돈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 형량은 지나치게 가벼워 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후보 사퇴를 이유로 금전을 주고받는 것은 유권자의 선거권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중대 범죄이고, 숭고한 교육의 목적을 실천하는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를 사후적으로 매수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3억 원의 ‘대가성’과 관련해 재판부는 “선의로 주기에는 너무 큰 액수인 데다 둘 사이가 큰돈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로 보기 어렵고, 감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라는 정치적 이익을 얻은 점을 고려하면 대가성이 있다”며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감 교육감은 선고 직후 “사실 관계는 바뀌지 않았는데 양형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진실과 정의를 밝히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18일 세계일보 기사가 오버랩 되었다. 하지만 언론에 당당했던 교육감은 역시 서울시 교육청 로비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예의 15도 꺾인 각도는 보이지 않는다. 연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15도 정도는 우습게 교정할 수 있다. 역대 교육감들의 사진도 있다. 분명한 공과 없이 지나간 교육감도 있었지만 최근의 직선 교육감은 정치 논리 앞에서 예외없이 송사에 휘말려서 입맛이 씁쓸했다. 2010년 7월 1일 이후 학평 학교들은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현실에서 바라보는 교육감의 15도 꺾인 고개가 자꾸만 눈에 거슬리나 보다.
7층 학교혁신과를 향한다. 장학사를 만나서 인사하고 서울학생동아리 한마당 연극마당에 시간 배정에 대해 시간 배려를 부탁한다. 될 수 있으면 오전보다는 오후에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녁 시간은 힘들다고. 우리 학교 성인 학생들에게 오후 시간의 혜택을 부탁한다. 성인 학생이라는 말에 조금 놀란다. 학생하면 청소년만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2층 문서수발함에 가기 전에 교육정보부장이 부탁한 일 때문에 평생학습진흥과 평생교육 담당 주무관을 만나러 간다. 4층에 위치한 주무관 사무실에 노크를 한다. 장학사 한 분이 자리를 배려한다. 커피와 녹차를 권한다. 녹차를 선택한다. 스스로 타 먹는데 배려를 해주는 마음이 살갑다. 고맙다. 학평 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이다. 물론 겉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는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 하는 내가 오늘은 가엾지 않다. 주무관의 이름이 어딘지 낯이 익다. 박국희! 네이트 온이 켜져 있다. 어디선가 누구와 카톡을 하는 모양이다.
“이번에 5개 학교 가능합니다.”
“그런데 8개는 있어야겠어!”
“너무 많은데요?”
“우리 말고 장관, 교육감, 부교육감도 한 몫씩 줘야지.”
“아무튼 그분들께는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겠지. 워낙에 주도면밀한 교장들이 많으니까.”
“네, 호락호락한 사람이 대여섯 정도 되니까 다행이죠.”
“아무튼 노후보험 설계라고 생각하고 정의의 복수를 하자고!”
“네, 원한도 갚고 노후 보험도 확보하고 일석이조입니다.”
“그래, 박주무관만 믿겠네!”
“네, 강영식 의원님만 믿겠습니다.”
“비밀은 무덤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의혹!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캡처 하듯이 찍는다. 정확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확인을 한다. 뭔가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여유롭게 녹차를 마신다. 친절한 여성 장학사는 자신의 일에 몰두해서 내가 하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주무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온다. 의외라는 듯 씩 웃는다.
“무슨 일이시죠?”
“네,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왔습니다. 교육정보부장이 주무관님께 가면 책자를 주신다고 해서요.”
“아, 당신정보산업이라면 학평?”
“네!”
“학평! 아니, 이거 임청수 선생님 아닙니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우리가 그 짝이네요.”
“아, 그러면 제가 아는 박국희?”
“그래, 나야 박국희! 우리 인연은 언제까지 갈까? 우리 내기 한 번 하자.”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언제 만나서 술이나 한 잔 하자. 10년 만이지. 안경을 써서 몰랐나? 야, 너 성형했냐?”
“그래, 어떻게 알았지! 아무튼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면 25년의 질긴 인연이다.”
“그래 질기기는 하다.”
“네가 말한 책자다. 별건 아닌데 내가 좀 귀찮게 했다. 그런데 네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인정 선생님 알지? 그 분도 평생교육국 공익법인담당 주무관으로 와 있어. 아무래도 당신정보산업에서 좋지 않게 나와서 이 갈아 마시고 공부한 모양이야. 동작교육지원청에 계시기에 내가 본청으로 모셔왔어. 뜨겁게 복수 한 번 하려고.”
“복수?”
“놀라기는? 복수는 무슨 복수야. 조강지처 버리면 천벌 받는다잖아. 그냥 옛 생각해서 도울 일 없나 하고 관심 좀 갖는 거야. 근데 왜 그렇게 놀라냐?”
“아니, 그냥. 부러워서.”
“요즘도 학교 승계 운운 하면서 전문가가 되지 않으려면 떠나라고 그러냐? 그 레퍼토리 좀 바꾸라고 해라. 어렵다면서 최고급 승용차 타고 다니는 건 좀 모순 아니냐? 그때 백일장에 2학년 애들이 쓴 원고 때문에 좀 많이 웃었냐? 아무튼 그 엄살은 여전해. 학평을 잡겠다고 교과부와 교육청이 벼르고 있다고 엄포만 놓지 사유재산을 누가 뺏겠냐? 괜히 교사들 월급 동결 시키려는 꼼수야, 꼼수.”
“아무튼 어렵다고 하기는 하더라. 승계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문 닫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이야. 몇 년째 월급, 동결은 고사하고 삭감되는 중이야. 내가 무능한 걸 탓해야지, 어쩌겠냐?”
“공익법인으로 돌리면 교사들 신분 보장되고 좋은데 왜들 그렇게 힘들게 저항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재산은 그대로 인정해주고 운영비와 인건비는 지원하되 통제는 적게 받겠다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냐. 하기는 이 일의 시작은, 통제는 안 받으려고 하면서 지원은 특성화고교랑 똑같이 받겠다고 주장하는 부산지역 학평 때문에 생긴 거지. 서울이야 같은 학평이라는 이유로 투명하게 운영하고서도 가장 큰 정(釘)을 맞은 거지. 서수도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제일 불쌍하다. 오직 교육밖에 모르는 분이셨는데. 술 좋아하시고 사람 좋아하셨는데 안 됐다.”
“그래서 올해 신입생 모집 안했잖아. 지금 2학년들 내년에 졸업하면 접으신단다. 아마도 눈물의 졸업식이 될 거야. 많은 기자들이 오겠지. 마지막 고등공민학교였다며? 학평으로 이름 바꿀 때도 모든 일간지와 방송, 인터넷 매체에 떠들썩했잖아. 자존심이 상하신 거야. 일부 학평의 졸업장 장사를 가지고 싸잡아서 도둑놈 취급을 했으니 대쪽같은 그분 성미에 돌아가시지 않은 게 다행이지. 지금도 거의 날마다 술로 하루하루 보내신다고 하지, 아마.”
“그래,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너희 당신정보산업고도 이제 선택의 순간에 와 있지. 이번에는 견디기 힘들 거다.”
박국희는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을 애써 감추며 훗입맛 사나운 말을 남기며 어색한 미소를 보이는 작별을 고했다.
“그래도 내가 있던 곳인데 설마 표적 감사야 나가겠냐? 아무튼 학교 잘 지키고 학생들 잘 가르쳐라. 아직도 애들 화장실에서 떼거리로 너구리 잡냐? 하하하. 잘 가라, 내 명함이다. 시간나면 전화해라, 한 잔 살게. 참 야간 수업 이틀 빼면 술 마실 시간도 없겠다. 이 참에 직장 한 번 옮겨 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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