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방송(임흥수, 장편소설)

21. 하인정

madangsoi 2014. 8. 8. 17:51

“안녕하세요. 저 하인정입니다.”

“아, 이게 누구야. 지난번에 교육청에 문서수발 갔다가 박국희 주무관을 만나서 알았어요. 본청에 근무한다고. 가나영 선생님 통해서 동작교육지원청에 상담전공으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옮겼어요?”

“왜 갑자기 존댓말을 쓰세요, 어색하게. 언니가 부장님 말씀 많이 했어요. 여전히 바쁘게 일하신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2011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 연극마당에 출품한 작품 ‘하늘이야기’ 재미있었어요. 결국 10년 만에 교육감상과 우수교사상 받았다는 것도 이원숙 장학사님께 들었어요. 학평에서 유일하게 나와서 유일하게 수상한 것도 특이하다고요. 올해도 나오실 거죠? 올해는 ‘동백꽃’인가요?”

“와, 세상 정말 좁아요. 모르시는 게, 아니 모르는 게 없네. 올해는 ‘동백꽃’으로 가려고 하고 있어요. 아무튼 언제 만나서 선생님 좋아하는 모듬회에 술 한 잔 하죠.”

“네, 아무튼 여러 가지 일로 나영이 언니랑 한 번 만났으면 좋겠어요. 다음 주 목요일 어때요?”

“내가 야간이 화, 목이라 어려운데, 늦게 만나도 괜찮으면 상관없고요.”

“상관없어요. 서울대입구에서 나영이 언니랑 간단하게 차나 한 잔 마시다가 야간 끝나는 시간에 만나요. 다른 분들은 모시고 오지 마세요. 학교가 없어진다니까 누가 적이고 누가 편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대요.”

“그래, 그럼 다음 주 목요일 야간 수업 끝나고 봐요.”

남의 말처럼 ‘학교가 없어진다니까 누가 적이고 누가 편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대요.’라는 말이 좀 걸렸다. 그런데 박국희가 섭외하고 포섭한 듯한 하인정 선생이 갑자기 왜 만나자는 것일까? 사실 내 생각에 그녀가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처음으로 서울학생동아리 한마당 연극마당에 나가면서 나는 초임인 그녀에게 문학예술제 시낭송을 통째로 맡겼고 맡은 일에 올인하는 그녀는 몸과 마음이 상할 만큼 정말 열심히 해서 그해 시낭송은 많은 박수와 격려를 받았지만 그녀는 다음 해 2월에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동작교육지원청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선배인 가나영 선생님께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였다.

 

목요일 야간 수업이 끝나고 서울대입구에서 가나영 선생님과 하인정 선생님을 만났다. 학교를 그만둘 때보다 많이 아름다워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교육공무원인 현재의 신분에 바탕 한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내 자격지심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반가워요. 확실히 공무원이 좋긴 좋은가 보네요. 몰라보게 아름다워지셨습니다.”

“부장님, 웬 존댓말?”

“그러게요. 제가 말씀 놓으라고 했죠? 말 놓으세요.”

“이렇게 본청 직속 공무원을 만났는데 말을 놓기가 쉽지 않아요. 하하, 농담이고. 그럼 말 놓을게.”

“일미가 참치에 예약해봤는데 괜찮죠?”

“걱정 마, 우리 부장님 참치회 하면 죽어! 그렇죠, 부장님!”

우리는 근처의 Angel In Us 커피전문점 건물 3층에 있는 일미가 참치횟집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는 좀 그렇다는 생각을 했지만 치마를 입은 두 선생님을 보고는 생각을 고쳤다.

“여기 예약했는데요.”

하인정 선생님이 말하자 홀 서빙을 하는 여자 분이 환하게 웃으면서 안내했다. 4인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독립된 방이었다. 단 둘이 왔으면 많이 어색했으리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장님 또 쓸데없는 생각한다. 우리에게 부장님은 남자로 안 보이니까 걱정 말고 앉으세요. 하긴 우리가 인물이 되니까 여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호호호!”

역시 가나영 선생님은 정말 탁월한 몽상가다. 하지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지레 크게 웃었다. 하인정 선생님이 가나영 선생님과 과하게 실장님 3인분을 시켰다. 지갑 사정이 걱정되었다.

“우리 부장님 과하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인정이가 교육공무원 된 기념으로 꼭 한 번 부장님 모시고 싶다고 했어요. 오늘이 그날입니다. 걱정 말고 마음대로 드세요.”

“으이구, 하여간 사람 속마음을 정말 잘 읽는 걸 보니 돗자리 깔아야겠어, 우리 가샘”

“그럴까요? 인정아, 나 자리 깔러 간다.”

“어디 가게?”

“하여간 두 사람이 똑 같아. 내가 화장실 가는 것까지 보고하면 많이 우습겠지. 나도 참치회 좋아해.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하고 싶다던 얘기나 하셔!”

가나영 선생님이 나가고 잠시 침묵이 돌았다. 나는 미역초무침에 처음처럼을 마셨다. 하인정 선생님이 대작을 하고는 입에 소주를 적셨다.

“오늘 뵙자고 한 건요 나영이 언니도 있고 함께 고생했던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 그리고 교감 선생님에 대한 제 충정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예요. 지난번에 박국희 주무관님 만나서 말씀 들으셨겠지만 감사 한 번 나가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학교 없는 거 아시죠? 박 주무관이 교육의원 한 분과 저, 교과부 차관 한 분, 그리고 평생교육국장님과 함께 학평 학교들 폐교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승계 문제인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다음이 제 업무인 공익법인으로의 전환인데 이것도 아시는 일이겠고, 아무튼 분위기 상 이대로 가면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도 위험할 수 있어요. 공익법인 만들면 대전 정원중고등학교처럼 학교를 빼앗길 확률도 높고요. 서수도중학교처럼 감정이 상해서 문 닫을 분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생각하면 제가 꼭 돕고 싶어요. 이쪽의 사정을 아예 모르고 대처하는 것 보다는 알고 대처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날 박국희 주무관을 기다리다가 네이트 온에 누군가와 카카오톡하는 내용이 이상해서 화면을 캡쳐 했는데 한 번 볼래요?”

“맞아요. 강영식이라는 분이 서울시 교육의원이거든요. 이 분이 처음에 이 문제를 제기했어요. 알고 봤더니 이 분이 당신중학교 출신이에요. 중학교 때는 학교를 잘 다녀서 개근상까지 받았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의정활동을 핑계로 학교에 다니지 않았대요. 학교가 알아서 잘 해달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결국은 출석일수 부족으로 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모양입니다. 다른 학교 졸업하고 대학까지 마쳤죠. 그러다가 서울시 의회에서 교육 분과에 일부러 들어가서 학평 학교들 다 문 닫게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있어요. 학교와 교장선생님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면서요. 그나마 당신중정보산업고등학교는 출석 관리 잘해서 걱정이 없기는 한데 문제는 학평 전체에 대해서 문을 닫게 하려는 거죠. 서울시 교육감이 방송통신중고등학교와 관계있다는 거 아시죠?”

“2010년 7월 1일 교육감 부임하자마자 간 곳이 현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였더라고. 지난번에 KBS 공사 창립 기념 만학도 골든벨 찍을 때 갑자기 학평 학교들 간의 행사에 현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가 들어왔어. 이상해서 인터넷 검색했더니 그 기사가 떠서 이유를 알았지. 학평을 없애고 방통중과 방통고를 활성화시키려는 거라고 추측도 했지.”

“맞아요. 틀린 추측은 아니죠. 문제는 한 달에 두 번 가는 방통이 진정한 교육을 한다고 볼 수 없잖아요. 출석 관리 부실한 학교들도 한 달에 두 번 오는 학생들 살리지 않는다는 거, 졸업장 주지 않는다는 거 학평에 근무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건데. 문제는 털면 먼지가 반드시 난다는 거예요.”

“그렇겠지. 그런데 한 편으로는 승계하도록 교장 자격 연수와 그에 따르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 보면 학평 길들이기 수준이라는 의견들도 있던데 맞나?”

“그건 허울 좋은 쇼라고 보면 되요. 전에 대전광역시 유성구 리베리아 호텔에서 있었던 교장, 행정실장, 교사 연수회도 마찬가지에요. 의견을 수렴하고 교육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학평 없애고 방통 살리려는 거죠. 물론 현실적으로 모두 폐교시키면 정규 학교 탈락자들 갈 데 없으니까 편을 갈라서 없애려고 했죠. 그런데 초등학교 무상급식 문제 때문에 예산이 부족해진 거죠. 그래서 학평 전체에 인건비 보조를 아예 하지 않기로 하면서 연대 저항이 된 거죠.”

“그럴 수도 있겠다. 부산 지역 학교는 정규 특성화학교처럼 시설이나 교육여건 등이 정규 학교랑 거의 같다면서?”

“그래요. 그래서 특성화 고교 학비 80% 지원하는 거 자기네도 해달라고 하다가 미운 털이 박혔죠. 법적 대응한다고 했다가 오히려 나오던 지원금도 끊겼어요. 그런데 현재는 서울과 부산만 끊긴 상태죠. 왜냐하면 서울과 부산 학교들만 잡으면 게임은 교과부와 교육청이 이기는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서울과 부산 빼면 학평 학교 얼마 안 되거든요.”

“박국희, 강영식 의원이 개인적인 감정을 학평 죽이기에 이용한다는 게 납득이 안 가네?”

“간단해요. 학평 학교 중에 끝까지 살아남지 않는 학교 다섯 개 정도 잡아서 대전 정원중고등학교처럼 법인화하는 척하면서 학교를 자신들이 차지하겠다는 거예요. 저도 하나 줄 지 모르죠. 그런데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을 고용 승계할지는 몰라요. 현재 학평 교장들이 법인화 이야기 나올 때 교사들 신분 보장해달라고 했을 때도 형평성을 들어서 안 된다고 한 것도 사유화하는데 걸림돌이 되니까 그런 거예요. 아무튼 제가 돌아가는 사정 알려드릴 테니까 아무도 믿지 마시고 대응하세요. 대전 정원중고등학교도 부장교사 한 명 매수해서 내부 고발하게 만들고 선생님들 대부분 쫓아냈거든요. 아무도 믿지 마세요.”

“근데 언론에 이런 사실을 알리면 어떨까 하는데 학교에서는 걱정하지 말래. 잘 되어가고 있다고.”

“언론을 믿지 마세요. 언론은 교과부와 교육청, 힘 있는 사람들 편이에요. 기사 쓰는 거 보세요. 게다가 전국의 문제 학교들 순위 보셨죠? 10개 학교 중에서 다행히 당신정보산업고가 8위를 했더라고요. 그걸 보면 언론은 가진 자의 편이라는 겁니다.”

“긁어 부스럼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네. 교사들이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민원을 내면 어떨까? 전에 우리 학교 신축할 때 학생 하나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 생일을 어떻게 알고 축하 편지 쓰면서 열악한 학교 사정 이야기 했더니 당시 각하가 학교 짓는데 보태라고 교육감 보냈다는 거 알지? 그런 방법은 어때?”

“문제는 어떻게 순수하게 보이느냐가 문제에요. 학교가 뒤에서 조정한다는 느낌을 주면 교과부와 교육청의 사주를 받은 보수와 진보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니까요. 참, 부장님이 하고 계시는 편파방송을 통해 학평 학교 학생들에게 슬쩍 언급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가나영 선생님이 들어왔다. 자리를 피해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일미가 참치의 참맛을 느끼며 오랜 만에 좋은 술자리를 가졌다.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내가 오해한 거라던 가나영 선생님의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 혼자 별별 생각을 다했던 순간이 부끄러웠다. 마당극에 욕심이 나서 하인정 선생님께 너무 무거운 짐을 맡겼다는 생각, 그로 인해 하인정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 두었다는 내 생각은 그날 술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인정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 둔 것은 하인정 선생님의 가정사 때문이었다. 박봉인데다가 일주일에 이틀 야간 수업을 해야 하는 노고를 임용고사에 올인 하면 합격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젊었고 집안의 장녀로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 여동생과 남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하인정 선생님은 시간 강사를 하면서 교육공무원의 꿈을 이루었고 어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해드렸다. 그리고 두 동생에게 든든한 언니와 누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청소년과 성인 학생들에게 마당극이라는 꿈을 꾸게 하는 내 모습이 자신을 현실에서 안주하는 대신 도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감사함의 표시가 오늘 이 일미가 참치 실장님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믿지 마세요!’라는 말이 가슴에 깊이 닿았다. ‘아무도’에 하인정과 가나영도 포함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노래방에서 2차를 마치고 헤어졌다. 두 여성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나영 선생님의 원룸으로 향했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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