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기획, 제작, 각본, 감독 그리고 연기까지 다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윤제균 감독의 2009년 작품. 한국형 재난영화를 만들기 위해,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으로 벌어들였던 자금을 [낭만자객] 한 편으로 모두 말아버린 윤제균, 그의 시작은 조금 특이하다. 광고 회사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약하던 중,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신혼여행] 각본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을 연출하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제작하며 차근차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 생명력 있는 캐릭터, 그리고 영화 속에 녹아있는 큰 감동과 재미로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 내는 윤제균 스타일의 휴먼 코미디 영화를 완성시켰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동은 그의 말처럼 가장 한국적인 웃음과 눈물로의 자극이다.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수시로 돋아날 것 같은 유머와 카타르시스! 3일간의 휴가를 맞이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극장에 들어섰다. 물론 팝콘과 콜라 대신 동네 마트에서 산 음료수와 오징어를 가방에 몰래 넣고 [해운대]를 보러 간다. 롯데 시네마에서 우리들의 오랜만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러닝 타임 2시간 중 한 10분은 광고로 도배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군데군데서 객석의 불만이 스나미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가운데 한국형 재난 영화, 한국형 블록버스터, 윤제균 표 [해운대]가 시작되었다.
진실을 숨기고 2004년 인도양의 스나미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설경구(최만식 분)와, 스나미에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억척녀 하지원(강현희 분)의 사랑, 국제해양연구소 박중훈(김휘 박사)과 이혼 후 딸을 키우며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 엄정화(이유진 분), 해양구조대원 이민기(최형식 분)와 삼수생 김희미(강예원 분)의 좌충우돌 사랑, 여기에 감초 김인권(오동춘)의 배꼽 잡는 기행이 어우러져 다소 길다고 느껴지는 멜로 코드는 유머와 위트, 부산 사투리와 롯데자이언츠에 이르기까지 부산을 담고 있다.
오동춘과 최만식의 아들 최승현(천보근 분)이 함께 앵벌이를 하다가 만나는 김휘 박사의 딸 김지민(김유정 분)이 엄마에게서 받아 바구니에 넣는 1만원! 바닷가에서 길을 잃고 미아보호소에서 바쁜 엄마 엄정화를 대신해 온 아저씨, 박중훈이 떡장수 할머니에게 건넨 1만원! 이 1만원의 미학은 영화 내내 한국적 정서의 표출로 드러나는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최억조 역의 송재호와 만식 어머니역의 김지영의 노련한 연기, 악역은 영화의 흥미를 한국적 한(恨)의 연결고리 속에서 속죄와 이해를 통한 눈물 코드를 완결시키고 있다.
김휘 박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들과 게들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해운대의 세계화를 위한 국제회의라는 명분 아래 해운대 100만 인파와 400만 부산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스나미의 메가톤급 위력이 들이 닥친다. 이름하여 메가 스나미!
메가 스나미의 위력 앞에서 피어나는 가족애! 자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박중훈과 엄정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우리들의 속담처럼, 군용 헬기에 딸 지민을 보내며 와쳐대는 박중훈의 “네가 니 아빠다!”의 울림은 눈물샘을 자꾸만 자극했다. 여기에서 만원의 행복은 등장한다. 앞서 지민이를 위해 김밥과 꽈배기를 사면서 6,000원의 덕업을 쌓았던 박중훈의 선행은 떡장수 할머니의 미소와 함께 지민이의 생명이 푸른 소망으로 살아남으리란 기대를 갖게 한다. 만원의 행복이란 게 이런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가족애. 최억조 역의 송재호와 최만식 역의 설경구의 화해 장면! 개새끼 취급을 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수자들을 밀어붙이다 결국 강선장을 죽음으로 몰았던 최억조의 비인간적 삶에 대한 불만, 연희에 대한 사랑보다 최억조로 인해 인도양에서 강선장을 죽음으로 몰았던 자신의 죄업의 모든 죄책감을, 그 책임을 최억조에게만 몰았던 최만식! 하지만 연희의 이성적이고도 이타적인 모습 앞에 작은아버지 최억조와 최만식은 메가 스나미가 부른 죽음 앞에 운명적 용서와 화해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한 화해는 무엇인가를,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한 사람, 이민기를 잊을 수가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런 구호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민기의 환한 죽음. 그 죽음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꾸만 눈에 밟힌다. 사람다운 삶은 무엇인가? 그러면서 생각한다. 마지막 절망의 순간, 죽음에 순간에도 버리지 말아야할 것은 바로 선업(善業)이라는 사실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면, 하여 내가 살아나지 못하더라도 내 가족을 위해 선업을 쌓고 그 덕업으로 내 가족이 솟아난 구멍에서 스스로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면 나는 이민기처럼 환한 웃음 지으며, 속눈물 흘리며 기꺼이 내 안전 로프를 내 손으로 자를 수 있겠다.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겠지만, 그래서 이민기가 영원히 오버-랩 되나 보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나오면서 나는 누구를 위해 아름답게 죽기 보다는 내 가족을 위해 추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메가 스나미에 찢겨진 해운대를 재건하는 사람들, 그 속의 풍경처럼 영화의 파편처럼 남은 쓰레기통 위의 넘쳐나는 팝콘 용기와 음료 용기 사이에 용기있게 동네 마트에서 사온 음료 용기와 오징어 포장지를 살짝 버리고 있는 내 손은 참 선업을 쌓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만원의 행복, 오랜만에 윤제균의 영화 [해운대]를 보고 웃음과 눈물이 함께 공존할 때의 감동의 위력의 느낀다. 메가 스나미처럼 다가운 [해운대]의 강력한 메시지를 보면서 윤제균과 대한민국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 종사하는 분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만원의 행복을 자주 맛보고 깊은 월요일, 2009년 8월 3일이었다.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운대의 김휘 박사처럼 하루하루 지구의 눈물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구는 여전히 아름답다.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이를 현실의 삶과 재구성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소가 반추 동물인 이유는 그가 초식 동물이 갖는 길고 긴 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화하기 힘든 풀을 먹고 그 풀을 소화하기 위해 반추(反芻)하는 것처럼 우리 인류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면서 반성(反省)하고 성찰(省察)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가 세 번의 빙하기를 이겨내고 지구의 주인이 된 이유다. 이제 네 번째 빙하기가 찾아 올 것이다. 많은 인류가 사라질 것이다. 지구 운명의 시계는 자정 6분 전이다. 오후 11시 54분. 2007년보다 1분이 늦춰졌다. 핵확산 금지 등의 노력 덕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6분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노력에 따라 더욱 늦춰질 것이다. 영화 [투마로우]와 [2012]처럼 인류는 내일 당장 빙하기가 찾아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지금 이 순간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소수의 연구자들이 있다. 그들이 있고, 탄소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는 이들이 있는 한 지구의 종말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인류는 지금도 살아 있으며 내일도 살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미래를 볼 수 없지만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찾아 인류는 지금도 지구를 살리는 방향으로, 지구에서 생존하고 있으며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메가 쓰나미를 두려워할 줄 아는 이상 인류의 종말 시계, 지구 운명의 말 시계는 점점 그날로부터 늦춰질 것이다. 진정.
조선의 종말을 막아보려 했던 지식인 허생, 그의 파란만장한 개혁과 한계를 보여준 박지원의 작품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세 번째 시간이었을 것이다. 2012년 5월 11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 스크린에 떴다. [동양학 산책]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라!” 기업가 정신 강조한 관중과 사마천. 21세기 정치경제 연구소장 신동준 박사의 글이 빔프로젝트를 통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박지원의 [허생전(許生傳)]을 설명하다가 선생님께서 꺼내든 비장의 카드였다. 최사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성장소설도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아예 중국, 아니 동양의 성현 공자와 관자까지 인용한 수업은 점심 식사 후에 5교시 수업을 하는 우리 만학도들을 힘들게 한다.
1960년대 말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사인방(四人帮)은 공자를 보수반동의 괴수, 관중을 법가(法家)의 효시로 분류했다. 엄법(嚴法)에 기초한 부국강병을 주장한 관중의 최종 목표는 ‘예의염치를 아는 문화대국의 건설’이었다. 그에게서 관건은 부민(富民)이었다. 이를 통찰한 사마천은 ‘사기(史記)’의 ‘화식열전’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관중은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고 했다. 본래 예의염치는 재화에 여유가 있을 때 생기고, 없으면 사라진다.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도덕도 행할 수 있다. ‘천하가 희희낙락한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모여들기 때문이고, 천하가 흙먼지가 일 정도로 소란스러운 것은 모두 이익을 찾아 떠나기 때문이다’라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관중은 자신이 쓴 ‘관자’의 ‘치국’ 편에서 “무릇 치국평천하의 길은 반드시 우선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는 게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는 게 어렵다”며 필선부민(必先富民·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을 역설했다. 관중이 ‘상가(商家)’의 시조로도 불리는 이유이다.
공자는 이런 측면에서 관중의 사상을 잇는다. ‘논어’의 ‘자로’편에 등장하는 일화가 그 증거다.
천하유세에 나선 공자가 낙양 인근의 위(衛)나라로 갔다. 상업이 번성해 크게 번잡한 도성 모습을 보고 찬탄하는 공자에게 제자인 염유가 어떻게 다스리는 게 좋은지 물었다. 공자는 이에 대해 “백성들이 이미 많으면 부유하게 만들어줘야 하고 부유해졌으면 가르쳐야 한다”고 답했다. 이른바 ‘선부후교(先富後敎)’사상으로 관중의 ‘필선부민’과 맥이 닿는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말한다. “천금을 모은 자를 보면 하나같이 성실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한 덕분에 부를 이뤘다. (중략)빈부의 차가 빚어지는 것은 결코 누가 빼앗거나 주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산업의 상호관계와 재화의 흐름을 잘 아는 자는 늘 여유 있고 이를 모르는 자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엄격한 당시 상황에서 사마천은 시장의 자유를 역설하며 상공인의 치부(致富)를 적극 옹호한 것이다. 이런 사고는 파격이었다. 그렇다고 사마천이 ‘균부(均富)’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사기’의 ‘평준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라가 태평할 때는 사람들 모두 자중자애하며 부를 누렸다. 이후 부호들이 부를 빙자해 토지를 마구 겸병하며 관직도 없이 위세를 부리자 종실과 공경 이하의 사대부들 역시 이를 흉내 내며 앞다투어 도를 넘는 사치를 부렸다.”
관중과 사마천의 지적은 현대적 의미로 보면 기업가 및 상인 정신의 소중함과 정부의 적절한 시장 개입을 강조한 것이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공히 중시한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론과 흡사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상가(商家)’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우리도 세계에 두루 통하는 모델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가 있다. 레드 콤플렉스가 살아 있었다면 감히 개봉조차 하지 못했을,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냐고? 촌장은 이렇게 말했다.
“뭘 좀 많이 믹이는 거야!”
임청수 선생님의 가치관과 맞아 떨어진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라는 말처럼 지도자의 덕목은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능력이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그 후에 예절을 가르치고 인간답게 행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종이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가 재위하던 시절에는 모든 백성이 배불리 먹을 만큼의 재정과 군사력이 밑바탕에 넘쳐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경제적, 군사적, 행정적 바탕 위에 세종은 우리 민족의 문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어 백성에게 예절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민족 문자를 통해 문학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관자의 필선부민(必先富民)이요 공자의 선부후교(先富後敎)이며 박지원이 창조해낸 허생의 철학,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는 체험적 교육이었던 것이다.
(12-13)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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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어시간에 배울 [허생전]을 읽었다. 숙제라서 억지로 읽었는데 점점 재미가 나 두 번이나 읽었다. 허생이 마음에 든다.
그는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 등장인물들 가운데서 우뚝할 뿐더러 나라까지 좌우할 만한 비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왜 자기가 꾸민 천당 같은 섬에서 ㉠ 아는 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올까? 그는 ‘화근’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아는 자가 화근이 된다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자기도 ㉠ 아는 선비이면서. 돈을 벌고, 도둑들을 천당 같은 섬에서 살게 해주고, 이완대장을 꾸짖고 한 그 모든 일들도 자기가 ㉠ 을 읽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잠까지도 ㉮ 자는 기분은 아니다. 허생전을 읽은 덕분이다.
-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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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글의 밑줄 친 ㉠에 들어갈 단어로 적당한 것은?(1.6점)
① 국어 |
② 글 |
③ 술 |
④ 감 |
⑤ 소설 |
정답 : ② 글. 글을 안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 구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허생이 글을 아는 자들을 모두 빈섬에서 데리고 나온다는 것은 결국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글 아는 자들이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했음을 알 수 있겠다.
13.위 글은 ‘선재(善哉)’의 일기이다. 선재는 지금 불안한 학교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문맥상 밑줄 친 ㉮에 들어갈 적당한 부사어는?(1.6점)
① 억지로② 스스로③ 부담없이
④ 억수로⑤ 즐겁게
정답 : ① 억지로. ‘숙제라서 억지로 읽었는데 점점 재미가 나 두 번이나 읽었다.’에서 학교와 공부에 흥미가 없는 선재가 허생이라는 인물의 일탈과 혁명적 시험에 공감하면서 이를 통해 세상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될 수 있음을 암시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국어선생님이 항상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은 없다. 무어에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분은 하늘에 계신 그 분뿐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3천년 저의 공자와 관자에게서 배우는 21세기 자본주의 4.0은 그래서 새롭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그 중간에 서있는 박지원과 그가 창조해낸 이름을 알 수 없는 허씨 성의 선비, 허생(許生)을 통해 18세기 조선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배우고 또 실제 경험하고 있었다. 하나의 작품에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휩쓸려, 몰아쳐오는 새로운 지식은 우리 만학도들에게 정말 낯설었다. 문제는 수업시간에는 이해하겠는데 돌아서면 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공종숙과 같은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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