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급식, 그리고 자기주도 학습
2007년 정해(丁亥)생, 돼지띠 임재혁의 입학식날입니다.
시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독감으로 입학식에 참석하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수호신처럼, 보디가드처럼 재혁이를 보듬어주시고 아껴주시고 감싸주시는 신림동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입학식을 빛내주셨습니다. 중학교 국어선생님인 아빠는 그 학교 입학식이라 못 오셨고, 어린이집 선생님이자 재혁이 엄마도 못 오신답니다.
여덟 살 차이 누나의 후배가 되는 날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 속에 자라날 재혁이는 기분이 좋습니다. 게다가 오래 전에 헤어졌던 이하은과 같은 반으로 만났습니다. 어렵게 입학식에 나온 엄마의 걱정과 기대 속에 재혁이의 입학식은 그렇게 푸르게 끝났습니다.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태권도 학원에서 재혁이를 보듬어주셨던 아빠가 두 손 가득 배스킨라빈스31아이스크림과 파리바게트 빵을 사오셨습니다. 오늘은 삼겹살 데이라며 아빠는 재혁이 입학식에 참석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3월 3일! 삼겹살 데이를 맞아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베란다에 앉아서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우리들이 가족이란 사실이 정말로 삼겹살보다 더 맛있게 보였습니다. 임재혁의 새로운 도전이 푸르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봄봄봄, 봄이 왔습니다.
우리집은 신림동 건영4차 아파트입니다. 2013년 10월 22일에 이사 오기 전까지는 외할머니 댁에서 작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태극기를 다셨기 때문에 우리 집이 생기면 꼭 태극기를 내 손으로 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엄마아빠랑 이마트에 갔을 때 멋진 태극기를 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초등학교 입학을 바로 이틀 앞둔 오늘 엄마와 함께 태극기를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국기봉에 달았습니다. 원래는 아빠와 달려고 했는데 아빠가 오늘 새벽에 갑자기 중학교 형들의 수련회 장소에 답사가야 한다고 해서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엄마와 삼일절에 대해 어린이집에서 배운 내용을 되새기면서 신림사거리 중고서점 알라딘에 가는데 우리 아파트에 태극기를 단 집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늘은 국경일 삼일절이고 공휴일인데 다들 늦잠을 자는지 태극기를 달지 않은 집이 정말 많았습니다. 엄마랑 둘이 약속했습니다. 우리 집부터 태극기를 국경일마다 꼭 달자고요! 그게 바로 나라 사랑이고요. 1919년 3월 1일 나라를 빼앗긴지 10년째 되던 날에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무저항(이게 좀 어렵네요^^;)정신으로 일본에 저항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갇혔다는 삼일운동은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던 중국과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을 하게 했대요.
잘은 모르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대요. 그래서 열심히 우리나라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자고 했어요. 그러다 보면 조금씩 이해가 갈 거래요. 해가 질 때쯤 아빠가 집에 오셔서 내게 태극기를 들고 인증샷을 찍자고 해서 찍었어요.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걷어서 국기함에 넣었어요.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이렇게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에만 태극기를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같아요. 우리 모두 태극기를 날마다 사랑합시다.
아빠는 형들의 임원수련회 답사를 마치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돌아오셨습니다. 어디선가 막걸리 향기가 났습니다.
막국수처럼 먹어도 살이 안찌는 껍질과 배아의 미학!
걸리적거리는 요산의 고통스러움을 한 방에 날려주는
리듬감 살려주는 술과 음료의 교집합을 위해 건배!
임재혁은 입학 후에 첫수업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급식을 먹었습니다.
어린이집보다 훨씬 큰 식판에 깨밥, 미역국, 제철 과일 딸기, 도토리묵, 김치, 그리고 맛있는 소고기 불고기를 완전 맛있게 먹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줄긋기 숙제입니다. 할머니 댁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와서 꼭 숙제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숙제부터 하고 다른 일들을 하겠다고 아빠와 약속했습니다.
내일이 정말 기대됩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또 어떤 음식들이 크고 아름다운 신림초등학교 식판에 급식으로 나올까요? ‘내가 좋아하는 핫도그가 나올까요? 아니면 용가리치킨이 나올까요? 오늘 같아서는 아무거나 나와도 맛있을 것 같아요^^’
정성들여 만든 마법의 칼을 들고 소원을 빌어봅니다. 내일도 맛있는 요리야, 나와라!
두근두근 앨버트로스를 타고 날아라
상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씽씽쌩쌩 달려가던 여름밤에 재혁이는 새로 산 퀵보드를 타고 있었습니다. 상현이 동생은 상현이에게 물려받은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땀이 나도록 내달렸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재혁이는 애써 퀵보드를 타면서 부러운 마음을 감춘 채 아빠와 엄마에게 배스킨라빈스 31에 가자고 떼를 썼습니다. 달콤한 베리베리스토리베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부러운 마음을 잊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걸 보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네 발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동안 자전거를 멀리 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산 새 퀵보드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했기에 두 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아빠는 [두 발 자전거 배우기](글 고대영, 그림 김명진. 길벗어린이)라는 동화책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10월 22일에 이사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동네 맞은편 건영 4차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재혁이의 자전거 ‘앨버트로스’도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아빠는 재혁이의 자전거 ‘앨버트로스’를 며칠 더 두었다가 두 발 자전거로 만들면서 새 집으로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2013년 11월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 보는 날로 날짜까지 못을 박았습니다. 그날부터 4일간 쉬게 되는 아빠는 이 4일 동안 재혁이에게 두 발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두 개의 보조 바퀴를 떼는 것부터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빠가 떼느냐, 할아버지가 떼느냐? 아니면 자전거 가게에 가서 돈을 주고 떼느냐? 하는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재혁이의 두 발 자전거 타기 프로젝트가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2013년 11월 7일 목요일은 생각보다 더디게 다가왔습니다.
재혁이의 ‘앨버트로스’가 비상(飛上)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바람 타고 달려라](글 임정자, 그림 최정민. 문학동네)를 읽고 나서 재혁이의 네 발 자전거는 바람타고 달리는 ‘앨버트로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네 발 자전거는 두 발 자전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재혁이는 몰랐습니다. 그저 열심히 달리는 것만으로 좋았습니다.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우면서 놀이를 했습니다. 축구와 야구에 몰두했습니다. 야구장과 축구장에도 가보고, 운동장에서 축구와 야구도 해 보았습니다. 그냥 좋은 것보다 해서 좋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는 조금 달랐습니다. 누군가와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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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만화 [메이플 홈런왕] 시리즈와 함께 야구의 하나에서 열까지를 모두 배웠습니다.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화폐박물관에 가서 돈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역사를 배웠습니다.
보라매공원의 보라매 상(像) 앞에서 태권도(跆拳道)의 가르침, 질서와 인내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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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S에서 식사 에티켓을 음식 흡입을 하면서 배웠고, 스폰지밥에게서 개그를 배웠습니다.
여자 친구에게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은민이 돌잔치에서 배웠습니다.
가족은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의 상징 Mont Blanc에서 배웠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몰랐지만 주인공 우정이가 오빠와 나누는 말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나는 앨버트로스. 바람을 탄다! 이렇게.’
‘일곱 번 넘어지고 일곱 번 지는 거야. 그런데 절대 울면 안 돼. 반드시 웃어야 해. 그러면 마법이 일어나서 저절로 잘 타게 돼!’
- 임정자, [바람 타고 달려라] 부분 인용.
알 듯 말 듯한 두 인물의 말을 곱씹으면서 재혁이는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산 침대에서 재혁이는 자주 악몽을 꾸었습니다. 신나게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도림천으로 곤두박질치는 꿈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마구 웃어댔습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엄마랑 아빠, 누나,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입을 가리고 무척 재미있다는 듯이 남들과 함께 맨 앞에서 웃으면서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2013년 11월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아빠는 2호선 봉천역에 있는 삼성프라자 2층 소비자보호센터에 가서 누나의 고장 난 스마트폰을 고쳐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날마다 다운되는 데스크탑도 동네 컴퓨터 가게에 가서 고쳐 왔습니다. 그리고 재혁이 네 발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러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서림동 사무소를 지나 현대 아파트 입구를 지나서 삼천리 자전거 가게로 향했습니다. 보조 바퀴를 떼고, 자전거 받침대를 4천 원에 샀습니다. 자전거 받침대를 사면 자연스럽게 보조바퀴를 떼어주었습니다. 아빠와 할아버지의 고민은 그렇게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아빠는 팔꿈치 보호대와 무릎 보호대를 샀습니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는 재혁이에 대한 걱정과 배려였습니다.
오후 1시 30분 재혁이의 앨버트로스가 재능어린이집에 등장했습니다. 코끼리 반 여섯 살 동생들이 아빠와 앨버트로스를 보고 재혁이에게 참새떼처럼 달려가 알렸습니다. 재혁이는 달뜬 마음에 앨버트로스와 아빠를 번갈아 보면서 웃었습니다. 코끼리반 여섯 살 동생들이 잘하고 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빠가 이야기해주었던 [노란 손수건]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가족이란 어떤 잘못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품어주는 희생과 사랑의 ‘노란 손수건’이 되어주는 버팀목이라던 이야기가 재혁이의 긴장된 어깨를 편안히 품어주었습니다.
11월의 햇살은 재혁이가 두 발 자전거와 데이트 하는 날을 엄마품처럼 따사롭게 품어주고 있었습니다.
앨버트로스는 조금 불안했지만 조금씩 속도를 내서 달렸습니다. 처음 타는 것치고는 잘 달려주었습니다.
문제는 회전을 하는 것인데 그 때마다 조금씩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자꾸만 한 쪽 발이 땅에 닿았습니다. 아니 땅에 디딘다는 편이 옳았습니다. 직진보다 회전이 어렵다는 것은 네 발 자전거도 마찬가지였지만 네 발 자전거는 보조바퀴 덕에 거의 넘어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두 발 자전거 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멈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이 느리게 달리는 것이었고, 가장 쉬운 것이 빨리 달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브레이크 잡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왼손 쪽을 당기면 앞바퀴가 멈추고, 오른손 쪽을 당기면 뒷바퀴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브레이크는 서서히 잡아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면 내리막길 같은 데에선 자전거가 뒤집힐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스스로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신관중학교 운동장은 작지만 아주 포근한 새들의 둥지를 닮아서 정말 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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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혁이는 도림천 산책로를 달립니다.
자전거도로를 달리면 좋겠지만 이제 이틀째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마당에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일곱 살 초보 두 발 자전거 운전자에 대한 시선이 살갑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아빠에게 오히려 격려를 해줍니다. 자전거를 배우고,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아들과 아빠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 모양입니다.
재혁이는 초록색 산책길보다는 옹벽 쪽의 회색빛 콘크리트길이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좁은 길을 지나 넓은 수변무대에 이르러서야 안심하는 듯이 신관중학교에서의 안정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핸들이 물가로 조금만 향하면 브레이크를 잡고 서둘러서 내렸습니다.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제의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진전이 없는 것 같더니 수변무대의 넓은 공간과 만나자 한일태권도장의 용감한 예의 태권소년이 되어 이단옆차기를 할 것처럼 앨버트로스를 타고 하늘을 날듯이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재혁이가 손과 발을 주무르며 노랫말인지 시인지를, 구시렁구시렁 거립니다. 아마도 이런 얘기였을 것입니다.
가슴 설레게 다가온 두 발 자전거 타기는 분명 긴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의 재혁이는 처음 타는 두 발 자전거를 여유만만하게 타지 않았던가요?
하루하루 사람이 되어가는 재혁이. 동물과 인간의 중간에 있다고 보지만 아직은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깝다고 아빠는 생각합니다. 본능에 가까운 그 마음은 이렇게 두렵지만 행복한 시가 되었습니다.
두 발 자전거 타기는 무섭게 즐겁죠.
손보다, 팔보다 가슴이 두근두근
발보다, 다리보다 심장 두근두근
신관중학교 운동장에선 내가 슈퍼맨
어제 첫날보다 오늘이 왜 더 무섭지?
신관중 운동장은 넓고 사람도 없지,
도림천은 물가에다 사람도 많잖아.
겁나지, 떨리지, 긴장되지, 그래서
무섭지, 그래도 사랑, 대견스럽지.
무서운 두 발 자전거 든든한 날개죠.
아빠는 재혁이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재혁아, 자신의 마음속 브레이크를 잘 잡을 수 있어야 너의 두 발 자전거, 재혁이의 ‘앨버트로스’를 신나게,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거야, 알았지! 재혁이랑 도원이, 너희들은 아빠, 엄마에게 든든한 마음속 브레이크인 거야, 고맙다! 사랑한다!”
판타스틱 사랑의 생일상 차리기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역사적인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지 벌써 4년째 되는 날이다.
6년 전 우리 가족은, 아니 재혁이는 어려서 함께 있지 못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었다. 일본 시간 9시, 중국 시간 8시에 열린 개막식은 2008년 8월 8일 금요일 8시. 중국어의 팔과 복은 유사한 발음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황금 금요일에 복을 부르는 팔을 4개나 활용한 당일로 정했다고 한다. 이런 상징은 정말 괜찮다.
영화 [YMCA야구단]에서 과거제도가 폐지된 1905년을 살아가는 선비 송강호(이호창 역)가 4번 타자가 재수 없다고 일갈한다. 김혜수(송정림 역)가 야구에서 4번은 가장 잘 치는 선수라고 하자, 송강호는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죽을 사가 아니라 ‘선비 사’라고 일갈하면서 예의 직구를 홈런으로 날려 버린다. 살면서 송강호의 학다리 타법처럼 한 호흡 쉬면서 홈런의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은 피하면서, 인생에 돌아올 세 번이 기회가 언제 오느냐? 왜 안 오냐? 나에게만 비껴가느냐고 비관한다. 안창호 선생의 말씀처럼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기회마저 비껴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의 진로를 준비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보고 싶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자신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아름다운 뒷모습, 당당한 앞모습을 보고 싶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아내의 생일상, 장모님의 출산기념일 잔치상을 마련하면서 특별한 재료없이, 계절에 넘치는 가지, 호박, 오이, 파프리카, 미니새송이버섯으로 얼마든지 괜찮은 만찬을 준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소고기와 미역으로 투박하게 미역국을 끓이고, 채소를 카놀라유로 살짝 구워 흑임자드레싱을 얻어 오방색의 샐러드를 만드는 신비함. 눈과 입이 함께 맛보는 음식 궁합이라니. 케이크 대신 호두파이로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는 아련함. 내 삶의 노스텔지어,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이 살갑게 아침을 여는 나는 행복하다. 아내를 출산하느라 힘겨웠을 장모님과 그 옆을 가슴 쓸며 지키셨을 장인어른에게 올리는 소박한 아침상, 문어숙회와 오이를 백청으로 배경을 삼고, 문어숙회전과 호박전으로 황청백의 색채를 외출복으로 삼아보는 아침은 살갑다. 참외를 디저트로 삼아 소박한 아침 생일잔치가 끝난다. 커다란 솥의 미역국을 중간 솥으로 옮겨 담는 여름나기의 미학. 작은 냄비는 냉장고로 들어가 2, 3일의 아침 국으로 생을 풍족하게 하겠다.
스토리텔링반 학생들에게 문제를 낸다.
사진 몇 장 올려서 카톡으로 장황하게, 아니 소박하게 묘사를 하고, 서사를 하고, 대화와 설명을 한다.
오늘은 누구의 출산기념일일까?
오늘은 누구의 생일이며 그의 나이는 몇 살일까?
오늘은 음력 몇 월 며칠일까?
스토리텔링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미약한 처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작은 특강.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는 시간은 얼마나 소박하고 창대한가?
아참! 프랑스 작가 쟝자크 샹페의 [자전거 못 타는 아이]라는 동화가 있다. 자전거 전문가이면서도 자전거를 못 타는 자전거 전문가 ‘따뷔랭’의 이야기이다. 이미 국어교과서에서 배웠거나 동화책으로 만나보았을 것이다. 자전거의 대명사로 불리는 ‘따뷔랭’은 자신이 자전거를 못 탄다는 이야기를 첫사랑에게 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고는 마음에 없던 간호사인 아내와 결혼해서 이 어처구니없는 비밀를 감춘 채 살아간다. 그러다가 사진기자 피구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다치게 된다. 하지만 피구뉴 역시 비밀이 하나 있다. 사진을 잘 못 찍는 사진기자였던 것이다. 따뷔랭이 멋지게 자전거를 타는 장면도 사실은 사진기를 놓치면서 사진기가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약점 아닌 약점이 있다는 것과,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 악의의 거짓말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비밀 정도는 자신에게 오히려 긴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 이제 4개월 후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어린이가 있다. 공부보다 급식을 사랑하는 이 어린이는 아빠에게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일요일에 시간 있어요? 뭐 좀 하게요!”
“아들이 원하면 시간을 내 주어야지. 무슨 일인데!”
“보라매공원까지 자전거 타러가게요.”
“그럼 보라매공원에서 자전거 타는 거야?”
“아니요. 산책로 끝나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돼요!”
“그래, 그럼 내일 같이 가자!”
다음날이 일요일이 되었다. 오후 4시에 보라매공원으로 가는 도림천변을 향한다. 그전에 아파트에서 내리막길을 내려간댄다. 내리막길 못 가는데, 어쩌지? 생각하면서 먼저 내리막길 맨 아래에 가서 기다린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제법이다.
도림천에서 자전거 도로를 탄다. 약간 무서웠는지 중간에 돌다리를 통해 산책로를 향해 건너간다. 산책로를 따라 열심히 엉덩이 들고 타다가 점퍼를 벗고 바람막이만 입는다.
보강공사 중인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신림역과 신대방역 사이의 철교 아래를 지난다. 여기가 우리의 종착지인 보라매공원 입구다. 당연히 오르막길이다. 내게 잠깐 앉아 있으란다. 그리고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그리고 오는 사람이 있나 확인한다.
“아빠, 나 내려가도 돼지!”
“어, 조심해서 내려와! 브레이크 살살 잡으면서!”
이내 속도를 조절하면서 내리막길을 무난히 내려온다.
“아빠, 다시 한 번만 더 할게.”
“그래, 잘하는데. 그럴 때 조심해야해. 알았지!”
“알았어, 브레이크 꼭 잡을게!”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다시 속도를 조절하면서 내리막길을 무난히 내려온다.
이후 세 번을 더 내려왔다. 내려올 때마다 안정감이 배가 된다. 잘한다. 브레이크를 잡을 줄 알게 되었다.
“아빠, 과자 먹어도 돼?”
“응, 먹어도 돼. 물 없으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
과자 두 개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나를 준다. 살갑다.
과자를 먹으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과자를 천천히 다 먹고는 자전거를 다시 잡는다.
“아빠, 세 번만 더 할게!”
“알았어. 무리하지는 마!”
세 번 더 오르막길을 올라, 오가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를 조절하면서 가뿐히 내려온다.
“아빠, 먼저 가.”
불안한 마음에 뒷걸음을 하자, 아빠 먼저 가라고 한다. 그래야 자기가 따라 잡을 수 있다고.
먼저 보강공사 중인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신대방역과 신림역 사이의 철교를 따라 천천히 앞서 간다. 끌어올린 물이 줄줄 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하도 안전사고가 많이 나다보니 이럴 때 안전한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굳어져서 빙 돌아서 걷는다.
이내 바람처럼 달려와 웃으면서 지나친다. 이제 정말 잘 탄다. 가다가 멈춘다.
“아빠, 수건 없어?”
엄지와 검지의 손가락 안쪽이 빨갛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건넨다.
“괜찮아, 조금 있으면 나을 거야.”
아마도 두려움 때문에 자전거 손잡이를 지나치게 꽉 잡은 때문인가 보다. 돌출고무가 아이의 손을 빨갛게 만들어 버렸다. 쓸렸으니 따갑겠다. 하지만 오늘 내리막길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거 같아 대견하기도 하다.
이제 내리막길을 극복했으나 그 탄력으로 오르막길을 오르기 위한 엉덩이 떼고 타기를 도전하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럴 땐 몰래 자전거 안장을 밀어주는 도움은 싫어한다. 조용히 지켜봐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퀴 두 개 달린 S보드는 배운 지 일주일도 안돼서 귀신처럼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씽씽 내려오고 올라가면서 네발에서 두발을 떼고 바로 자전거를 배웠지만 벌써 일 년이 지나서도 두려움을 가졌던 아이가 이제 그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주도학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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