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을 턴다는 것은
임흥수
“이불이랑 요는 이제 넓은 쪽으로 털어야겠다. 자꾸만 방충망이 떨어져서야!”
겨울방학의 마지막 날이라서 기분이 시원섭섭한 중에 장모님과 함께 오랜만의 설날 휴가로 여유만만한 아내의 혼잣말이 여운처럼 이명(耳鳴)으로 귓전을 휘돈다. 여름밤의 모기처럼 불편하지 않은 여운에 고민 중이다. KBS2 텔레비전 주말연속극의 주인공 ‘고민중’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꽤나 오랫동안 거슬리던 방충망과의 사투가 오늘 아침을 고민 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환기에 이은 청소가 진행되어야 한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먼저 끝내고 보는 내 습관이 그렇게 몸에게 마음이 속삭이고 있었다.
일 단계!
하얀 면직물 손수건을 빨아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다. 그리고 각방의 책상과 책꽂이, 그리고 화장대와 진열장 등의 먼지를 훔친다. 이때 먼지나 부스러기가 자연스럽게 방바닥에 떨어진다.
하여 이 단계!
진공청소기가 등장한다. 이 갈리는 치과의 스케일러를 연상케 하기도 하고, 공사장의 굴삭기를 닮기도 한 진공청소기가 2002년 한일월드컵의 김남일 선수처럼 도발적으로 집안 구석구석의 머리카락과 먼지, 기타의 부스러기들을 폭풍흡입하는 것이다. 음식을 교양있게, 단호하게 폭풍흡입하는 달변가이자 연기파 배우같은 KBS 개그 콘서트의 김준현처럼 진공청소기가 제 몫을 다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기필코 삼 단계!
실내용 대걸레를 분리한 채로 걸레를 흐르는 찬물에 빨아야 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통과한 어린 초등학생처럼 다부지게 자신의 1등을 자랑하는 걸레를 은빛 연어처럼 은빛 선명한 걸레대에 하얀 손수건을 두르고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는 자유는, 공지영의 표현처럼 등 푸른 자유라고나 할까!
청소를 그렇게 끝내고 아내의 여운같은 한 마디에 숙제를 하듯 베란다로 향한다. 몇 번 시도했던 일이기에 설마 하는 기분으로 도전을 한다. 활처럼 휘어지는 알루미늄 합금 방충망을 조금 휘어본다. 휘어지는 앞부분과는 달리 뒷부분은 요지부동이다. 위쪽 턱에 걸려 완강히 버티는 방충망은 고집 센 중학교 2학년들을 닮았다. 두 주 전에 시도해봤던 방법을 다시 시도해본다. 기대감 없는 도전은 두려움과 공포를 동반하고 있어서 시도조차 하기가 무섭다. 왼쪽 긴 부분을 오른쪽으로 밀고 방충망을 왼쪽으로 밀어내고 아까처럼 아랫부분을 먼저 레일에 걸고 윗부분을 공략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발판으로 사용한 등나무 의자가 무게중심을 앞으로 하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온다. 이번이 두 번째 포기다. 다시 긴 창문을 왼쪽으로 밀고 짧은 창문을 오른쪽으로 민다. 그리고 다시 원위치에서 시작한다. 포기를 생각한다. 아, 반복되는 실패의 연속이다. 이럴 때는 그냥 문제를 문제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다시 한 번 꼬인 문제를 풀기로 한다.
무서운 일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내가
이미 뒤짐질 해 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윤기, [숨은그림찾기] 부분.
숨은 그림 찾기를 하다보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두 개 정도는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조금 거리를 두거나 시간을 두고 보면 기적처럼 보일 때가 있다. 거기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숨은 그림! 그래, 시간을 두자! 거리를 두자!
그러다 생각한다. 방향을 바꿔보자. 윗부분부터 레일에 걸면 되지 않을까? 아랫부분을 레일에서 분리해서 윗부분 레일부터 걸고 조금 위로 들어 올리자 기적처럼, 거짓말처럼 꼼짝하지 않던 방충망이 쏘옥 들어갔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숙제가 방향을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바꾸자 해결이 되다니!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막아낸다는 중학교 2학년들과 함께 한 지난 일 년! 꼬이기 보다는 풀어낸 문제가 많았지만 이내 꼬였던 문제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기억을 되짚는 것은 집착 때문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방향과 거리를 바꾸고, 생각과 인식을 바꾸면 해결될 일들이 내 시각으로 아이들을 맞추려고 고집한 것은 아닐까 반성하는 시간이다. 오늘 이 이야기를 천호중학교 2학년 3반 아이들과의 마지막 날에 들려주어야겠다. 그들에게는 종례보다는 작은 이야기가 더 좋은 담임선생님의 조언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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