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슐 먹어(임흥수, 장편소설)

3. 여덟 살 차이

madangsoi 2014. 7. 13. 00:55

보고 싶은 내 아들에게!

 

2008. 8. 8. 金.

벳부(別府)!

풍월(風月)이란 호텔에 들어왔다. 벳부(別府)(灣)이 한 눈에 보이는 호텔이다. 첫날 후쿠오카(福罔) 도심의 도큐 호텔과 나가스(나가강), 그리고 둘째 날 아소산 스머프 돔형 호텔과 또 다른 맛이 나는 벳부(別府)의 풍월 호텔은 바다와 잘 어우러져 있다. 어젯밤에 쏟아진 폭우 덕에 세계 최대의 활화산을 생생하게 보았다. 가이드의 말에 ‘코발트빛’이라고 들었다. 로프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1,000℃가 넘는 복식 칼데라호는 상감청자의 비췻빛을 닮았다. 비췻빛! 아, 이런 빛이 코발트빛이구나! 제주도의 한라산은 내게 백록담(白鹿潭)의 푸른빛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소산(阿蘇山) 정상은 아내, 도연, 그리고 내게 그 비췻빛을 속내까지-푸르고도 하얀빛을- 보여주었다.

함께 온 양씨(梁氏) 집안 15명 대가족의 20개월짜리 아기가 자꾸만 웃어 준다. 울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는 아기는 미소 짓는 모습이 미륵(彌勒)을 닮았다. 아소산 다섯 개 봉우리가 부처님의 누우신 모습을 닮았다는 둥, 하늘 위에서 보면 분화구가 부처님의 귀를 닮았다는 둥, 하는 여러 말들보다 그 미륵보살같은 아기는 우리 아들 재원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아침마다 장모님과 안부 전화를 하면서 재원이 이름을 언급하다가는 마냥 눈물을 머금어 인사를 한다. 미륵을 닮은 늠름한 아기 덕이다. 아니, 아기 탓이겠다. 하지만 아기는 웃기만 한다. 참 든든한 아기다.

날마다 눈가에 비가 오는 아내는 오늘 벳부(別府)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다음!’이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준다.

“다음에는 재원이 꼭 데리고 와야지!”

라고 말한다. 나도 자꾸만 데리고 온 우리 맏이 도연보다 서울에 두고 온 우리 막내, 재원이 더 보고 싶다.

벳부(別府)의 ‘별(別)’이 우리 부모자식간의 잠깐 동안의 이별이란 뜻인가 보다. 오늘도 노천온천 ‘풍월(風月)’을 느끼면서 우리 도연재원이 대한민국, 일본, 아니 세계를 초월한 멋지고 책임감 있는 청춘이 되기를 바란다.

내일은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간다. 재원을 만나러 간다. 시원한 바람처럼 청아한 달빛같은 아들이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음으로 마중 나올 것이다. 여기 있는 저 미륵처럼 말이다. 재원이가 우리의 꿈이니까^.^

 

2008. 8. 8.

 

재원이가 몹시 보고 싶은 아빠가 일본 벳부(別府)에서.

아마도 우리 아빠도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글로 이야기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고 감상문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구나. 편지 형식으로 쓰는 일기, 일기같은 형식으로 쓰는 편지도 있구나. 기행문을 쓰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사다예, 아빠에게 간지러운 편지 한 번 써볼까? 언젠가 꼭 한 번 써봐야지, 하고 생각한다.

 

워턴, 아니 워티에게

 

아저씨는 서원초등학교 1학년 행운의 럭키 세븐, 7반에 11번을 번호로 가지고 있는 임도연이란 소녀의 아빠야. 우리 도연은 요즘 다음 달에 태어날 동생 때문에 많은 걱정을 갖고 있단다. 무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거든. 그래서 우리 도연은 태명 ‘도기’ 때문에 많이 힘이 든 가봐. 그러다 신나는 사계절 숲속의 ‘화요일의 두꺼비’ 너, ‘워티’와 올빼미 ‘조지’를 만나고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어.

책읽기에 목을 매는 우리 도연은 도서관에서 벌써 너와 ‘조지’를 만났던 적이 있다고 했어.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만나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는 거야. 그래서 어제 함께 서점에 가서 너를 만났지. 너와 함께 집에 돌아와서 함께 ‘워티’, 너와 ‘조지’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면서 우리 도연과 새로 태어날 ‘도기’에게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어졌어. 친구사이의 우정처럼 형제간의 우애도 어느 한 쪽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말보다는 ‘너’와 ‘조지’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하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천둥’이라는 말과 소녀의 우정과 도전을 그린 ‘각설탕’이란 영화를 함께 보았는데 아저씨는 순수하지 못해서 별 감동이 없었는데 순수한 우리 도연은 눈에서 강물처럼 눈물이 쏟아지더라. 그러다 너를 만났고 네게 부탁하고 싶었어. 도연이 한 단계 성장하는데 네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김춘수라는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네게 소개해 볼 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네가 이름 없는 외톨이 ‘올빼미’에게 ‘조지’라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아저씨는 이 시를 생각했어. 그리고 ‘조지’가 너를 ‘워티’라고 불렀을 때 둘은 참 좋은 친구가 되리라고 생각했어. 하늘을 나는 ‘조지’의 모습을 동경하던 ‘워티’에게 ‘조지’가 천둥치는 밤의 벌집에 부딪쳐서 벌집이 되었던 공포를 이야기했을 때, ‘조지’는 더 이상 밤이 아니라 낮에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환경을 이겨내려는 조지의 모습. 게다가 겨울잠을 자야하는 네가 ‘툴리아’ 고모 댁에 모턴 형이 만들어 준 ‘딱정벌레 과자’를 드리러 가는 기특한 모습을 보면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 씀씀이와 도전하는 용기 있는 모습을 우리 도연에게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어.

스키를 타고 가다가 그루터기 아래에서 사슴쥐를 구해주고 두려운 올빼미를 친구로 삼으려 했던 너의 모습. 그리고 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조지’ 생일까지의 일주일 동안 보여준 너의 모습은 아저씨가 우리 도연에게 바라는 모습이었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주변도 깔끔히 정리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스웨터의 실로 사다리를 만드는 너의 모습은 작심삼일로 끝나는 아저씨를 반성하게 했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

모든 일은 계획을 세워서 해라.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너의 모습이 참 좋았다.

널 죽이려 했던 ‘조지’를 살려주고자 하는 용서와 관용의 마음. 결국 ‘툴리아’ 고모 댁에 ‘딱정벌레 과자’를 전하는 믿음과 실천의 모습은 우리 도연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잔잔한 감동으로 남을 거야. 물론 아저씨에게도.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또는 친구와 싸웠을 때, 말로 하는 사과가 힘들다면 ‘조지’처럼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야. 그치?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말로 할 때의 실수를 줄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면서 친구와 자신을 이해하는 반성의 시간이 될 테니까. 이 편지를 받고 ‘워티’와 ‘조지’가 우리 도연에게 기억에 남을 답장을 보내왔으면 좋겠다. 새로 태어날 동생 ‘도기’에게 다가가는 방법 말이야. 도연에게 동생 ‘도기’가 ‘사슴쥐들’처럼 든든한 힘이 될 거라고 꼭 이야기 해주라.

참, ‘조지’의 목을 잡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땠는지 참 궁금하다.

지금 하늘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너희 둘이 친구가 된 것을 축복하는 함박눈. 두꺼비, ‘워티’ 너는 또 옷을 여러 겹 걸치고 스키를 타고 있겠구나. 씽씽. 그리고는 노간주나무 열매 차를 조지와 나눠 마시고 있겠구나!

잘 지내.

 

2007년 1월 6일.

 

함박눈 내리는 날에 서원초등학교 1학년 7반 11번

도연 아빠가.

 

 

싸기 대장의 당당한 형과 누나로

 

기훈이에게!

먼저 참 어려운 단어부터 설명할 게 이해해 주라.

인상주의적 명명법!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아빠가 내게 ‘콩순이’라고 부르면서, 아빠가 내게 알려준 참 어려운 말이지. 첫인상처럼 어떤 사람의 특징이나 인상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인상주의적 명명법이라고 한단다. 한 마디로 별명 부르기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아홉 살이야, 서원초등학교 2학년 4반 임도연!

엄마와 아빠가 작년에 갑자기, 두 분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나 혼자 외로워 할 것같아서 안 되겠다며 내게 달갑지 않은 동생을 만들겠다고 하셨어. 태명(胎名)도 아빠 고향인 충남 연기군(燕岐郡)의 첫 글자를 딴 내 태명이 도연이라서 ‘도기’라고 지으셨다. 하나 더 낳으면 ‘도군’이라고 하겠다는 썰렁한 아빠의 연, 기, 군, 개그.

기훈이 네 동생 기영이의 별명 ‘싸기 대장’처럼 말이지. 너는 남자 형제라서 덜 하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우리 아빠는 둘째 아들인데 큰아빠가 재은 언니 하나밖에 없거든.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남동생, 남동생!’ 하고 노래를 부르셨거든. 그러나 우리 동생 재원(도기의 진짜 이름이당!)이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새벽같이 나오니까 ‘모두가 도연이가 예뻐서…… 도연이 덕이야!’ 라는 찬사를 받게 했지. 잠깐 동안 나는 우리 집안의 구세주가 되었어. 남동생도 그저 동생이겠거니 생각했어, 처음에는.

하지만 기훈이 너처럼 나도 금세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어. 잊혀진 존재. 싸기 대장의 ‘고구마(응아, 똥을 재원은 그렇게 불렀다.)’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셨지. 한 술 더 떠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도 내 편이 아니었어.

소중한 내 남동생이 어느 날 나를 사막의 목마른 골짜기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던 거야. 배신감이 하늘을 찔렀어. 몰래 때려 주고도 싶었지만 이제 200일도 안 된 동생이랑 무슨 싸움이 되겠니? 엄마와 아빠에게 도기뿐만 아니라 나, 도연도 있음을 알리려고 무척 애를 썼어.

기훈이 너의 이야기, 동생에 대한 간절함을 ‘청거북이 사건’에서 배운 게 참 많다. 청거북이를 보호하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너를 보면서 한 편으로 이해가 갔어.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네가 잘못 생각한 점도 느꼈어. 나는 절대 집을 나가서 혼자 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 그건 우리 또래에겐 굉장히 위험한 일이거든. 물론 청소년기의 언니 오빠들도 마찬가지고……

꽃집의 바보 덕이가 동생을 한 없이 아끼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울었어. 아니, 나보다 엄마랑 아빠가 더 많이 울었어. 왜 울었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훈이 아빠, 기훈이 엄마처럼……. ‘도연이 아빠’와 ‘도연이 엄마’, 그리고 ‘도연이네’ 라는 말속에 장자(長子), 맏이로서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어. 모두가 기훈이 네 덕이라고 생각해.

아빠가 이런 노래를 부르시더라. 한 번 들어 볼래?

 

얘, 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네! 하고 달려가면 너 말고 네 아범.

얘, 솔아 아버지께서 부르셔. 네! 하고 달려가면 너 말고 네 엄마.

아버지를 어머니를 얘, 솔아! 하고 부르는 건

내 이름 어디에 아빠와 엄마가 들어계시기 때문일 거야.

 

예전에 유행했던 노래인데, 아빠가 이 노래를 불러 주시면서 그러더라. 도연은 첫정(情)이라 더 예쁘고, 재원은 도연을 꼭 빼닮아서 더 예쁘다! 알 듯 말 듯한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옆에서 도기에게 젖을 먹이던 엄마가 환하게 웃으셨어. 하지만 아직 재원과 나,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어.

난 아직은 어리광을 부릴 아홉 살 도연이거든.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동생 잘 돌보면서 아름다운 희망의 꿈을 꾸도록 하자. ‘싸기 대장’의 형과 누나로 당당하게…….

 

- 조성자, [나는 싸기 대장의 형님]을 읽고 우리 맏이 도연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

 

참, 대단하다. 여덟 살 차이 남동생을 두게 된 맏딸을 위해 쓴 편지 형식을 차용한 독후감이란다. 사실 대단할 건 없단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의 독후감이 이런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도 정형화 되면 또 다른 전형이 되는 것이 현실이란다. 그래도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이른바 창의성이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우리 아빠도 내 동생 다함이 태어났을 때 이렇게 위로했을까? 나는 우리 아빠가 꼭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다. 우리 아빠 사나해는 다정다감한 사나이, 다정다감한 아빠, 다정다감한 남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아이를 둘 낳으면 둘째 아이에게 이렇듯 다정한 편지 독후감을 써 주리라 마음먹는다. 벌써부터 가족계획을 세우다니, 나 사다예는 대한민국의 충성스러운 국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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