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넘어 달리는 수요일!
2009년 10월 7일! 서동진, 西東進?
서쪽으로 가다가 동진(東進)하라는 뜻일까?
지하철 4호선 사당역 4-4출입구로
나오다가 목격한 한 학생 이름!
갑자기 말장난이 발동한다.
거기서, 동진하라니까!
서동을 짊어진 선화공주?
어제 술 한 잔 한 ‘오뎅 사께’가 생각난다.
선생님이 오뎅 사께?
그럼 제가 술 사께!
말이 말을 넘어 달리는 수요일!
- 마선생, [모순] 전문.
“출장 모두 마치고 집으로 갑니다! 야간 수업 수고하세요, 부장님!”
반가운 윤영주 선생님의 문자를 받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학교로 들어갑니다. 내일 회식 때 뵙죠!”
오고 가는 문자 속에 싹 트는 우리 부서의 소속감! 야무진 동료의 문자를 받고 신림역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다섯 시까지는 도착해야하니까 조금 서둘러야 했다. 퇴근길인지 출근길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시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자기에게 몰입해 있다. 혹자가 본다면 모두가 혼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오후 4시는 참으로 바쁘다. 하지만 퇴근길이라면 조금은 가벼워 보이겠지만 출근길이라면 조금은 활기차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쳐있는 쪽은 어느 쪽일까를 생각한다. 다른 이가 출근 할 때 역방향으로 출근하는 나를, 다른 이들은 아마도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전날에 술이라도 마시고 숙취가 남아있다면 필경 유흥업소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이 시간 학교로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아파트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유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들의 시각에 관계없이 다시 직장으로 들어가는 발길은 묵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묵묵히, 또는 투덜거리면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오후 4시였다. 신림역을 내려와서 막 사당 방향 열차가 들어서고 있는 열차를 목격하고는 5-4번 출입구로 막 들어서려는데 4-3번 출입구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분명히 퇴근을 한다고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4-3번 차량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낯익은 얼굴이다. 조용히 다가섰다. 깜짝 놀란 표정이다. 왜, 이 열차를 탔냐는 표정이 분명했다. 어색한 2, 3초의 시간이 흐르고 윤영주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아니, 학교로 가신다더니 왜 이쪽방향으로 타셨어요?”
“그러게요. 제가 잘못 탄 건가요?”
어색하게 웃는 동안 열차는 다음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열차 정차 안내 방송이 침묵을 깨고 울려 퍼졌다.
“다음 정차할 역은 봉천, 봉천역입니다.”
영어와 일어, 중국어 안내방송이 계속되는 순간 윤영주 선생님은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애써 웃으며 말을 꺼냈다.
“어, 이상하네. 분명 신도림 방향으로 탔는데……”
“저도 제가 잘못 탄 줄 알았으니까요!”
“네, 그럼 이번에 내려야겠다. 저, 내릴 게요. 내일 회식 때 봐요.”
“네, 조심히 가세요. 즐거운 저녁 보내시고요.”
서로 웃음 가득한 대화가 오갔지만 윤영주 선생님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저기요, 부장님. 오늘 일은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심 안 될까요? 부탁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하잖아요. 아, 쪽 팔려! 자다가 봉천(奉天) 두들기는 소리도 아니고! 아, 이를 어째?’
‘네, 영원한 비밀로 할게요. 저도 가끔 그러는데요. 봉천(奉天)! 하늘을 우러러 비밀로 만들면 대나무 숲에 가고 싶을 텐데, 제겐 무거운 짐이 되겠네요. 걱정 마시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닫히는 4-3 출입문 사이로 우리들의 속내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즐거운 에피소드 하나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냥 모른 척하고 5-4 출입구에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여운처럼 남았다. 그랬더라면 그녀는 2호선 어느 역까지 갔을까 생각하니, 그래도 둘만의 비밀, 둘만의 추억이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만족하는 내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에게 목숨을 대가로 한 약속을 한 이발사(복두장이)보다는 내가 한결 편할 테니까.
핸드폰이 아무리 찾아도 없네! 아침 7시가 넘었다. 지각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지갑 찾느라 고생 좀 했는데, 이제는 핸드폰이 말썽이다. 난 정말 핸드폰이 정말 싫었다. 일종의 족쇄라고 생각했다. 1994년부터 사용하던 삐삐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고집했는데 2006년에 아내가 강제 해지하면서 결국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귀찮기만 하던 핸드폰은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어 있었다. 글쎄, 친구가 맞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귀찮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불쑥불쑥 걸려오는 문자와 전화. 그래서 조금은 무섭다. 아니, 많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문명의 이기라는 말처럼 핸드폰은 내게 친구다. 다정한 친구 말이다. 너무 자주 보면 가끔 귀찮아지지만 하루만 보지 못하면 무지 보고 싶고, 자주 먹는 김치나 고추장처럼 지겹기도 하고 물리기도 하지만 외국처럼 먼 곳에 가면 이상하게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그런 것, 그게 친구다. 아니, 그게 핸드폰이다. 이제 나는 핸드폰의 친구, 아니 핸드폰의 노예가 되었다. 주종(主從)관계가 역전된 상태가 온 것이다.
어젯밤의 숙취로 인해 새벽에 일어나서 샤워를 한다. 목을 축이고 양치를 하고 몸 구석구석을 냉수온탕침법으로 담금질을 한다. 미리 몸 전체를 풀어주었던 워밍업, 맨손 체조 덕에 몸은 최상의 컨디션이다. 천천히 몸의 물기를 씻어내고 면도 상태를 확인하고 스킨과 로션을 바른다, 듬뿍. 머리에 스프레이를 발라 오랜만에 맘껏 멋을 내고는 세미 정장차림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그런데 지갑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항상 조금 과한 음주 후에는 지갑 속 영수증과 핸드폰의 통화기록이 알리바이를 성립시켜주는데 오늘은 지갑이 속을 썩인다. 다행히 핸드폰으로 귀가 시간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지갑을 찾는다. 지갑이 눈에 띠지 않는다. 답답하다.
6시 50분 드디어 지갑을 찾는다. 다행히 어제는 내가 계산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 어제 입었던 옷을 확인해 본다. 십중팔구 내가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계산을 했던가 했을 것이다. 아니면 갹출을 했을 것이다. 더치페이 말이다.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 다행이다. 이제 슬슬 출근이다. 아침 식사를 걱정한다. 회사 근처 김밥천국에서 밥을 간단히 먹을까 아니면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고민한다. 김밥이나 주먹밥으로 때울까, 아니면 순두부찌개나 김치찌개로 조금 과하게 먹을까 고민한다.
김밥천국에 가면 김밥 마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는다.
“참치 김밥이요!”
“참치 김밥이요?”
“네, 참치 김밥이요!”
김밥 집에서 새벽 공복을 되돌이표 화법으로 실수하나 안하나 되묻는다. 혹시 다른 김밥은 아닌지요? 혹시 다른 것을 주문한 것은 아닌지요? 묻고 또 묻는 김밥 마는 아줌마. 당신처럼 한 번 더 묻고 당신처럼 한 번 굴려서 손님의 일용할 양식을 곱게 싸고 또 싸는 마음으로 오늘 회사 동료들에게 묻고 또 묻고 싶겠다.
‘열심히 회사에 올 게요!’
‘열심히 회사에 올 거야?’
‘네, 열심히 회사에 올 게요!’
벌써 7시가 다 되어간다. 핸드폰이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에 있었는데, 갑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소설 한 권 손에 들고 있는데 어디 갔을까? 하는 수 없이 아이 방에 들어가 집 전화로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건다. 잠시 후 벨이 울린다. 진동으로 어디선가 소리 대신 몸이 울린다. 이상하다. 어떻게 도르르르 도르르르 대신 내 몸이 울릴까? 이런, 이런, 내 손에 있다. 소설책과 함께 들고 있었는데, 소설책에 가려 보이지가 않았다니 이만하면 ‘무하마드 알리’가 울고 갈 일이다.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침대에서 자던 아이가 일어나서 눈을 떴다. 깜짝 놀란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녀석은 눈을 뜨더니 씨익 웃는다. 혹시나 싶어 내 검지를 입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고 사인을 보낸다. 하지만 녀석은 다시 씨익 웃더니 잠꼬대를 하면서 다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다행이다. 휴, 하는 소리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가라앉는다. 아름다운 아침이다.
서둘러 출근을 한다. 김밥천국에 들어간다.
“참치 김밥이요!”
“참치 김밥이요?”
“네, 참치 김밥이요!”
김밥 집에서 새벽 공복을 되돌이표 화법으로 실수하나, 안하나 묻는다. 혹시 다른 김밥은 아닌지? 혹시 다른 것을 주문한 것은 아닌지? 묻고 또 묻는 김밥 마는 아줌마. 하지만 오늘은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말한다. 그냥 참치 김밥 먹고 출근하라고. 아침마다 고민에 빠지지만 결국은 싸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한다. 조금 이른 기상만이 내게 일용할 양식을 여유 있게 고르게 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바쁜 아침이다.
다음 날 사당역이다. 오늘은 9번 출구로 나와서 학교까지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가려고 한다. 가끔씩 작은 일탈을 꿈꾼다. 작은 변화라는 말이 옳겠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변화는 작은 사고를 동반하기도 한다. 항상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하는 게 속 편하지만 어제같은 일을 당하면 조금 달라지고 싶다. 자기 손에 있는 핸드폰을 찾지 못하는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서 가끔은 하늘을 봐야 한다고 하나 보다.
떡라면!
먹을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다. 밥벌레들의 출근길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따닥따닥 말발굽 소리. 사당역 9번 출구, 허름한 분식집 벽에 걸린 메뉴판 상다리 부러질세라 속 보이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따라 조금씩 눈알 굴려, 눈알 굴려 오른쪽으로, 옳은 쪽으로! 양 많고 값 싼 메뉴에 눈알이 박힌다. 전 국민의 영양 간식 라~면에 악센트. 자그마한 소리로 떡, 그리고 라~면. 신선로에 쌀밥 한 그릇보다 더 포만한 ‘떡+라면!’ 구령에 너도 나도 덩달아 라면에 그저 떡 몇 점에도 미소 만발! 가난한 자의 일용할 양식 떡 라~면. 작아지는 간이 떡살만큼 커지려나? 시침(時針)에 시치미 떼며 빨리 빨리 닦달을 한다. 아! 먹을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하지 못하는 작은 비밀 하나씩 있다.
‘안녕히 가세요, 약속은 꼭 지킬게요!’
대나무 숲의 도착(倒着)을 남기고 그녀는 봉천(奉天)에서 갈아타고 신나게 도로 신도림으로 돌아갑니다. 한 번 더 이정표를 확인하는 눈빛이 파르르 떨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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