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도원재혁네

1991년과 2007년 다른 시각으로 낯설게하기, 오늘 하루종일 구글 문제로 안드로이드폰의 앱이 먹통이 되었을 때보다 더 답답하고 슬펐던 할아버지의 늘 푸른 사철나무 정원 풍경

madangsoi 2021. 3. 23. 16:53


1991년과 2007년 다른 시각으로 낯설게하기, 오늘 하루종일 구글 문제로 안드로이드폰의 앱이 먹통이 되었을 때보다 더 답답하고 슬펐던 할아버지의 늘 푸른 사철나무 정원 풍경. 음모론의 시작, 미국인들의 삼성&LG 죽이기 프로젝트!

사철나무⑵

“청산리 벽계수야••••••"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방으로 달려간다.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과의 축구 시합을 하러 가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국민학교 1학년인 내게 주어진 조그마한 숙제들. 할아버지의 사랑마루에 앉아 숙제를 한다. 그리고 천자문을 익힌다.
할아버지의 사랑방은 포도나무 넝쿨 지붕과 함께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화장실 옆의 탱자나무에서부터 대나무, 소나무, 그리고 향나무가 있다. 사철나무의 푸르름은 그들과의 조화를 이루기라도 할 듯이 사랑채의 입구에 초병(哨兵)처럼 서 있다. 할아버지가 막내아들인 우리 아버지의 막내아들인 나를 지켜 주시고 보듬어 주시는 것처럼••••••
할아버지와의 약속이 끝나면 잠시 평화로운 웃음과 미소 뒤에 적막이 감돈다. 예의 표현처럼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일촉즉발의 분위기처럼 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돈다. 숙제와 한자 공부에 대한 답례로 주어지는 할아버지의 사탕.
1911년과 1971년. 신해 생, 돼지띠 띠 동갑인 조손 사이의 사랑과 믿음의 상징. 할아버지의 책상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서랍장이 열리면 순간 긴장이 돈다. 하루 한 개의 사탕이 약속되어 있음을 알지만 그 화려한 서랍장의 내부는 어린 손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물론 한 개의 사탕을 보장받기 위해서 또 한 번의 고통이 기다린다.
세 살 적에 목 아랫부분을 수술을 한 자리에서 하얀 액체가 고름처럼 돋아 나오곤 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할아버지의 사탕발림이 그 아픔을 잊게 해주었다. 순간의 엄청난 고통을 잊게 해주는 할아버지의 사탕! 하얀 액체를 씻고 나서 할아버지는 ‘열려라 참깨!’라고 주문을 외는 알리바바가 주문을 외듯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여신다. 순간 황홀한 기운이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하나의 사탕을 입에 물고 나는 달콤한 꿈을 꾼다. 사탕이 시나브로 입에서 녹아 사라지면, 할아버지의 서랍장이 머리 속에서 신기루처럼 요동을 치면서 방금 전의 용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한 개 더’를 외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자의 치아를 걱정하시면서 완강히 버티신다. 순간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고성이 넘친다. 포도나무 아래서 벌어지는 손자와 할아버지의 다툼을 푸른 사철나무가 지켜보고 있다.
하늘처럼 대가족을 이끄시고, 땅처럼 마을을 품어 오던 대쪽같은 당신의 아킬레스건! 막내 손자의 흐느낌 앞에 할아버지는 결국 보물 창고를 열어서 사탕대신 젤리 하나로 평화협정을 맺곤 하셨다. 그렇게 해서 나와 할아버지의 전쟁은 휴전으로 끝을 맺는다.
“아알었슈우우우.”
할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노량진에서 재수생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면서 내일 시골에 간다고, 할아버지께서 더 견뎌 내시기 힘들 것 같은 예감 때문에 꼭 내려가야겠다고 이야기 하던 그 시간에 당신은 소천(所天)하셨던 것이다. 신기한 일도, 우연한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당신의 부음을 받고 돌아가는 고향행 기차에서 나는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고향의 큰집 대문을 들어서서도, 할아버지의 염을 보면서도 나는 슬픔의 상징인 눈물을 아무리 상기해도 내 몸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내 눈에는 하수시설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라고 자위했다. 사촌 누나들이 아주 나쁜 놈이라고 지나가는 소리로 욕을 해도 그랬다. 이상하게도 울보인 내게서 말라 버린 눈물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할아버지의 발인. 선산에 당신이 손수 마련해 놓으신 자리로 당신을 모시면서 큰집을 나와 우리 집에 들어선 행여는 내 몸의 어딘가로 증발해 버렸던, 행방불명되었던 눈물을 눈과 코로 다 쏟아 버렸다. 할아버지의 사랑방과 정원을 지켜보던 사철나무는 아직도 저렇게 푸르건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바람처럼 내 눈에 눈물의 홍수만 남겨 두시고 산으로 가셨다.
지금 할아버지의 정원은 주인을 잃고 밀림처럼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젠 고향도 ‘행정중심복합타운’이란 이름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름 하여 행복도시, 세종시! 세종대왕께서 고려 왕조의 충신으로 남으신 부안 임씨 전서공 임난수 공에게 토지를 하사하신 데서 유래한 세종시의 낯선 이름은 원주민인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청천병력과도 같은 불운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주인을 잃고 폐허처럼 남은 할아버지의 정원은 가슴 아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손과 발이 만들어 놓은 선산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다만 내 마음 속의 사철나무만이 할아버지의 푸른 미소처럼 남아 우리들의 고향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2007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