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스토리텔링동아리

알바?

madangsoi 2020. 8. 4. 06:54

김밥이 죽으면 가는 곳? 아르바이트가 죽으면 가는 곳?
 
이순원의 장편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에 보면 '노란 손수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있었다는 빙고라는 사람의 실화를 각색한 느낌이 확 묻어나지.
오래 전에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흥청망청 쓰던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 그리고 집 앞 나무에 노란 손수건 하나를 걸어 달라고 편지를 쓰지. 만약 용서하신다면 노란 손수건을 한 장만 걸어달라고. 함께 기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 궁금해 하지. 기차에서 내린 사람이 집으로 향하지. 기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일제히 함성을 질러. 나무에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걸려있는 걸 본 거지. 아버지는 아들이 혹시 보지 못 볼까봐 섬세한 배려를 한 거지. 그러다 생각했어. 우리 아버지도, 우리 엄마도, 장인장모님도 작가 이순원의 소설 속 아버지처럼 그렇게 불효막심한 자식을 언제까지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 강석경의 [숲속의 방]을 읽으면서 도원이, 너의 이름을 작명하려고 했던 것도 아마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어. 이순원의 [나무]를 읽으면서 열꽃이 피었던 재혁이를 생각했고, 그때마다 우리네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지.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식을 위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고 용서를 구하게 되는 것 같아.
너희 엄마와 결혼한 지 벌써, 아니 이제 겨우 23년! 22년 째 함께 살을 맞대고 정신으로 교감하며 살고 있는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 너희 엄마는 내게 수백 수천 개의 노란 손수건을 날마다 내 눈이 잘 보이는 집 앞에 항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라는 이름으로 걸어주는 천사야. 아니 혹시 내가 못 보고 지나칠까봐 집 앞뿐만 아니라 동네 입구의 가로수마다 수백수천의 노란 손수건들을 걸어놓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자꾸만 미소가 입가에 저절로 지어지곤 하지. 물론 사랑 싸움도 격하게 하면서.
솔개는 팔십 년을 사는데 40세쯤 되면 산정에 올라 반년에 걸쳐 고행을 한대. 길어져 쓸모없게 된 부리는 바위에 쪼아 부수고, 먹잇감을 움켜잡지 못하는 무딘 발톱도 새로 난 부리로 뽑아 버린대. 무거워진 깃털마저 뽑아 정리한 후, 새로운 부리와 발톱, 깃털로 새롭게 남은 40년을 산다고 하네! 앞으로 남은 사십 년을 위해 자신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거래. 아빠는 올해, 만으로 마흔아홉이 된 계기로 내 삶의 밑거름이 될 장편 편지 한 편 쓰려고 해. 아빤, 말은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거든.
마흔 셋에 직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지. 나보다 남을 위한다고 직장에서 옳은 소리 틱틱하다가 권고사직을 당했지. 평생 직장이 사라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 보다 비극적인 결말을 상상했을 때 운명처럼 새로운 학교를 만났지.
기간제 교사! 그때부터 입 닫고 살기 시작했지. 해마다 12월부터 불안해졌지만 학교는 나를 원했고 다행히 휴직교사가 있어서 벌써 8년째 있다보니 정규직이 된 듯해. 게다가 도원재혁이 잘
성장해주니까 넘 고맙지.
아빠는 시골할아버지랑 할머니 덕에 알바 거의 안 하고 살았지. 그 시간에 공부해서 얻는 게 더 많다는 걸 믿었지. 지금도 그 마음은 유효해. 아빠 대학교 다닐 때 세 부류가 있었어. 열심히 임용고사만 준비하는 동기랑 선후배, 취업준비하는 동기랑 선후배, 그리고 학원 강사하면서 알바하는 동기랑 선후배. 다들 바빴지. 서로 부러워하고 서로 안타까워하고, 서로 힘들어하고 서로 후회도 했지.
임용고사 준비하던 사람들 임고 붙어 대부분 교사가 되고, 일부는 사립학교에서 교사하고, 공무원부터 개인사업까지. 그리고 학원 강사에서 학원장까지. 세 번째 부류는 처음엔 자투리 시간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자기계발도 하고 임용고시 준비하려는 부류였는데, 어느 순간 한 달에 300에서 500만원까지 벌게 되니까 학원에 올인하고 대학생활은 졸업에 목표를 두게 되었지. 그들의 판단도 옳아. 지금도 열심히 고객 관리하고 한 달에 비슷하게 대학 때 알바할 때처럼 벌면서 후회하고는 해. 그래도 실력대로 버는 원장님이지만 공립학교 교사 동기랑 선후배를 부러워하지.
사실 아빠의 또다른 노란손수건 도원이가 어렵게 춘천교육대학교에 합격하고 등록금 내고, 황금원룸에 가서 계약하고 오던 날 속으로 많이 울었어. 아빠가 계약직 국어 기간제 교사라서 중등 영어교사 대신 초등교사로 길을 바꿨다고 생각했거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동안 친구, 선후배에게 황금원룸을 돈 받고 빌려주고 집에 돌아와서 주말 알바를 하는 모습이 대견했어. 하지만 한 편으로는 혹시 주객이 전도될까 두려웠어. 계속해서 알바에, 친구에, 자기 시간을 갖고 춘천교육대학교에 간 이유를 확인하길 바랬지. 지금 알바해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시간적인 부담은 어찌할 건지. 선택과 집중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게 아빠의 생각이야. 잔소리이겠지만 시골 할아버지할머니처럼 아빠는 네게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선택하고 집중했으면 좋겠어. 엄마랑 아빠는 도원재혁을 위해서 맞벌이를 계속해 왔지만 이젠 엄마아빠를 위해 계속 일을 할 거야. 네 선택을 존중할게. 다만 선택한 길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래. 우스갯소리 하나 하고 우리 도원이의 스물두 살 생일과 엄마의 스물한 번째 출산기념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마칠게.
김밥이 죽으면 가는 곳은?
그래, 김밥천국이지.
그렇다면 아르바이트가 죽으면 가는 곳은?
맞아. 알바천국이야.
 
알바천국에 가기보다 도서관과 황금원룸을 오가면서 동기, 선후배랑 처음 품었던 초등교사의 꿈을 한 땀 한 땀 수놓아 가기를 응원해. 물론 알바천국으로 전환해서 사업가로서의 진로모색도 칭찬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하지 않기를 바래.
도원아@@ 생일 정말 축하해. 내리 3일 가진통 끝에 1999년 7월 25일 폭염 속에서 우리 도원이를 만나게 해준 너의 아름다운 엄마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해줘.
 
2020년 7월 25일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 가족이 수많은 노란손수건으로 서로 응원하기에 많이 행복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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