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북위 41도 전선에서 온 남편의 편지
남편에게서 편지가 왔다.
소인은 2019년 9월 28일이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동체 약자인 대한조선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2009년 남북한의 이명박 정권과 김정일 정권은 12월 29일 특별 성명을 통해 2010년 1월 1일부로 대한조선이라는 국호로 남북연합을 출범시킨다는 믿기지 않는 발표를 개성특구에서 급작스럽게 하였다. 이어서 2010년 1월 1일 0시에 두 정상은 대한조선의 쌍두마차로서 공동대통령직에 취임하였다. 국호는 가나다순으로 정하는데 이견이 없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한(韓)이 조선(朝鮮)보다 앞선다는 남북한 학계의 의견이 수렴되었다고도 했다.
여당 내에서는 반대 열기가 대단하였다. 그렇다고 야당 역시 쌍수를 들고 옹호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일본은 대놓고 난색을 표하였다. 중국은 환영을 하였으나 미국은 일본의 눈치를 보는 듯 미온의 태도로 남북한 통합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는 놀라는 듯했지만 애써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사라짐으로 해서 마르크시즘, 소비에트식 사회주의가 종말을 맞았다는 짤막한 논평을 내보냈다.
가장 큰 반응을 보여준 것은 독일이었다. 독일 특파원들은 대서특필로 한반도의 통일을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비유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표명하였다. 아울러 휴전선 155마일의 생태적 가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뢰 제거 기술을 은연 중 광고하는 등 경제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내 사랑하는 아내, 다예!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한조선 축구 국가대표팀을 경호하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에 갔다가 당신을 만났던 것은 아마도 운명이었나 봅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일만 되면, 조금씩의 불편을 이겨내는 10년 내지 20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대한조선이 한후, 고조선, 고구려의 전통을 잇는 동북아의 맹주로서, 자주국가로서 우뚝 설 수 있다는 포부도 잠시, 2019년 3월 1일을 기해 중국 인민해방군의 도발은 악몽이 아닌 현실이었소. 김정일 공동대통령의 서거로 구심점을 잃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내 소수 군벌이 중국과 야합하여 40도선 이북을 넘기고 망명한 이 끔찍한 현실.
소령으로 승진한 당신과 우리 대한이와 조선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시작한 2019년은 내게 대한조선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주리라 믿었던 것은 아마도 허황된 꿈이었나 봅니다. 지금 이곳은 폭풍전야의 고요가 도사리고 있소. 이 정적을 이겨내지 못하면 중국인민군이 내 목숨을 가져갈 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있소. 벌써 6개월간의 국지전 속에서 우리는 야금야금 41도선을 넘어 42도선을 향해 진격하고 있소. 하지만 이 전쟁은 끝을 짐작할 수가 없소. 사랑하는 당신과의 약속을 꼭 지키겠소.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소. 우리 아이들, 대한이와 조선이에게 대한조선의 강인함을 꼭 보여주겠소. 후방에서 내게 힘이 되어주는 당신이 있어, 행복하오. 여전히 당신에게 존대를 하는 내 말투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 답니다 ^^;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당신에게 돌아가서 당신과 함께 대한, 조선이에게 동생 하나 낳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당신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느낀 일이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은 정말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오. 우리 아이들에게 힘세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주고 싶구려.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가 중립을 선언했지만 일본이 가장 골칫거리랍니다. 대한조선이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기술력으로 자신들을 따라잡을까봐 노심초사하던 그들이 아니었습니까? 공공연하게 일본이 중국에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오.
다행히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을 듯해서 생각보다 피해가 적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인명과 재산피해는 엄청나리라는 것을 서로 알면서도 우리는 우리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번 전쟁을 위해 피의 대가를 치러야하는 현실이 우울할 뿐이요. 사랑하오. 대한, 조선이를 부탁하오. 이제 이곳은 겨울이 시작될 거요. 온난화의 영향 탓이겠지만 통일을 이루던 10년 전보다 봄과 가을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긴 여름은 더욱 덥고, 역시 긴 겨울은 더욱 춥기만 해서 전장의 병사들에게 총알과 포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변덕스러운 날씨라오. 당신도 대한, 조선이와 변덕스러운 날씨에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마칠까 하오.
아마도 압록강을 9월이 가기 전에 돌파할 수 있을 것같소. 당신과 온 한민족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오. 2020년 설은 집에서 보내리라 믿으면서 대한조선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다. 그럼, 이만 줄이겠소.
2019년 9월 19일
북위 41도 부근 진지에서 당신의 남편 대한조선군 108사단 대령 김춘추.
군사우편이란 스탬프가 선명한 남편의 편지를 이제 네 살과 세 살인 두 아이, 대한, 조선에게 읽어주는 내 목소리가 떨린다. 이 녀석들은 아빠란 말에 그저 눈 벙긋 뜨고 바라만 본다. 대한조선이 무엇이고, 왜 중국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지도 모른 채, 다만 아빠란 단어에만 집착하는 듯하다. 제발, 아무 탈 없이 전쟁을 마무리 짓고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셋째 아이에 대한 생각까지 하는 것을 보면 남편은 참 국가관이, 아니 민족관이 앞서는 사람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다. 그는 우리의 결혼을 남녀북남의 절묘한 조화라고 했다. 남북한이 대한조선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부부같은 조합이 많이 나타나야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좀 더 온전한 통일국가 대한조선을 이룰 수 있다고 했던 그였다.
중국은 지금 길림성 등 동북 3성을 사수하기 위한 소모적 전쟁을 하고 있다. 한반도를 통째 삼킬 수 없음을 몹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대한조선의 정치적 통일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대한조선 연합체제의 온전한 통합을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한조선이 이대로 통합되었을 때의 파급은 중국 체제 수호에 악영향을 보일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국에 대한 우호적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튼 우리 대한조선의 통일은 미국과 러시아, 영국과 프랑스에게는 동북아 삼국지를 즐길 수 있는 극적인 게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내 사랑 김춘추에게 제발 2019년이 가기 전에 100년 전 3.1운동의 만세소리처럼 자랑스럽게, 만세 부르며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돌아오라 기도드린다. 오늘 밤은 내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북위 41도 전장 앞으로 사랑의 편지를 보내야겠다. 어머니의 정화수처럼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아! 대한조선군 대령 김춘추, 영원하라!
나, 사다예가 민주평통 사무처가 주관한 글짓기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자꾸만 내가 쓴 글이 낯이 설다. 글씨체는 분명히 내 글씨체인데 그 속의 내용은 내 것이 아닌 것같다. 나는 백일장에 나가거나 공모전에 낼 작품을 쓸 때 선생님이 권유한 주제로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나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낸다. 메일은 온 라인을 거쳐서 선생님의 손을 거쳐 다시 온라인으로 내게 돌아온다. 그러면 내 작품은 어느새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 선생님은 이제 내게 부담이 된다. 왜일까? 두렵다. 부회장 백사라의 말이 자꾸만 걸린다.
‘네가 쓴 거야?’
백사라가 눈치를 챈 것은 아닐까? 선생님은 입이 무거우니까,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이 이상하다. 선생님은 계속 내게 상을 받을만한 백일장과 공모전에 작품을 내게 했다. 나를 위해 담배까지 끊은 분이지만 이제는 부담이 간다. '북위 41도 전선에서 온 남편의 편지'는 선생님 냄새가 나지 않는 내 글이지만 여전히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선생님 모르게 낸 내 글인데도 마치 선생님의 향기가 나는 것만같아 불안하다. 대통령상을 받았는데도 엄마는 반응이 없다. 아빠만이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 선생님께 인사를 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엄마는 이번에도 선생님의 공이겠거니 생각하는 모양이다. 계절은 이제 무덥고 끈적끈적한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을 넘어 겨울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봄이 오고 나는 3학년에 진급할 것이었다. 나는 점점 일등급이라는 달콤한 현실에 빠져 들고 있었다. 이제 백사라의 말보다는 화려한 수상 실적에 몰입되어 갔고 내 독서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작문 실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내 눈으로도 보였다. 신기했다. 선생님의 말이 예언처럼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더욱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 사다예의 변화를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