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슐 먹어(임흥수, 장편소설)

17. 맥주와 라멘, 그리고 일본!

madangsoi 2014. 7. 13. 01:09

최중훈 교장선생님께!

 

준비한 만큼 보인답니다!

2008. 8. 6. 水.

福罔!

일본 3번째 섬 큐수(九州)의 중심도시 후쿠오카(福罔)에서의 첫날밤이 가고 있다. 일본 만화에서 여러 번 보았을 네덜란드 풍(風) 도시의 낯익은 풍경들, 아니 오히려 낯선 일본의 거리를 보면서 일본인들을 느끼기에는 내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은 준비가 무척이나 부족했다.(12층 도큐 호텔에서 바라본 일본의 야경! 그곳에는 교회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보았던, 별만큼 많았던 교회의 십자가를 일본에서는 보지 못했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그리고 일본의 도로는 어찌 그리도 좁은지. 그래도 조용하고 깨끗한 일본의 거리는 참 신선하다고 할밖에.)

높은 건물과 좁은 거리. 아내의 말처럼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거리, 그리고 나가스(나가강(江)). 일행들은 강이 아니라 천(川)이라고 했지만 네덜란드나 독일의 운하(運河)처럼 강의 양옆은 거리의 예술가와 포장마차로 어수선한 듯하지만 차분하고도 고요하기까지 하다.(일본의 도시 풍경도 우리처럼 양극화 된 모습이다. 알루미늄 캔과 철 캔을 분리해서 각각의 비닐봉지에 주워 모으기도 하고 노숙을 하기도 하는 모습은 낭만적인 풍경을 기대하던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그들도 이 도시의 일원이고 보면 그들을 미워할 이유도 없다.)만화영화의 주인공인 듯한 가면과 복장을 한 두 청년이 호객을 한다. 아니, 한 청년만 호객을 한다. 그러다 우리의 얘기를 들었는지 침묵하며 멋을 부리던 은(銀)가면이 갑자기 재롱을 떤다. 도연도 아내도 나도 웃는다. 그도 웃고 그의 친구도 웃는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서 웃음꽃이 활짝 핀다.

다리를 건너 후쿠오카의 자랑 포장마차 촌을 향한다. 플라스틱 어항에 노니는 장어들을 손님이 낚시로 잡는 모습이 이채롭다. 잡는 재미에 먹는 재미가 배가 되나 보다. 빛바랜 신호등을 지나 포장마차 촌으로 간다. 라멘을 먹어보라고 하던 가이드. 뒤에 일본의 라멘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 주었다. 라멘이 우리 라면과 맛이 다르단다. 향이 다르고, 뒷맛이 다르므로 많이 시키지 말라던 가이드의 기우 탓에 맛나 보이는 시원한 맥주와 얼음 넣은 유리컵에 소주를 따라서 마시는 일본인들을 애써 외면하게 된다.(사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소주가 양주라니까 얼음을 타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리라.)라멘과 오뎅으로 호객(號客)을 하는 일본 청년들은 10년 전의 내 친구처럼 낯익은 듯 낯설기만 하다. 임진아 가이드도, 일본 여행 떠나기 전 상담실의 가희영, 탁유미 선생님도, 전산실의 강신애, 하준현 선생님도, 일본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으나 생애 처음 낯선 해외여행을 하는 우리 부부와 도연은 한없는 이국(異國), 그 자체다. 앞서 하나투어 버스에 오르면서 우리는 일본의 도로와 오른쪽에 있는 운전석으로 인한 이질감을 느껴야 하지 않았는가.

중국 본토 음식의 향(香)이 한국인에게 중국 음식에 대한 높은 벽으로 느껴지게 했듯이, 한국 음식이 갖는 고춧가루의 얼큰함보다는 어(魚)와 육(肉)에서 우려낸 일본 음식이 갖는 희뿌연 국물 맛이 구수함 대신 느끼함을 느끼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막상 그 국물 맛을 보지 못한 이유는 아내의 부른 배도 도연의 지친 발걸음도 아니었다. 그건 가이드 임상을 통해 갖게 된 일본 음식에 대한 선입견 탓이었다. 또 하나의 낯섦은 우리 돈 10,000원(圓)과 일본 돈 1,000엔(円)의 차이였다. 처음이라 그래서였을까?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 차이는 원(圓)과 엔(円)의 차이만큼 크게 느껴졌다.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 아사이 맥주와 삼각 김밥, 생수를 사들고 나온다. 순간 천 엔을 내고 받아든 일본 동전들, 우리 돈의 열 배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점원의 얼굴을 한 번 더 본다. 점원은 전자계산기를 보여주며 미소로 ‘맞스므니다!’ 라고 말하고 있겠다. 나와 도연, 아내는 어색하게 자동문을 나선다. 처음이란 항상 이렇게 낯선, 어색한 느낌이리라.

포장마차 거리에서 만난 낯선 한국인 부부도 우리처럼 일본식 라멘과 오뎅, 그리고 독특한 일본 음식의 향에 대한 낯가림으로 결국 되돌아섰으리라. 눈으로는 먹고 싶었으나 코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일본 음식에 대한 첫인상, 앞으로 이틀이 걱정이란 이름으로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다. 기내식 탓에 부른 듯한 배의 포만감보다는 낯선 거리와 낯선 음식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화중지병(畵中之餠), 여우의 신포도 운운(云云)했으리라.

“나가스 강변의 포장마차는 후쿠오카에만 있는 명물이지요. 오늘 일정이 없으니까요, 시간 되시면 바람도 쐴 겸 나가스에 나가보세요. 가격부터 확인하시고요, 많이는 시키지 마세요. 우리 한국 라면과는 맛이 많이 다르답니다.”

 

 

달콤한, 거북한 일본의 향(香)

2008. 8. 7. 木.

광복절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늘 여행 중에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유를 들었다. 짙은 안개 탓이란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 항(港)에 떨어진 두 번째 원자폭탄! 사실 나가사키는 세 번째 원자폭탄 투하 예정지였단다. 두 번째 예정지에 짙은 안개가 끼었던 까닭에 군항(軍港)이었던 3차 투하 예정지 나가사키에 2차 원자폭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이 두 방의 원자폭탄으로 무조건 항복을 했고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다.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 사실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의 기준으로 보자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니 적(敵)의 나라에 온 느낌이 든다. 허생전의 허생은 적국에 가서 그들의 문화를 알고, 경제, 정치를 알고, 그들의 속속들이까지 알아야 북벌(北伐)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불현듯 나는 [열하일기] 속의 박지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본다. 박지원은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百戰百勝)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일본의 강점과 약점을 아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남벌(南伐)을 준비하는 스파이가 된다.

아내는 일본이 참 깨끗한 나라라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한다. 얼마 전에 일본은 후지산(富士山)을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실사단이 후지산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일본 관계자들은 자상하게 버스 등을 대절해 실사단의 조사를 돕고자 했다. 하지만 실사단은 일본 관계자들의 도움을 정중히 거절하고 산의 중간에서 산 아래로 조사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놀랄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후지산에 차가 올라올 수 있는 지역 곳곳에 중고 가전제품부터 중고 타이어에 이르기까지 몹시도 다양한 생활쓰레기들이 산의 아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숲 곳곳에 잠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세계적으로 대망신을 당하고 지금껏 열심히 후지산 자연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건! 일본인들의 이중성은 단지 독도(獨島)를 다께시마(竹島)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자신 있게, 스파이답게 아내를 설득했다.

아무튼 일본 곳곳은 깨끗하기만 했다. 어제는 나가강에서 일본의 한국다움에 대해 느꼈다면 오늘은 일본의 중세사와 근대사를 가이드 임상(林相)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통해 듣는다. 지극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에서 듣는 느낌은 실로 새롭기만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국시대와 통일시대, 그리고 조선 정벌, 에도 막부, 그리고 서남 전쟁과 메이지(明治) 유신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임진아 가이드의 재치가 참 아름답기만 하다.

임진왜란! 조일(朝日) 전쟁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원정 후에 돌아와 쌓았다는 구마모토(熊本)(城)! 다른 모든 역사보다, 그의 의리보다 더 재미있던 것은 권율 장군의 기지였다. 며칠 동안의 격전이 벌어지고 서로 물과 식량이 바닥이 났을 때였다고 한다. 권율 장군이 말 열 필을 적이 잘 보이는 성 안의 둔덕에 세우고 남은 쌀을 모아, 말에게 쌀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적들은 사람 마실 물도 없어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성 안에서 조선군은 말에게 목욕까지 시키고 있음에 놀라 후퇴하고 말았다고 한다. 식량과 물이 떨어져 제 발로 성 밖으로 나올 줄 알았던 가토 기요마사! 그는 나중에 권율의 기지에 속았음을 분하게 여겼겠다.

조일전쟁(임진왜란) 후 큐슈(九州)로 돌아와 구마모토성(熊本城)을 쌓는다. 권율 장군에게 진 빚을 갚고자 성내에 수십 개의 우물을 팠단다. 이순신 장군에게 당했던 일들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항상 임진왜란에 대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은 이들 일본 장군들을 희화(戱化)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의 영웅들이지 않은가?

도쿄(東京)를 개척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가끔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정적(政敵)으로 생각하여 도쿄(東京)로 유폐(幽閉)시키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자신을 따르는 영주들과 함께 바다를 매립하면서 도쿄(東京)의 영지를 세 배 이상으로 늘려서 현대 일본의 수도로 성장시키면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에 군사들을 보내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지. 에도 막부의 눈을 피해 영국으로 자제들을 유학 보내서 신문물을 배워오게 해서 서남 전쟁 이후 일본 메이지(明治) 유신의 주역이 되게 했던 큐슈 지방관들의 열린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장점과 저력을 배운다.

일찍이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의 모습. 하지만 철저하게 한 나라와만 교역을 하면서 폐쇄정책, 쇄국정책을 펼쳤던 일본의 근대화는 큐슈 지방관들의 열린 세계관 덕이었음을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200년 전의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이 된 기분이다. 일본의 선진문화를 배워서 다시 한 번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가 되어 우리의 선진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전파하는 상상은 즐겁기만 하다.

아소산(阿蘇山)에 들어섰다.

우리가 잘 아는 만화 영화 속 스머프의 집을 닮은 숙소에서 유카타(浴衣, yukata)를 입는다.(가이드가 꼭 입고 나오라고 해서 입고 나갔는데 우리와 몇몇 일본 노인들만 입고 있어서 좀 창피했다. 하지만 불편하리라던 유카타는 몸에 딱 맞는다. 아내는 내게 일본의 쇼군(將軍)같다며 체질이란다.) 온천욕을 할 때 가볍게 입는 옷이란다.(오른쪽으로 옷깃을 돌려서 허리띠를 매야 한단다. 왼쪽으로 돌려서 매는 것은 상중(喪中)인 사람이 입는 방법이란다.) 달콤한, 거북한 일본의 향기 때문에 겨자 소스에만 전력투구 한다. 배 불리 밥을 먹는다. 뷔페 음식은 늘 폭식을 부른다. 조금 자제해 보지만 평소보다 더 많이 먹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노천(露天) 온천에서 갑자기 내리는 폭우를 맞으며 홀로 온천욕을 한다. 묘하다. 몸은 따뜻하고 머리만 시원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이렇게 살고 싶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 (고민이 없을 것만 같다. 아내는 도연과 함께 온천욕 중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나왔다. 나는 혼자라서 심심했다. 다음에는 재원을 꼭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내는 재원도 여탕으로 데려가려 할 것이다. 그래도 재원이랑 같이 왔으면 했다. 아버지나 장인어른이 들으면 서운해 하실 거다.)

달콤한, 거북한 일본의 향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내게는 타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보다. 아무튼 노천 온천에 내리는 비는 내 복잡한 머리를 시원하게 한다 ^.^

 

 

꼭 부치고 싶은 편지!

2008. 8. 8. 金.

아침부터 아소산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활화산이 이 비에 끔쩍이나 할런지. 해발 1323m. 아직도 화산활동 중인 세계 최대의 칼데라 복식 화산이라고 하는데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유황가스의 농도가 높아지는 날에는 관광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들의 운(運)을 시험할 도리밖에…….

아소산은 화산과 함께 소와 우유, 그리고 삼림욕(森林浴)의 농원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소의 동상(銅像)들이 여기저기 눈길을 끌게 한다. 우유와 유제품은 일본의 독특한, 달콤한 거북한 향이 아니라 탈아입구(脫亞入歐 ; 후진 아시아를 벗어나 선진 유럽을 지향하겠다는 의미)의 기개를 보는 듯해서 부럽기도 하다. 갑자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에도 막부의 눈을 피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제(子弟)들을 영국에 유학을 보내서 새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던 큐슈(九州)의 사람들, 앞날을 내다보는 식견을 가진 지도자들 덕분에 서남 전쟁 이후 메이지(明治)유신이 완성되고, 일본 근대화의 꽃이 피었음을 우리는 부러워해야 하지 않는가?

항상 앞서가는 이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제 하루 일정만이 남아있는 일본 제3의 섬 큐슈 여행. 노천 온천에서 홀딱 벗겨진 채 숙적(宿敵)의 심장 소리를 듣는 재미는 참 인간적이다. 벳부(別府)에서는 지옥(地獄) 온천 순례가 있다니 정신 바짝 차릴 일이다.

 

2008년 8월 9일 토요일, 내일은 유후인(由布院)을 관광하고 일본의 유명한 아사히 맥주 공장을 견학하고는 귀국이다. 미리 마지막 날을 언급하는 것은 이 편지가 내 소중한 분께 좀 더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된 일본 큐슈 여행!

많은 것을 배우기보다는 많은 것을 느끼는 여행이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일본에 유학(儒學)과 천자문(千字文)을 전례해준 백제(百濟)인 아직기(阿直岐). 그리고 그의 스승이었던 왕인(王仁) 박사(博士)! 여기에 그분의 후손인 800년대 사람, 스가와라 노미치자네(菅原道眞)의 소뿔을 내 딸 도연에게 만지게 했던 나와 아내. 우리 딸 도연의 머리가 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부모의 부질없는 욕심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내 부모님도 ‘다자이후텐만구(태재부천만궁(太宰府天滿宮))’에 내 손을 이끌고 오셨다면 이 부질없는 쇠뿔잡기를 강요하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여전히 어려운 아이들, 정규교육으로부터 소외된 학생들에게 꿈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여유롭고, 자상했던 아주 어릴 적의 기억들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고민해 보는 오늘이다.

2008. 8. 8. 금(金)요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중국인에게 8이라는 숫자는 복(福)과 발음도 비슷하고 복과 행운을 주는 숫자라고 한다. 그래서 팔(八)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오늘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다고 한다니 우리들은 21세기, 정보화 혁명의 시대를 살면서도 1만 년 전의 기억에도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양다리를 걸칠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인가 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일본인들이 모신다는 8천만 개의 신사(神社)에는 참 많은 믿음의 대상이 있다고 한다. 일본 만화처럼 참 다양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일본의 상상력과 창조성은 바로 다양한 신사(神社)에서 온 것같다. 가이드의 말을 들어서 그렇겠지만 일본들은 현실과 사후 세계를 동일시하는 힘을 가진 것같다. 농경의 신 ‘여우’ 등의 토템에서부터 ‘다자이후텐만구’의 조상신까지 참으로 다양한 일본의 신, 그리고 일본인들. 불교와 접목된 신사(神社)와 신도(神道)! 기독교인이 1%밖에 없다는 일본. 그래서 교회를 웨딩홀의 모티브로 삼아 건축하는 그들에게 첫날의 낯선 밤경치는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었으리라. 대한민국 서울의 하늘과 일본 후쿠오카의 하늘, 참으로 같으면서 다른 두 나라, 대한민국과 일본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이번 일본 해외 연수, 숙적(宿敵)을 올바르게 이해한 여행기이었기를 바란다.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내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밑거름으로 삼고 싶다. 이번 여행이 내게 작은 다짐과 큰 실천의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그 힘을 바탕으로 꿈과 희망의 우리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사랑과 믿음으로 교육을 실천하고 싶은 소망이다. 그들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30년에 대한 ‘사랑의 둥지’를 그려본다. 비록 지금은 미약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이 작은 다짐에 30년 후의 창대한 믿음의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가 문화의 꽃으로 활짝 피기를 기대한다.

2008. 8. 8. 새벽에.

일본 아소산 유럽풍 돔형 코타지 안에서

부임 10주년 부부동반 해외연수 중인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 마선생이

배려 깊으신, 정 많으신 교장선생님께 올립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서머 워즈(2009)]를 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류(類)의 영화라고 생각해서 안심하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물론 일본 문화에 대한 깊지 않은 지식에 바탕 한 설익은 식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

 

최첨단 보안기술로 만들어진 ‘OZ’는 핸드폰, 컴퓨터, 게임기 등으로 간편하게 접속할 수 있는 사이버 가상 세계. 전 세계 누구나 개인 ‘아바타’를 통해 쇼핑, 영화나 음악 등을 현실과 똑같은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교통, 의료, 소방 등 공공 서비스뿐만 아니라 각국의 군사, 행정까지 조절할 수 있는 ‘OZ’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세계였는데……

나, ‘고이소 겐지’ 17살. 특기는 수학이지만 수학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에 실패하고 지금은 ‘OZ’의 서버 관리 아르바이트로 무료한 여름방학을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나의 짝사랑 ‘나츠키’ 선배로부터 약혼자 노릇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선배의 고향 나가노 우에다에 내려가게 된다.

시골마을에서 만난 90살의 할머니와 27명의 대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날아온 한 통의 문자 메시지. 천재 수학 소년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수수께끼 숫자들이 조합된 메시지의 문제를 하룻밤에 해석한다! 그것이 ‘세상의 위기’가 될 줄도 모르고……. 다음 날, 모든 시스템이 마비된 ‘OZ’와 현실 세계. 심지어 내가 이 혼란을 일으킨 범인으로 지명수배 되다니? ‘OZ’는 정체불명의 침입자로 인해 붕괴되고 현실 세계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나 17세 ‘고이소 겐지’, 그리고 27명의 대가족은 인류의 운명을 건 절체절명의 여름 전쟁에 나선다!

 

단순히 ‘수학 천재’라는 단어에서 맏이 도연에게 수학에 관심을 가져보게 하겠다는 순수한 생각으로 시작한 영화 보기는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아내가 사온 유부 재료로 유부 초밥을 만들어 먹이고 신림 사거리로 출발, 팝콘을 준비하고 극장에 들어갔다. [미래소년 코난]이나 [천공의 섬 라퓨타]처럼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한 동지애를 느끼게 한다.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났지만 이상하게 거부반응이 온다.

27명의 진노우치 집안사람들을 통해 보여지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빼앗긴 우리의 근대사와 중세사를 보게 한다. 이상하다. 하지만 영화는 도전적으로 탈아입구를 표방한 일본의 메이지(명치(明治)) 유신의 폭넓은 잔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피해의식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참 대단하기만한 일본인, 무서운 일본인들을 본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버리는 일본의 ‘가미가제’ 류(類)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영화 내내 나를 괴롭힌다. 그러면서도 최루액처럼 다가오는 눈물은 무엇인가!

밥 줘!

한 드라마의 제목처럼 첩의 아들인 진노우치 와비스케를 아들로 받아들인 90세의 할머니의 유언! 그리고 와비스케 아저씨의 핸드폰 비밀번호 8월 1일! 일본식 암호 0108을 통해 겉으로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이야기하지만 일본인의 가문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나츠키가 겐지에게 요구한, ‘동경대학교 출신, 유학파, 양반!’은 바로 와비스케 아저씨의 모습이 아닌가? 탈 아시아를 꿈꾸면서 유럽 사람이 되고 싶은 일본인의 숙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감히 말한다.

그러면서 영화 내내 맥주와 밥, 라멘, 사케에 흠뻑 빠진 일본인들의 식습관을 동경한다.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그들 일본인들과 언젠가는 또 한 번 부딪힐 그날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평범함을 가장한 진노우치 집안의 평화 만들기에서 요소요소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인의 두 얼굴을 본다. 세계평화를 위해 자신들이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일본의 자위대처럼 평화를 위해 지구를 지키는 겐지와 진노우치 집안의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가시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집 떠난 가족을 위해 항상 밥을 떠놓던 우리네 할머니들처럼 진노우치 집안을 지키는 할머니의 모습, 하지만 그 속내는 정말 무섭다. 우리의 할머니들, [토지]의 윤씨 부인이나 최서희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복수에의 칼을 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는 대동소이(大同小異)가 아니라 소동대이(小同大異)하다는 불편함을 갖게 한 영화였다.

진노우치 가문의 식사 시간! 영화 내내 진노우치 집안은 큰 상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함께 하면서 가족에 대한 소통을 이룬다. 거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맥주다 ^.^

 

하지만 영화는 대가족의 모습을 통해 핵가족화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르네상스에서 영화를 보고나서 포도몰 8층의 일본식 라면, 라멘 집에 갔다. 도연과 둘이서 라멘을 시키고 맥주를 마셨다. 이미 한국화 된 라멘은 일본 현지에서 맛본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없었음에 감사를 드릴 뿐이었다. 작년 8월 중순에 갔던 후쿠오카 나가스 강변의 느글거리던 라멘 국물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꾼 라멘에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조금은 같지만 많이 다른, 조금은 다르지만 많이 같은 두 민족의 갭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맥주 기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