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ngsoi 2014. 7. 13. 01:07

사다예가 또 다시 내 글을 메일로 보내왔다. 처음에는 [도연재원]을 다시 워드 작업을 해서 보냈나 했다. 하지만 사다예와 내가 사이월드 일촌인 것을 간과했다. 사이 월드 내 미니 홈피 게시판, ‘글쓰기 쉬워요’에 가면 쉽게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왜 미처 몰랐을까? 사다예는 오늘 ‘인큐베이터 걸’이란 글을 보내 왔다. 요즘 심기가 불편한지 자꾸만 쉬는 시간마다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 조금 불안했지만 사다예는 여전히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교시 등교 약속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다. 벌써 9년 전의 이야기 속으로 나는 빠져 들고 있었다. 사다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04년 12월 16일 목요일.

관악청소년 회관에 딸 도연의 재롱잔치를 보러 갔다. 한 편으로는 가벼웠지만 작년의 가슴 아픈 사연 탓으로 마음은 빨리 가야한다는 조바심에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작년 재롱 잔치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야간 수업 때문에 도저히 참가할 수가 없었다.(도저히는 아니지만 수업을 바꾸기가 여의치 않아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새벽에 졸음도 잊고 내게 초록색 팸플릿을 쥐어주던 도연의 협박 아닌 협박을 뒤로하고 아버지보다 교사로서의 책임을 핑계 삼아 불참을 선언했다.(사실 학생들과의 약속, 수업이 더 중요하다는 내 개똥철학이, 많은 부분 개입되었다.) 그리고 한 편의 시로 도연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말 융통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아빠!

 

잠결에 애꾸눈을 하고 무언가 찾고 있는 딸 도연. 옅은 초록색 팸플릿, 출근 준비하는 아빠 곁에 던져두고, 다시 애꾸눈을 비비면서 이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몹시도 드문 다섯 살짜리 딸아이는 오늘 재롱 잔치에서 율동을 한다. 딸기 춤을 춘다고 했는지 막춤을 춘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미안할 뿐이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아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친구네 엄마도 학교 국어 선생님인데 오늘은 철썩 같이 관악청소년 회관에 올 거란다. ‘우리 아빠는 술만 좋아해!’라는 말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새벽엔 어제 율동 연습 중에 친구의 장난기 어린 손끝에 찔려 애꾸가 되어서도 처음 서 보는 무대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단잠도 잊고 아무 말 없이 무엇을 찾는가, 했더니 옅은 초록색 팸플릿 던져 놓는다. 아빠가 진짜로 선생님이 맞는가, 의심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어젯밤에 눈에 맞춰 두었던 신림역 3번 출구 앞 꽃집이 자꾸자꾸만 아른거린다. 눈시울이 국화 꽃다발처럼 아리다. 분필을 잡고 있을 아빠의 굵은 손이 노랗게, 파랗게, 빨갛게, 그리고 하얗게 떨리고 있었다.

- 마선생, [애꾸눈] 전문.

 

위로랍시고 던진 아빠의 사과 섞인 ‘애꾸눈’이라는 시(詩)에 대해 도연은 냉정하고 단호했다.

 

“그러면 뭐해? 다들 아빠, 엄마가 와서 응원해 주었는데……. 난, 우리 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라고 담임반 언니들 돌보느라 신경 안 써주고, 아빠는 안 오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야?”

 

순간,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야?’라는 말이 그렇게 무겁고 잔인한 문장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애교 섞인 협박을 한다. 내년에는 제발 야간 수업 없는 날로 재롱 잔치를 잡으라고…….

 

아내가 적극 코치한데다 작년에 내 눈에 아른거렸던 신림역 3번 출구 꽃집에서 도연과 도연이 담임선생님을 위해 꽃을 준비하는 눈길이 분주하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인상 좋은 꽃집아주머니가 도연을 위한 예쁜 장미 한 송이와 담임선생님을 위한 아담한 장미 한 다발 인심 좋게 몇 천원 깎아 준다기에 지갑을 연다. 꽃이 천군만마를 얻게 한다.

재롱 잔치는 7세와 8세(초등학생)의 피아노, 리코더,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되었다. 젊은 부모들은 모두가 디지털 사진기로 아이들의 동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느라 ‘포토라인’을 방불케 했다. 드디어 1부가 끝이 나고 2부 재롱어린이집 어린이들의 말 그대로 재롱 잔치가 시작되었다.

아기자기한 율동이 다양한 음악과 어우러져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박수로 호응을 한다. 준비한 꽃이 부담을 덜어주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빠에게 웃음 섞인 시선을 보내는 도연은 오늘 아빠가 자랑처럼 신선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체를 보려고 하는데, 눈은 자꾸만 우리 도연을 향한다. 제 엄마가 도연이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라서 오만방자해 보이기만 했는데……. 오늘 옆의 단짝 친구 소희와 함께 미소 지으며 농담까지 하면서 율동을 하는 도연의 모습은 정말 천사 같다. 물론 예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오늘의 자랑, 힘센 아빠에게 눈웃음 짓는 여유도 여전하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에 속한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다.

무르익어 가던 무대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아정이란 도연네반 친구다. 무척 긴장한 탓이라는 듯 모두들 응원의 박수를 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사회를 맡은 선생님의 멘트에 객석과 무대엔 눈물이 안개처럼 글썽인다. 어젯밤 내내 감기 몸살로 앓았다는 그 아이, 박아정. 결국 링거를 맞고 나타난 아이. 약 기운에 몸을 가눌 수 없음에도 무대에 오르려는 여섯 살 소녀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기쁜 눈물이 뜨겁게 볼을 타고 흐른다. 예술가에게 혼이 있다면 저 아이겠구나 싶었다.

작은 일에 목숨을 거는 저 아이의 눈빛이 무척 뜨거워 그만 울보가 되어 버린다. 울다가 웃으면, 웃다가 울면 어디어디에 털이 난다는 말이 또 울음보와 동시에 웃음보를 터뜨린다. 심술보도 이만하면 압권이다.

아이가 세 번째 무대에 선다. 약 기운을 이겨낸 의지의 한국인은 마치 한 마리 호랑나비처럼 무대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아름다움이 있다면 아마도 오늘 저 소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가 지났다. 내가 어제의 감동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글을 쓰려 한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내 이야기에 핸드폰 너머로 아내의 말이 더 큰 여운으로 다가온다.

“8개월이 채 못 되어 조산을 했대……. 결국 인큐베이터에서 3개월 정도를 더 있었대……. 살아나지 못할 확률이 더 많았다는데……. 정말 기적처럼 살아났대……. 하지만, 계속되는 잔병치레가 아이를 괴롭혔대……. 그래서일까? 육체의 고통이 더할수록 정신력은 오히려 강해지나 봐! 그런 아정이 모습에 아정엄마는 애써 웃음 띤 목소리로 ‘인큐베이터 걸’이라고 부른대…….”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아내의 마지막 목소리가 나를 자꾸만 울린다. 어젯밤 무대 위에서 열연하던 ‘인큐베이터 걸’ 우리 도연이 친구 재롱어린이집 사슴반 아정이를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우리 반 53명의 말썽꾸러기들도 저만할 때는 모두 ‘인큐베이터 걸’이나 ‘인큐베이터 보이’였을 텐데…….

 

그러면서 생각한다. 십대에 세상의 모든 것을 접해 본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인큐베이터를 탈피해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거듭날 꿈을 꾸어 본다.

쉰 세 명의 아이들이 편견과 오만, 나태와 불신, 그리고 해체된 가족사로 인한 미숙한 정신의 무덤, 곧 인큐베이터와의 화려한 이별을 마치고, 자신의 이상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오버랩 된다. 글쎄? 꿈이라면 깨지 말았으면 좋은, 그런 행복한 꿈이다.

겨울바람이 며칠 간 계속 되었는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봄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함박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설(瑞雪)이 될 것이다.

 

선생님! 이래서 옛 조상들이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나 봐요. 자꾸만 환청이 들려요.

 

사다예는 이상한 문자만 보내 놓고 며칠 째 소식이 없었다. 호사다마라니? 고등학교 2학년이 하기에는 좀 어려운 듯한 표현이다. 삶의 모든 고통을 경험해 본 듯한, 세상을 다 살아 보았다는 뉘앙스가 묻어나는 어휘이면서도 어휘에 가시가 들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다예는 부모님 두 분 다 계시고 아버지는 지식경제부 고위급 공무원이이어서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여유가 있을만큼 유복했다. 그래서 사다예가 수차례 작문 부문에서 입상을 하고 1학기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올라서자 해외여행까지 다녀올 정도로 다복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니? 조금 불안했다. 혹시 부모님에게 문제가 생겼나, 아니면 학교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나, 아니면 다른 문제가 생겼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이성 교제 문제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부모님이나 학급 친구들에게 사다예의 문제를 공론화시키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더욱 궁금증이 대형 스나미처럼 공포로 다가왔다. 지금은 사다예를 믿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