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슐 먹어(임흥수, 장편소설)

14. 네버 엔딩 스토리

madangsoi 2014. 7. 13. 01:06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곱 평 남짓한 작은 방은 작은 서재다. 삼면에 책장이 들어서 있는 모습은 문풍(文風)이 서려 있는 것같다. 문풍지(門風紙)라도 바르면 바로 고택의 서가(書架)가 될 듯한 예스러움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카메라를 들이 밀면 더욱 더 넓고 아늑한 공간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겠다. 아, 문화방송의 ‘러브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생각이 난다. ‘러브 하우스’처럼 도연의 방은 그렇게 고풍스럽지도 않고, 아늑하지도 않지만 겨울 동장군을 막기 위해 창문에는 방풍망과 방풍지가 겹겹이 발라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문풍(文風)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풍을 살리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걸 살리고 싶은 마음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늦는다. 세상이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항상 나를 술프게 만든다. 나는 항상 늦게 집에 들어온다. 아내는 그게 불만이다. 아내의 지청구나 바가지가 없다면 거의 날마다 늦게 들어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 나는 재원과 재미있게 놀아 준다. 재미있다는 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세 살 박이 재원의 거친 운동성향과 감수성 강한 독서 성향을 그대로 받아줄 수 있다는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런 불량 아빠다.

남자 아이들은 참으로 겁이 없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기본이다. 내 등을 올라타거나, 말을 탈 때도 그냥 타지 않는다. 로데오 타는 카우보이처럼 등에 서 있다가 그대로 등으로 뛰어 내린다.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로데오 자체다. 몽골 전사들처럼 푸른 초원에서 말 잔등에 올라서서 푸른 초원을 내달리는 듯하다. 그래도 겁이 안 나는 모양이다. 미끄럼틀이 되라고 조르기도 한다. 미끄럼틀이란 머리는 방바닥으로 향하고 엉덩이는 더욱 높게 올려서 자연스럽게 미끄러지게 하는 자세다. 동작도 자기 맘에 들어야 한다. 하나를 들어주면 열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그 녀석은 내 자식이고 나는 아버지인 것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자주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힘들다고도 감히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놀이가 끝나면 바로 감수성이 발동하는 모양이다. 제 엄마랑 뜨거운 물에 목욕을 마치면 생생한 전투가 일어난다. 얼굴과 몸에 보습제와 로션을 바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리고 양치질은 거의 사력을 다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치과에 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재원은 치실과 양치질을 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그 고집이 누굴 닮았느냐고 아내가 묻는다. 나는 말 대신 웃으면서 나를 가리킨다.

“아빠 소도 얼룩소 아빠 닮았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변화무쌍한 그 변덕은 어른들보다 심하다. 극과 극이다. 복불복이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다. 아마도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오락 프로그램 ‘1박 2일’ 출연자들의 변화무쌍하고 재치 만점인 개그보다 더 낫다. 부족함도 없다. 보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아들의 엄마는 정말 죽을 맛인가 보다. 아마도 엄마는 1박 2일 담당 피디의 마음을 닮았을 것이다. 계속 이렇게 가다보면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느냐의 문제 말이다. 변화를 줄 것이냐, 아니면 현재에 안주하면서 그대로 요족을 누릴 것이냐, 선택은 항상 최선이라고 믿지만 차선조차 준비하지 않다가는 바로 나락으로 빠져 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담당 피디는 알지만 엄마들은 모른다. 왜냐하면 1박 2일의 여섯 사람, 아니 김종민 씨가 소집해제 됐으니 일곱 사람이겠다. 일곱 사람은 나름 시청자의 검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세 살짜리 남자 아이는 다르다. 그는 아직 검증할 수도, 검증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백지와 같다.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의 몫이기도 하지만 그의 부모의 몫이기도 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무책임한 말보다는 새로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신중하게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밑그림은 4B 연필로 그려야 한다. 그래야 지우기도 하면서, 조금씩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생각을 부모의 생각과 절충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부모가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아이의 기분을 알고 그 기분을 맞추어주기도 하고 그 기분을 조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오늘도 잠자리에 들려는 재원이 보챈다. 책을 읽어 달라고 하더니 내리 열 권을 읽고는 제 엄마 곁으로 달려간다. 팔베개를 해달란다. 하지만 녹초가 되어버린 엄마는 팔베개를 거부한다. 재원은 운다. 그게 가장 커다란 협상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재원에게 팔베개를 해주겠다고 말한다. 재원은 거부한다. 대신 개구리 베개를 요구한다. 도연이 개구리 베개 대신 곰 인형을 제안한다. 하지만 재원은 계속해서 개구리 베개를 요구한다. 갑자기 어젯밤에 놀 때 보았던 장난감 통에 있던 개구리 베개가 생각난다.

개구리 베개의 뱃구레가 텅 비어 있다. 끝까지 개구리 베개를 요구하는 그 고집을 지금 꺾을 수 없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다. 개구리 베개 안에 곰 인형을 넣는다. 개구리 베개 완성! 개구리는 갑자기 곰을 먹은 개구리가 된다. 그냥 울고 잠이 들 일이 점점 커진다.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한 마디 나의 실수 탓이다.

“와, 개구리가 곰을 먹었으니 이건 황소개구리다.”

“아빠, 옛날 옛적에 해 줘.”

“해 줘?”

“해 주떼요!”

공손하게 미소 머금고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재구성한다.

“마, 옛날 옛적에 엄마양과 일곱 마리 아기양이 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황소개구리가 엄마양이 시장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가 고팠던 황소개구리는 아기양들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엄마양이 시장에 간 사이에 황소개구리가 양들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럼, 함께 이들의 대화를 들어 보겠습니다.”

황소개구리 : 얘들아, 엄마다. 문 열어라.

아기양 1 : 우리 엄마 목소리가 아니네.

황소개구리 : 아니다. 엄마가 감기에 걸려서 그래.

아기양 2 : 거짓말 하지 말아요.

황소개구리 : 진짜라니까? 어린이들은 어른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착한 어린이지.

아기양 3 : 그럼 손을 내밀어 보세요.

황소개구리 : 손? 그래.

아기양 4 : 거봐요,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 손은 두 굽에 하얀 털이 나 있어요. 아저씨 손은 물갈퀴가 있고 매끈하잖아요.

황소개구리 : 똑똑하구나. 그런데 양에게 손이 있기는 한 거냐. 발이겠지.

아기양 5 : 아저씨,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이 작품은 동화라고요. 그럼 양이 황소개구리와 대화하는 건 말이 되냐고요?

황소개구리 : 각설하고.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황소개구리는 그 길로 성형외과에 가서 오른손을 양의 것으로 수술을 하고, 목소리도 엄마양과 똑같게 성대 수술을 해서 돌아왔어요. 정말 직업 정신이 투철한 황소개구리였습니다.”

황소개구리 : 얘들아, 엄마다. 시장에서 맛있는 걸 너무 많이 사와서 힘이 들어요. 문 좀 열어 줄래?

아기양 6 : 와, 목소리는 엄마와 똑같네. 그럼 손을 내밀어 주세요.

황소개구리 : 그래,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우리 아기들. 엄마 손!

아기양 7 : 와, 정말 엄마 손이다. 어서, 문 열어 드리자.

 

“문이 열리자마자 황소개구리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놀란 아기양들은 침대 밑에 두 마리, 침대 위에 한 마리, 소파 밑에 한 마리, 벽난로에 두 마리, 그리고 괘종시계에 한 마리가 숨었습니다. 황소개구리는 침대 밑의 두 마리, 침대 위의 한 마리, 소파 밑의 한 마리, 벽난로의 두 마리를 찾아서 통째로 꿀꺽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찾지 못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여섯 마리로도 황소개구리의 배는 배불뚝이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얼마 후 엄마 양이 양 손에 맛있는 과일과 채소들을 들고 집에 들어서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문은 열려 있고 집안은 온통 아기양들의 하얀 털들로 가득했거든요. 눈물이 엄마양의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그때 아기양 7이 나타났습니다. 괘종시계에서 뛰어내린 거죠. 아기양 7은 엄마양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엄마양은 아기양 7과 함께 연못으로 갔습니다. 연못가에는 배불뚝이 황소개구리가 포만감에 흐뭇해하며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엄마양은 아기양 7에게 집에 가서 가위와 바늘, 그리고 실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아기양 7이 가위와 바늘, 그리고 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엄마양은 황소개구리의 배를 가위로 자르고 아기양 1, 2, 3, 4, 5, 6을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아기양들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져온 돌들을 황소개구리 배에 넣고 실과 바늘로 꿰맸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양이 사온 맛있는 과일과 채소를 나누어 먹으면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황소개구리는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연못에 가서 물을 마시려는데 돌 무게에 못 이겨 그만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답니다. 네버 엔딩 스토리, 끝!”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재원은 재미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또 해줘!”

“뭐? 또 해줘!”

“또 해주떼요.”

“재원아, 지금 밤 12시 30분이야. 그만 자자, 응?”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요!”

“아, 그럼 다시 황소개구리 이야기다. 옛날 옛적에 황소개구리가 살았습니다.”

옆에서 자지 않고 듣고 있던 도연이 정말 재미있다는 듯 참견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재원은 이내 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는 처음 것과 스토리는 거의 같았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패러디의 세계로 들어갔다. 네버 엔딩 스토리로 갈까 하다가 조금만 변형시키기로 하였다. 아기양 1, 2, 3, 4, 5, 6, 7은 아기양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무지갯빛으로 바꾸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 양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어. 아기양 보라가 괘종시계에서 뛰어 내려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기양 보라 : 엄마, 정말 큰 황소개구리가 집에 들어 와서 형과 누나들 여섯을 통째로 잡아먹었어.

엄마양 : 얼마나 크기에 개구리가 아기양 여섯을 다 먹어?

아기양 보라 : 정말 컸어.

엄마양 : 얼마나 큰데?

아기양 보라 : (손을 들어 보이며) 이것보다 더 컸어요.

엄마양 : (배에 힘을 주며) 이만큼 컸어.

아기양 보라 : 아니, 그것보다 더 컸어.

엄마양 : (배에 더 많은 공기를 넣으며) 그럼, 이것 보다 더 컸어?

아기양 보라 :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컸어. 엄마는 게임도 안 된다, 뭐.

엄마양 :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힘을 주면서) 그러엄, 이만하대?

 

“그러다가 그만 배가 터져서 엄마양은 외과에 가서 수술을 하고 돌아왔대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기양 보라는 엄마양에게 사건의 전말, 처음부터 끝까지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엄마양은 아기양 보라와 함께 연못으로 갔습니다. 연못가에는 배불뚝이 황소개구리가 포만감에 흐뭇해하며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엄마양은 아기양 보라에게 집에 가서 가위와 바늘, 그리고 실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아기양 보라가 가위와 바늘, 그리고 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엄마양은 황소개구리의 배를 가위로 자르고 아기양 빨주노초파남을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아기양 빨주노초파남보들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져온 돌들을 황소개구리 배에 넣고 실과 바늘로 꿰맸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양이 사온 맛있는 과일과 채소를 나누어 먹으면서 아기양 빨주노초파남보와 다시는 오늘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황소개구리는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연못에 가서 물을 마시려는데 돌 무게에 못 이겨 그만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육지 구경을 못했답니다. 네버 엔딩 스토리, 끝!”

네버 엔딩 스토리로 전개되기 전에 재원은 잠이 들었다. 옆에서 잠자코 보고 듣고 있던 도연은 깔깔 거리면서 좋아라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 다음에는 늑대에게 꼭 잘근잘근 씹어 먹으라고 할 거야.”

“마, 그럼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잖아. 이야기라는 게 개연성 있는 허구잖아. 있을 법한 이야기지. 피노키오에서도 고래 뱃속에서 쥬세페 할아버지를 만나잖아. 만약 과학적으로 따지면 쥬세페 할아버지는 벌써 소화가 됐어야 하는 거지. 아니면 익사했던가, 안 그래?”

“그렇긴 하지. 그런데 아빠, 패러디 그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야?”

“왜, 옛날이야기라는 게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공동 창작한 거거든. 그러니까 안 될 것은 없어.”

“그럼, 패러디가 죄는 아닌 거지?”

“마,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하면 그건 거의 표절에 가까운 거지. 인쇄하고 출판해서 판매하느냐의 문제일 거라고 봐. 출판과 판매라는 관점에서 보면 저작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지. 표절과 패러디는 분명 다른 거야. 표절은 도둑질이지만 패러디는 습작(習作)의 과정으로 보면 어떨까?”

“아무튼 아빠는 참 대단해. 그렇게 말장난이 하고 싶어? 아무튼 아빠가 자주 집에 일찍 와서 재원이랑 놀아주면 좋겠다. 재원이도 무지 좋아하잖아. 재원이 책이야 엄마가 읽어줄 수 있지만 재원이 말 타기 놀이는 아빠 아니면 안 되는 거 알지. 아빠가 조금만 일찍 오면 정말 재미있겠다.”

“우리 도연이 철들었네. 그래, 뻔한 거짓말이지만 일찍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아지도록 노력할게. 미안해.”

“근데, 아빠! 나 어릴 때도 이렇게 재미있는 네버 엔딩 스토리 많이 해줬어? 재원이가 부러울 때가 많아. 이게 소외감이란 거야?”

“글쎄, 그때는 아빠도 초보 아빠라서 잘 못해 주었던 건 분명해. 하지만 자주는 아니지만 도연이 너에게도 분명 네버 엔딩 스토리 많이 해줬어.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네버 엔딩 스토리는 아냐. 조금 패러디한 것뿐이야. 자자!”

“도연이, 잘 자.”

“아빠도 안녕히 주무세요!”

우리 가족의 네버 엔딩 스토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좋은 아빠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 밤이었다. 도연과 재원, 두 아이가 제 엄마 곁에서 아기양들처럼 새근새근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황소개구리는 참 불쌍하다. 늑대는 내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겠지. 네버 엔딩 스토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