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웅변대회
6월에 웅변대회가 있었다. 선생님은 나와 백사라를 각각 불러서 웅변대회 원고를 써보라시며 참고할 만한 원고 샘플을 주었다. 백사라는 처음과 다르게 나를 자꾸만 의식하고 있었다. ‘네가 쓴 거야?’ 이후로 백사라의 눈빛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1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 반이었던 백사라는 그때부터 이미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1, 2학기에 번갈아 가면서 맡았다고 했다. 그때마다 백사라는 지금 내가 하고 있던 일도 거의 도맡다시피 했던 모양이다. 물론 백사라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몇몇 아이들이 백일장과 공모에 번갈아가며 참가하거나 공모에 응했는데 썩 좋은 결과는 얻지 못한 듯했다. 거의 장려상이나 동상 정도를 받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교내 백일장이나 웅변대회 등에서는 최우수상이나 금상을 받아 왔었다는 것이다.
처음 같은 반이 되었을 때 부회장 백사라는 나를 이해해 주고 내게 호의를 베풀었다. 나를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1학기 3, 4, 5월을 지나면서 내가 서서히 화려한 수상 실적을 올리자 나를 보는 눈이 점점 어두워졌다. 물론 내 기분 탓일 것이다. 죄의식! ‘네가 쓴 거야?’는 점점 나를 옥죄어 왔다. 이명(耳鳴)처럼 자꾸만 환청이 들려왔다. 백사라는 내게 우울한 기억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웅변대회는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성화는 대단했다. 웅변대회 원고를 일일이 고쳐주시기도 하고 새로운 원고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사라의 원고를 볼 수 있었다. 물론 백사라도 내 글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웅변대회는 거의 한 달 이상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사라는 이번만은 이기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동안은 선생님의 입김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애벌레와 나비’라는 제목의 백사라의 원고는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나비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평화통일 문제와 연결한 좋은 원고였다.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게다가 백사라는 이미 1학년 때에 웅변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번 웅변대회는 우리 학교가 주관하긴 했지만 국립서울현충원과 광복회가 후원하는 권위 있는 대회였기 때문에 우리들의 관심과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한 번도 웅변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데 있었다. 선생님은 나와 백사라의 경쟁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우리 둘 뿐만 아니라 3학년 선배와 같은 2학년 남학생 두 명도 이미 경험자였고, 게다가 교외 웅변대회였으므로 다른 학교 실력자들도 5명 정도 참가하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이후 웅변대회라는 것 자체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더욱 어려운 한 달 이상의 시간이었다. 물론 백사라의 심한 견제가 가장 힘들었다. 백사라의 그림자들도 거의 매일같이 남아서 웅변 연습하는 음악실을 응원과 호응의 바다로 만들었으므로 나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백사라의 웅변 원고는 차분하면서도 포스가 느껴졌다. 역시 경험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원고를 써 나갔다. 나는 한참 유행하는 신종 인플루엔자와 관련하여 손 씻기의 생활화라는 내용으로 원고를 작성해 갔다. 1830운동, 하루 여덟 번, 30초씩 손 씻기를 하면 다양한 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가 끝은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인용했다.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비스킷 통의 비스킷을 맛있는 것부터 먹으면 다 먹을 수 없다. 반대로 맛없는 것부터 먹으면 나중에 맛있는 비스킷이 남기 때문에 다 먹을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힘든 일부터 열심히 참고 이겨내다 보면 나중에는 그보다 더 힘든 일도 다 이겨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맛난 비스킷이 최후에 남을 것이다. 개인, 가족, 사회, 국가도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원고를 전개해 나갔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웅변대회로 연결시킬 것인가의 문제였다.
백사라의 견제는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네이트 온으로는 물론 사이월드, 이 메일을 통해 계속해서 예의 ‘네가 쓴 거야?’를 자기가 아닌 그의 그림자들을 통해 보내면서 압박해 왔다. 예전 같으면 벌써 엄마에게 전학 얘기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벌써 학교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물러설 사다예가 아니라고 속으로 수도 없이 마인드 컨트롤하고 또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당당했다 해도 속으로는 이미 깊은 시름과 번민에 빠져서 지각과 결석에 대한 유혹을 쉽게 물리칠 수 없었다. 하마터면 지각을 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잘 이겨나가고 있었다. 웅변대회가 열리는 2009년 6월 25일 목요일은 시나브로 다가와 있었다.
드디어 웅변대회가 시작되었다. 광복회장과 국립서울현충원장, 그리고 교장선생님과 총동문회장님 등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웅변대회가 열렸다. 성인들도 몇 명 참석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글짓기 반에서 이미 낯이 익은 우리 학교 성인 학급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오늘을 위해 준비한 아름다운 한복부터, 멋진 정장에 이르기까지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앞좌석에는 가족과 성인 학급 학생들이 꽃다발로 무장하고 있었다. 우리 옆에 다른 학교 대표 학생들 다섯 명도 나와 연사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초조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백사라는 1번 연사 2반 박희재 다음이었다. 2반 현숙이와 3반 재용이의 멘트에 따라 백사라가 단상에 올랐다. 당당한 백사라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게다가 백사라의 그림자들은 벌써 꽃다발을 준비하고 열광적인 호응을 하고 있었다.
현숙 : 다음은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 2학년 1반 백사라 학생이 나와서 ‘애벌레와 나비’라는 주제로 웅변을 하겠습니다.
재용 : 애벌레가 건강한 나비가 되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극복해야하는 것처럼 남북한 평화통일도 우리들의 인내와 극기라는 작은 실천에서 이룰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백사라가 웅변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저는 며칠 전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소개해준 우리 반 한 친구의 편지를 읽고,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그 내용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편지에 인용된 '애벌레와 나비'의 내용은 제게 새로운 통일조국과 선진국에의 꿈을 꾸게 했습니다.
애벌레에게는 길에 늘어선 모든 것이 문제다.
작은 돌멩이도
길가에 물웅덩이도
심지어는 작은 나뭇가지도 문제다.
나비에게는 이 모든 것이 구경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애벌레가 변하지 않으면 나비가 되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애벌레가 변해 나비가 되듯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애벌레는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몸에 익숙하게 되어버린 껍데기를 과감히 벗지 않으면 화려한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날갯짓을 할 수 없습니다.
백사라의 야무진 매조지가 터지자 그림자들을 포함한 객석은 박수를 쏟아냈다. 홈 어디벤티지가 이런 것이구나. 역시 백사라였다. 경험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백사라의 웅변은 계속 되었다.
여러분!
그렇게 하자면 당연히 아픔이 따르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 역경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내지 못하면 나비가 되어 날아 보지도 못하고 영영 애벌레에 머물고 말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남한과 북한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스스로 변하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남한 탓만을 하고 있습니다. 자주 국방의 상징인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건조 소식을 들은 북한은 동해 바다에 또 다시 미사일을 쏘았다고 합니다. 경의선 철도를 시범 운행하는 일만으로도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북한은 아마도 겁이 났을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경제적 수준에 맞게, 과학 국방 기술의 수준에 맞게 건조된 세종대왕함과 북한의 핵미사일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담임선생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함께 내빈석을 채우신 국립서울현충원장님과 광복회장님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뭇해 하셨다. 우리에게서 사라진 웅변의 꽃이 그 순간 활짝 피고 있었다.
여러분!
북한 국민 대다수가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개발된 핵미사일은 분명 우리 대한민국과 주변국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전인수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느니, 하는 말보다도 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소개해준 글을 듣고 북한정권은 아직도 애벌레인데도 마치 나비가 된 듯이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한 나라들은 그들 앞에 놓인 문제와 당당히 싸워 승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 클리투스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변화는 찬스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와 북한 모두에게 찬스가 주어졌습니다. Chance에서 c를 g로 바꾸어 보셨나요? Change, 변화가 됩니다.
여러분!
남북한은 모두 애벌레입니다. 모든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비가 된 선진국들이 우리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불평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애벌레에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자신 있게, 단호하게, 분명하게, 평화통일을 이야기 합시다. 자신에 맞는 옷을 단호히 벗고 새 옷을 입을 각오가 남과 북 모두에게 가득 찰 때 우리의 통일 선진조국은 반드시 다가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클라이맥스를 제대로 처리하면서 백사라의 웅변이 끝났다. 객석은 술렁거렸다. 격려의 박수 소리가 현충관을 가득 채웠다. 백사라의 그림자들은 준비한 꽃다발을 전했다. 부러웠다.
‘Chance에서 c를 g로 바꾸어 보셨나요? Change, 변화가 됩니다!’ 내 가슴에 강하게 와 닿는 말이었다. 지금 나, 사다예에게 더없이 소중한 말을 백사라가 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긴장이 눈처럼 녹아내렸다. 아직도 순서는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열 번째 연사인 3반 태웅이 다음이었다.
태웅이의 순서가 끝이 났다. 드디어 내 차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숙이의 멘트가 끝나고 재용의 멘트가 시작되면 연단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그런데 연단까지 거리가 몇 백 미터는 되는 듯이 길게 느껴졌다. 긴장이라는 것, 경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심호흡을 크게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숙 : 다음은 당신정보산업고등학교 2학년 1반 사다예 학생이 나와서 ‘1830 운동으로 바꾸어 가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웅변을 하겠습니다.
재용 : 하루 여덟 번 30초씩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신종 플루 등의 질병을 물리칠 수 있듯이 우리들의 작은 실천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내고, 사회문제, 남북문제 등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태연한 척 준비된 물을 한 잔 마시고 웅변을 시작했다. 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기계처럼 연습한 대로 웅변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여러분!
저는 어느 날 저희 반 담임선생님 사이월드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보고 그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스크랩을 하였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에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시를 낭송하듯이 눈을 감고 차분히 웅변을 한다. 이어지는 객석의 뜨거운 반응, 홈 어디벤티지다. 나는 기계가 된다. 로봇처럼 연습한 대로 원고 내용을 잘근잘근 씹어 나간다. 아직도 멀어만 보이는 원고는 길기만 하다.
여러분!
저는 요즘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산 소의 수입과 광우병 문제, 어린이 대공원과 조류 인플루엔자-AI바이러스, 그리고 돼지 구제역에 이어 신종 인플루엔자 등등 우리들이 좋아하는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야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맛없는 비스킷들이 먼저 손에 잡힌다는 것은 결국 조금 있으면 내가 진정 좋아하는, 맛있는 비스킷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강하게 어필했다. 내 속의 응어리졌던 무언가를 내뱉고 있었다. 객석은 또 다시 예의 박수를 보내왔다. 중독되고 있었다, 그들의 함성과 박수에.
‘역경은 축복이다’라는 한 국회의원의 자서전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위기 뒤에 찬스 말입니다. 모두가 위기를 이야기할 때, 성공한 사람은 찬스, 즉 기회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시련은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 번째 박수를 받았다.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웅변을 하고 있다. 앞은 캄캄했다. 상방 15도로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백사라의 그림자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아직도 두렵기만 했다. 객석 어디선가 그림자들은 나를 보며 짓궂게 장난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림자들에게 흐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림자들은 악의는 없다고 좋게 생각했다. 악동 정도라고 속으로 곱씹었다.
여러분!
저는 우연히 학교 게시판의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생활 운동 포스터가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1830운동!
하루, 여덟 번, 30초씩 손을 깨끗이 씻으면 우리들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많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손을 씻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여덟 번, 30초씩 자주, 그리고 꼼꼼히 손을 씻는 것입니다. 비누를 칠하고 거품을 잘 내고 손목에서 손가락 끝으로 손에 묻은 이물질을 쓸어내리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맑은 물로 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화생방전이나 생화학전에서나 볼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손 씻기만 잘해도 우리들이 걱정하는 질병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조금 황당하기는 합니다마는 여러 가지 연구 결과이고 보면 그냥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건강, 우리들의 작은 실천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박수소리가 현충관에 울려 퍼졌다. 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웅변 머신이었을 뿐이다.
여러분!
“지금 어려운 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우리들의 삶을 보다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이끌어 갑시다. 당신고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
끝났다. 긴장이라는 것, 경험 부족이라는 생각도 함께 날아갔다. 홀가분했다.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내 뒤로 다섯 명의 연사가 더 있었다. 결과는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대상은 성의여자고등학교 3학년 인도원이었다. 3반 태웅이가 금상을 수상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태웅이도 정말 잘했지만 인도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예상과 달랐다는 것은 우리 학교가 주관했으므로 우리 학교 학생이 대상을 받을 것이라는 우리들의 바보같은 생각때문이었다. 대상 인도원의 웅변 주제는 한식의 세계화, ‘연개소문’ 전략이었다.
여러분!
저는 얼마 전 경기도 양평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농민신문에서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전략의 이름은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이었습니다. 연개소문의 자주성과 개방성을 본받아서 강하게 한식의 세계화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한식의 세계화를 위하여 박수!
여러분!
농림 수산 식품부는 한식을 중식, 일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에 이어 세계 5대 음식으로 발전시키고 전 세계에 4만 개의 한식당 개업, 100억 달러 농수산식품 수출, 세계 일류 한식당 100개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연․개․소․문’ 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
전 세계 식품시장은 자동차 산업의 2.5배에 이르는 4조 4000억 달러 규모라고 합니다. 엄청난 고(高)부가가치 산업입니다. 이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연·개·소·문’ 전략을 통해, 한식의 세계화를 반드시 이루자고 이 연사 강력히 호소합니다!
여러분, 연․개․소․문 전략은 네 가지 한식의 세계화 전략입니다!
첫째, 연(連)은 농어업과 문화예술 등의 연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음식 및 문화와의 연계입니다.
둘째, 개(開)는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과, 우리의 음식과 문화를 나누는 자세입니다.
셋째, 소(小)는 작지만 강한 파급력으로 국산 농수산식품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넷째, 문(紋)은 창의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식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한식의 세계화를 위하여 다 같이 외쳐 봅시다.
대한민국 파이팅, 한식 만만세!
Korean Food!
한식의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 농림 수산 식품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법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만화 영화에서 일본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중식과 일식, 프랑스식과 이탈리아식은 자주 볼 수 있는데 우리 한식은 보이지 않아서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베트남식과 타일랜드식까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데 우리 한식은 왜 이럴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식의 세계화-연․개․소․문 전략이 세워져 매우 기뻤습니다.
한식! 바로 우리 대한민국과 함께 할 운명 공동체라고 자신 있게 외칩니다.
여러분!
몇 년 전부터 ‘김치 버거’라는 퓨전 음식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퓨전 음식은 한식과 서양식의 조화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퓨전을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중식과 일식, 프랑스식과 이탈리아식이 세계 4대 음식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자기 음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치의 일본식인 기무치는 Made in Korea가 결코 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여러분!
김치, 갈비, 떡볶이, 김밥, 그리고 보신탕마저도 세계화할 수 있다는 문화상대주의가, 우리 한식을 세계로 나서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 앞에 연․개․소․문 운동 함께 실천하자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한식 만만세!
무려 일곱 번의 박수와 함성을 받아낸 인도원은 결국 심사위원 아홉 분 중 대다수의 지지와 우리 학교 학생 대부분의 지원을 받아서 어웨이 경기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당당히 대상을 수상하였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비된, 아니 열심히 노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 우등생답게(우등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똑똑하게, 아니 도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매우 논리적이고 청중의 마음을 좌지우지 하는 설득력을 보이고 있어서 무척 부럽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인도원은 3학년답게 무척 여유 있어 보였다. 백사라와 나는 은상을 수상했다. 기뻐해야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백사라는 그림자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선생님은 그런 그들을 따라가 격려하고 다시 현충관으로 들어섰다. 백사라와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듯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대상을 내주기는 했지만 정말 잘들 해주었다. 우리 반에서 두 사람 모두 은상을 차지하다니 대단하다. 선생님의 점수는 반영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누구의 도움도 없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사다예, 네가 쓴 거야! 그치? 도움은 말 그대로 도움일 뿐이야. 전혀 새로운 글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도 표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데 너희같은 학생들이야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글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 이제 이해하겠니? 글쎄, 쉽지 않은 일이란 건 분명하니까. 우리 사다예나 백사라도 조금씩 대필이니, 개작이니, 패러디니, 표절이니 하는 굴레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의 이분법은 이제 그만! 오늘, 아니 한 달 내내 고생 많았다, 사다예. 언제 날 잡아서 쫑파티 한 번 하자. 우리 웅변 팀. 오늘은 선생님들 회식이 있거든. 조심해서 들어가, 사다예.”
선생님과 헤어져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이제 학교에서는 이야기할 친구들은 생겼지만 방과 후에 시간을 내서 함께 보낼만큼의 절친은 없었다. 백사라, 그리고 그 그림자들과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독서와 작문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또 무엇인가를 하다가 화들짝 놀라서 내 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답지 않은 모습이 요즘 심심찮게 보여서 이상했지만 딸을 이해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려니 하고 짐짓 오늘 웅변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는 즐거움을 표정으로, 웃음으로 과장되게 엄마에게 어필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명동에서 아빠가 조인해서 함께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즐거움에 조금은 긴장한 엄마, 아빠의 어색한 웃음이 저녁 식사를 달뜨게 했다. 아무튼 즐거운 만찬이 끝나고 엄마와 아빠는 나를 집에 들여보내고 두 분이 오랜만에 술 한 잔을 하고 12시가 조금 넘어서 귀가했다.
밤에 백사라와 웅변대회 때문에 심하게 다투는 꿈을 꾸었다. 백사라와 그림자들은 나를 가운데 몰아 놓고 또 예의 문장을 반복해서 쏟아내며 몰아세우고 있었지만 나는 예전처럼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네가 쓴 거야?’
‘그럼, 누가 썼겠니? 우렁이 신랑이라도 나타나서 대신 써줬겠니? 신경 끄셔.’
내 말에 백사라와 그림자들이 계속 뭐라고 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때 마침 자명종 덕에 새벽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기계처럼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향했다. 6월 26일 금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