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헛수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다. 우공이란 사람이 동네 사람들이 멀리 산길을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날마다 삼태기로 흙과 돌을 날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면서 헛수고하는 우공을 비웃었다. 하지만 우공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날마다 흙과 돌을 나르고 또 날랐다. 우공은 결국 뒷산을 옮기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어리석어 보이던 일이지만, 헛수고처럼 보였던 일이지만, 수고의 땀방울은 기적을 이루어냈다는 고사(故事)처럼 세상에는 우리들이 보기에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비정상적이기에 정상적인 그들, 어리석게 정도,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 손가락질을 당하는 세태는 왕따와 같은 주변인, 아웃사이더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생님은 그런 아웃사이더를 소재로 글을 썼다. 민방위의식 고취를 위한 글쓰기 대회였다. 최우수상인 서울특별시장상을 받았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에서는 아깝게도 입상에 실패했다. 선생님은 심사위원도 글짓기 실력의 일부라고 했다. 축구에서 주심의 몸을 맞고 골이 들어가도 골로 인정되듯이 작문이란 것도 대부분 심사위원의 취향이나 세계관에 의해 평가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배수구 쓸던 노인!’ 재미있지만 의미심장한 사소함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선생님의 이 낯선 글 속에서 ‘안전 불감증’이란 말은 그렇게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었다.
‘참, 이상한 노인이다. 왜 저렇게 열심히 배수구를 쓸고 또 쓰는 걸까?’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나는 신림2동에서 신림본동으로 이사했다. 신림2동 산자락에 살다가 신림본동 도로변으로 이사 오면서 생활이 편리해짐을 느꼈다. 가까워진 신림역, 도보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우리 집이 있다. 길 옆 첫 번째 골목에 위치한 천혜의 쉼터, 우리 집.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 장인의 빌라트에 전세로 둥지를 텄다. 그로부터 3, 4년 후 나는 이상한 할아버지를 목격했다.
파지(破紙)와 빈 박스를 모으는 일을 하는 노인은 손수레 옆에 항상 플라스틱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리고 구청 표시가 분명한 50리터짜리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배수구마다 청소를 하는 것이 여러 번 내 눈에 목격되었다. 처음엔 노인의 파지와 빈 박스를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집에 신문이나 전단지, 빈 박스 등이 모아지면 그것들을 부러 드리고는 했다. 물도 드리고 음식도 드리면서 나는 노인과 친해졌다. 내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인은 말 대신 미소로 인사하고 있었으므로…….
어느 날, 처가에서 노인의 이야기를 하자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그 노인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통장이나 반장도 그 노인이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만 사람 좋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들 말씀하시면서,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죄 많은 이 세상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다.
그런데 노인은 파지와 빈 박스를 모아 파는 노인답지 않게 항상 깔끔한 옷차림과 흉하지 않은 손마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노인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도 많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물이나 음식을 내게서 받아서 먼 하늘을 보면서 노인은 항상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다시 오던 길을 가면서 언제나처럼 파지 수집보다 배수구 정비에 더 힘을 기울이는 듯한 예의 이상한 행동을 거듭했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배수구에 아무 거리낌 없이 담배꽁초를 불을 붙인 채 그대로 버리고는 하는데, 역시나 담배꽁초가 가득 쏟아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쓰레기들을 모두 수거해서 예의 그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심하면 시궁창 냄새가 그득한 물까지 퍼다 버리기까지 했다. 환경 사랑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존경할 만한 사람을 위인이라 한다면, 어떤 위인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자 ‘저 노인이야말로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노인은 내 기억에서 참으로 존경할 만한, 하지만 평범한 한 노인네로 기억에서 잊혀졌다.
Again 2006!
다시 월드컵의 열기가 무르익어 가던 지난 6월 초, 나는 노인과 우연히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비를 핑계 삼아 동네 앞, 도로변 방 코너리 치킨 집 앞 파라솔 아래서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깔끔한 차림에 우산을 받쳐 든 멋쟁이 신사가 지나쳤다. 순간 그가 ‘파지 노인’임을 뒤늦게 깨닫고 조금 달렸다. 그리고 노인이 앞에 섰다.
“어디가세요?”
“음, 누구신지……? 아, 그 젊은 선상님!”
“어르신, 어디 가세요?”
“아니, 이제 어디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요.”
“예, 근데 추워 보이세요. 저기서 따끈한 오뎅국에 소주 한 잔 하시고 가세요.”
내가 가리킨 파라솔 아래 탁자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국과 소주, 그리고 식었지만 먹음직스러운 닭 반 마리가 지친 노인의 목젖을 침으로 꼴깍 넘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술상을 본 노인은 주저하다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웃음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노인과 술을 마셨다.
한 순배, 두 순배, ……. 두 병을 마저 비우자 노인은 화색이 도는지 날씨가, 비가 와서 한결 시원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파지 노인’에 대한 그 동안의 궁금증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노인이 먼저 말을 걸어오자 이 때다 싶었다.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해서 돌려 따고는 노인에게 권하고, 주인에게 두부김치를 곱빼기로 달라며 떼를 썼다. 노인은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노인에게 배수구를 그렇게 열심히 치우는 이유를 물었다.
소주 한 잔을 반 쯤 비우고 노인은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술기운을 핑계 삼아 넋두리하듯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인간이 나라오.”
“……?”
노인은 짧은 그 한 마디로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술이 두 순배 더 돌자 내가 재차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술이 얼근해진 노인은 입을 다시 열었다.
“둑방 근처 동네였는데…….”
다시 술 반잔을 마저 마셨다. 나는 조금 기다려 술잔을 채웠다. 노인은 잠시 안주 대신 하늘을 보더니, 눈에 물이 가득 고인 채 입을 열었다.
“둑방 근처 동네였는데 말이오. 아들 셋 여우살이 하느라 우리 두 노인네 집 줄여 반 지하에서 살았드랬소. 어려웠지만 성실한 세 아들들이 잘들 살아 주니 내 일 하면서 그럭저럭 살았지. 근데 개인 사업하던 둘째 놈이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라, 내외가 맞벌이 한다며 손자 놈을 맡겼어. 다섯 살짜리였는데…… 신통방통했는데…….”
다시 술을 반잔을 마셨다. 노인은,
“……. 아주 잘 생기고 똑똑한 아이였지. 그날 폭우가 내렸어. 장마철이었는데도 우리는 날품 팔러 가서는 좀 늦었지. 폭우로 물이 불어난 거요. 근데 나중에 보니 물이 역류한 것은 내가 집에 온 바로 그 때였어. 조금만 더 빨리 집안으로 달려만 갔어도……. 자물쇠로 문만 잠그지 않았어도……. 마당 수체 구멍이 꽉 막혀서 창문으로 물이 역류한 거요.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지를 못했어. 물이 성이 나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하지만 그 어린 것이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고 보니…….”
다시 남은 반잔을 마저 마시고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크흐윽……. 그래서 말이오. 나는 날마다 그 놈처럼 불쌍하게 죽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를 바라면서 주제 넘는 짓을 하고 있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고…… 우리 동네에서만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지요…….”
노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내가 따라 놓은 술을 이번에는 한 잔을 벌컥 다 마셔 버렸다. 시켜 놓은 안주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나 노인이나 술에 취하고 비에 취하고 슬픔에 취해서 그냥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노인은 흔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던 길을 갔다. 노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주제도 모르고 파지나 줍는 늙은이가 남의 집 배수구를 쓸고 다닌다오……. 그런다고 죽은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제도 모르고, 주제도 모르고…….’
여름비 속으로 멀어져 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내리는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운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인간이 나라오.’
하지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노인처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민방위 4년차인 내게 민방위는 처음엔 시간 때우기였다. 하지만 민방위의 의미가 생각보다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더 이상 교육 시간에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가정의 가스안전문제, 화재예방을 위한 소화기 사용과 보관의 문제, 방독면 보급과 보관 및 사용의 문제, 그리고 내 집 앞 내 점포 앞 눈 치우기까지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자구책임을 알았다면 ‘배수구를 치우는 노인의 아름다운 손’이나 ‘민방위의 아름다운 3~40대의 반나절 교육’의 효과가 다르지 않음을 실감한다.
민방위 교육의 시간이 내 가정과 내 직장, 그리고 내 나라를 지키는 작은 실천임을 깨닫는 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배수구 쓸던 노인’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참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지금 집으로 향하는 내 머리 위로 구청의 플래카드가 살갑게 웃는다.
“내 집 앞 우리 동네 배수구 주변은 내가 치웁시다!”
수필과 소설은 ‘이야기하기 문학’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차이점은 소설이 허구라면 수필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선생님의 글은 과연 수필일까, 아니면 소설일까? 선생님은 소설과 수필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종이 한 장 차이, 세상에서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연성(蓋然性) 있는 허구? 거기 개연성이라는 게 바로, ‘있을 법한’이라는 뜻이라면 우리는 더욱 소설과 수필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글을 읽는 사람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수필은 언제나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선생님은 내게 언제나 백일장이나 공모가 있으면 내가 쓴 글을 메일로 받아 보셨다. 수정을 해주기도 했지만, 내 글이 부족하다 싶으면 내 글을 교정한 작품과 선생님 임의로 준비한 작품을 함께 보내는 배려를 하셨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고민을 항상 했고 결정을 못 내리면 엄마에게 또 문의했다. 엄마는 내게 선생님의 작품이 입상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백일장 당일이나 공모 시한이 되면 나는 엄마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내 또 다른 작품을 선택하고는 했다. 그것으로 나는 입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고 실제로 대부분이 백일장과 공모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을 하였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나는 점점 내 글이 좋아지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네가 쓴 거야?’
그날 수업 시간에 네이트 온을 하다가 부회장 백사라의 한 마디는 내게 그 중독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쉬운 길이 있는데 왜 돌아가느냐며 지금의 즐거운 감정을 계속 누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내 안의 두 감정이 서로 다투는 사이 나는 묘한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또 다른 중독, 의존의 시작에 불과했다. 아무튼 작문에 대한 나의 집착은 점점 심해져갔고, 입상의 달콤함에 대한 집착도 심해져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파랗던 오후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마도 비가 내일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