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네가 쓴 거야?
싸이 월드에 비밀 글이 남겨졌다. 사다예였다.
쌤 잘 지내세요~?ㅋㅋ보고 싶어요 ㅠ.ㅠ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는 순간순간 마다 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그리하여……
……
……
……저 사다예는수원대학교 비서과와
세종대학교 항공서비스과에 합격했어요!근데 어디에 가야 될지 모르겠어요.
수원대학교는 전통도 있고
서울 상대(?)라서 대학생활 재미는 없을 것 같아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종대학교는
어린이대공원역에 있어요!
인 서울! 그래서 전망 있어 보이고참~~
어디 가야 될지...!
암튼~
쌤 추운데 감기조심하시고요
제가 항상 행복가득 하길 기도하는 거 알졍?ㅋㅋ
따랑해요, 쌤~히히 ^^
사다예는 오늘도 역시 소설을 썼다. 아니 미래의 자신을 그려내고 있었다. 나름의 구성력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자기 또래의 글쓰기를 따른다는 점이다. 독서량이 서서히 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하기만 하다. 지난 번 국립전쟁기념관 주최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후로 글짓기에 재미를 붙였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사다예가 그 짝이다. 지금 사다예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나 스토리텔링학과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냥 직전에 발톱을 감추는 사자와 같이 지금 세종대학교와 수원대학교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것뿐이다. 서울에서 상당히 먼, 서울 상대 수원대학교는 마지노선임에 틀림없다. 1학년 때같았으면 수원대학교가 최종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다예에게 연세대학교라는 구체적 목표가 주어진 이상 사다예는 이제 예전의 게으른 전직 육상선수가 아닌 것이다. 스프린터같이 달려온 사다예의 길은 이제 마라토너처럼 장거리 경기에 어울리게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사다예는 단거리에서 장거리로 전환할 수 있을까? 단언하건대 나는 사다예가 스프린터에서 마라토너로의 변신을 확신한다. 다른 이들이 믿거나 말거나.
지금 사다예에게는 칭찬보다 채찍이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다예는 지금 벌써 내 울타리를 벗어나 버렸다. 정말 우연 치고는 대단한 우연이었다. 우리 학교 출신 문인이 국립전쟁기념관 주최 전국 글짓기 공모 최종심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사다예의 글이 좋기도 했지만 성인 학급 출신의 동문 선배의 입김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다예는 그 동문 선배에게 상장을 직접 받았다. 동문 선배는 사다예에게 전년도 수상자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진영 교감선생님, 송원규 목사님과 동문이 되는 거라는 말까지 해서 사다예를 한층 들뜨게 했다. 사다예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지금 발악을 하듯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혹시나 이러한 맹신이 사다예에게 씻지 못할 상처가 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불같이 노력하는 학생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다. 사다예에게 동문 선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과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반드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나 스토리텔링학과가 사다예 손에 잡힌 것도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다예의 작문 사랑은 그렇게 무한질주하고 있었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같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수요일 5교시 국어생활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제3정보처리실로 우리를 불렀다. 선생님은 ‘네이트 온’으로 회장 원세와 접속하셨다. 그리고는 원세에게 학급 명렬표를 보고 번호대로 한 명씩 대화에 들어오도록 하게 하셨다.
물론 이번 시간에는 일체 말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오직 글로만 수업을 해야 했다. 지난 시간 선생님께서는 프로젝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기시고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내일 수요일 5교시에는 글로만 수업한다. 일체 말은 사용할 수 없다. 제3정보처리실로 오기 바란다.
수요일. 5교시 수업은 도시락 급식 이후라 졸음이 몰려오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말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셔서 우리는 정말 답답했다. 선생님은 다음 화면을 보여 주셨다.
다음 작품을 변용하여 대화에 참여할 것.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 최영미, [지하철에서1] 전문.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신음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불만은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말을 하지 않고 수업을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나는 부회장 사라에게 불만의 글을 날렸다.
사다예(Four many yes)
이게 말이 되냐고, 왜 말을 못하게 하냐고? 열여덟!
백사라(BSR-Angel)
참아!
사다예(Four many yes)
그것도 국어생활시간에, 완전 맛 간다.
백사라(BSR-Angel)
입이 근질근질하긴 해!
사다예(Four many yes)
OTL--
백사라(BSR-Angel)
ㅠㅠ
사다예(Four many yes)
아무튼 패러디나 해야지.
백사라(BSR-Angel)
사다예, 네가 쓴 거야?
사다예(Four many yes)
뭘?
백사라(BSR-Angel)
아니, 그거? 담샘이 본다. 나중에--
사다예(Four many yes)
?
아이들의 글이 하나씩 원세와 선생님 사이에 조인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혹은 더디게 올라오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쉽게 적응을 한다. 벌써 11년 동안 학교 교육의 틀 속에서 어떻게든 단련된 아이들이었다. 물론 시가 짧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들의 국어 생활 열린 수업은 진행 되었다. 종(種)의 노예!
현우(현자)님이 대화에 참여하였습니다.
현우(현자)
나는 먹었다,
바퀴벌레들이 버스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을.
미희(똘똘이 스머프)님이 대화에 참여하였습니다.
미희(똘똘이 스머프)
나는 잡았다,
밥그릇 다툼하는 벌레들의 진흙탕 싸움을 ^^
수정(우유빛깔 수정이)
나는 보았다,
아마조네스들이 밥벌이로 사냥하는 것을*
건희(Play Gun)
나는 보았다,
아빠돼지가 밥그릇을 아기돼지에게 양보하는 것을.
나영(Fly Young-Gold)
나는 들었다,
식충이들이 소시지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다빈(All Empty)
나는 보았다.
식충이들이 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동률(Same Law)
나는 보았다,
덩파리들이 변소로 날아가는 것을^^
동우(Big Pig)
나는 그린다,
밥벌레들이 뷔페에서 환장하는 것을^^
민영(태왕사신기)
나는 들었다,
식벌레들이 베이컨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병소(Noodle Hair)
나는 보았다,
식벌레들이 베이컨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마선생(madangsoi)
비양심, 민영+병소 ^^
민영(태왕사신기)
허걱 ^^;
병소(Noodle Hair)
뜨끔 ^^;
성훈(Army-나 군대 가, 바로)
나는 보았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벽돌집에 들어가는 것을.
태수(고독한 Boxer)
나는 들었다,
밥충이들이 긴 소시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하은(Smile Artist)
나는 보았다.
쌀벌레들이 통단무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나(Power Police)
나는 잡았다,
밥벌레들이 김밥 속으로 기어가는 것을--
형준(꿈꾸는 검투사)
나는 잡았다.
우리 엄마의 아름답게 살짝 처진 뱃살을^^;
마선생(madangsoi)
^^엄마한테 혼나겠다.
형준(꿈꾸는 검투사)
^^엄마도 아는 뎅...
마선생(madangsoi)
재미는 있다 ^.^
효진(내 생의 마지막 뮤지컬)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광열(Soccer Boy^^)
나는 보았다,
바나나처럼 휘어가는 카를로스의 UFO 슛을.
마선생(madangsoi)
뭐야?
광열(Soccer Boy^^)
축구밖에 몰라서요^^
마선생(madangsoi)
으이구**
승지(No Touch)
나는 맡았다,
밥순이들이 아궁이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마선생(madangsoi)
허걱^^ 아궁이 속에? 엽기다!
승우(Money is everything)
너는 보았니?
밥벌레들이 장지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훈(Make up face)
나는 보았다,
화장 남자의 아름다운 머릿결을^^
기준(내일은 요리왕)
나는 보았다,
빵벌레들이 오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
우리들에게 수준 높은 수업 내용일 수도 있었지만, 아주 짧은 작품 분량 때문인지 아이들의 패러디(Parody)는 쉽게, 아주 쉽게 스크린에 나타났다가 서서히 또는 빠르게 화면에서 사라져갔다.
성주(세종대 호텔조리! 찐빵맨), 재민(먹깨비), 정훈(선도부장 이만 삼천 원), 기창(부시맨), 다예(Four many yes), 준원(외로운 천재 사랑 사냥꾼), 태영(큰형님), 영재(외로운 공무원), 원세(교실 안에 동그라미 세 개^^), 평안(고독한 DJ), 세현(8교시), 보람(언니 짱), 준상(주운 사앙~), 창민(릴레이 1등), 상규(TSM(도쿄스쿨뮤직) - 스미마생), 재선(잘난 비평가), 정숙(깐깐한 정수기), 태녕(지각대장 생활부장), 다혜(붉은 안경), 지호(Stop Ho), 진환(분리수거 맨), 성호(필기시험만 1등), 용태(Dragon T), 사라(BSR-Angel), 민호(피어싱 맨), 선숙(원세 마누라), 윤철(Painting Boy), 지현(아름다운 밤이에요 - 장미희), 1 솔(쌍둥이자리), 승현(제주도 간 걸로 해주세요, 제발), 상범(Red Pig), 태훈(기타는 내 운명)의 작품이 차례로 지나갔고 선생님께서는 예리한 눈으로 친구들의 작품에 조언을 해주시거나 표절작을 골라내셨다. 수업은 생각보다 길어져서 5교시 수업종이 나서도 2, 3분간 계속되어서야 끝이 났다. 선생님은 다음 시간 과제를 내 주고는 수업을 마쳤다.
마선생(madangsoi)
다음 시간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다행시를 써 오세요. 오늘과는 반대로 다음 시간에는 글은 절대 쓸 수 없고 오직 말로만 하는 수업을 진행합니다. 수행평가 점수는 다음 시간 시작과 함께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수고했습니다. 이상, 컴퓨터를 끄고 의자를 넣고 교실로 가세요. 제3정보실을 나서는 순간 여러분은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곳에서 말을 하면 감점입니다!
제3정보실을 나오자 아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말을 하라고 했더니 웬 소리를 지르느냐며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제3정보실 문을 잠그고 교무실로 가고 우리들은 우리 교실로 돌아갔다. 말을 하지 못한 50분이 몹시도 길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말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라는 의미로 우리에게 이런 수업을 시킨 걸까? 하면서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평소 수업시간에 말이 없던 아이들도 글로 하는 수업에는 모두가 쉽게 적응했다. 뭐든지 문자로 하는 게 익숙한 엄지족, 신인류의 자판(字板) 문화, ‘치다’ 문화 덕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키보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언어는 말보다 글에 가깝도록 진화하게 한 모양이다. 인류의 진화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인류는 지금 또 한 번 정보화 혁명 속에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엄지 족으로.
나, 사다예는 떳떳하다?
5교시 수업 시간에 메신저로 부회장 사라가 한 말은 무슨 뜻일까? 무얼 내가 썼다는 것인가? 물어볼까 하다가 학원 시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학원에서도 궁금해서 부회장 사라에게 문자를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네가 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