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메기의 추억
선생님은 나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만 계시겠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선생님이 담배를 끊은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내가 지각을 끊었다는 것은 선생님과 또 다른 인연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미꾸라지 양식하는 방법에서 연상하여 ‘메기의 추억’이란 수필을 쓰셨다. 이 수필을 통해 선생님은 적당한 긴장이 사람을 약육강식의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보약이며 보험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미꾸라지 농사를 짓는 이가 있다.
무농약 재배니 친 환경 농법이니 해서 오리 농사에서부터 우렁이 농사까지, 다양한 농법이 개발되고 있으니 미꾸라지 농법이라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꾸라지를 키울 때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를 함께 기른다는 점이다.
메기는 미꾸라지의 천적으로 식욕도 왕성하고 번식력도 강해서 설마 그렇게까지야 할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메기를 딱 한 마리만 키운다고 한다. 이 한 마리의 메기는 미꾸라지를 멸종시키리라는 우려와는 달리 미꾸라지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물론 희생이야 생기겠지만 미꾸라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먹고 더욱 열심히 움직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미꾸라지 양식장에서 더욱 건강하고 육질이 좋은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도 바로 이러한 메기의 추억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한다. 적당한 ‘긴장’이 주는 생의 뻐근함 말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게다가 5일 근무하고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봉급마저 남들만큼 받고 퇴직도 60세 이후가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긴장의 뻐근함을 즐겨야 한다.
물론 즐길 수 없는 긴장이라며 우리 스스로에게 보다는 상사나 오너를 탓하고 ‘호박씨’를 까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그렇다고 오너를 탓할 수야 없지 않는가? 그들의 말처럼 ‘사원들은 자신의 월급에 목을 매지만, 사장은 전사원의 월급을 주기 위해 다달이 목을 맨다!’는 말은 오너들 나름의 고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너들의 취향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탈을 꿈꾼다.
일탈(逸脫)!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란 의미의 사회학적 용어인 일탈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내 일상으로부터의 잦은 일탈은 내 자리를 직장으로부터 빼버리게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책상을 빼게 하는 것, 그건 절망의 검은 빛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탈을 꿈꾸는 것이지, 일탈을 실행하지는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일탈, 즉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사회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메기의 추억’을 활용하고, 아울러 이용할 필요까지도 있다.
상사나 오너가 하는 잔소리들을 철저하게 무시하자. 그러면서도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나름대로의 실적을 준비하자.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건강한 미꾸라지로 환골탈태(換骨奪胎) 하자는 것이다. 가끔씩 잡혀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하지만 강한 유유(幽幽)함으로 상사나 오너의 손아귀를 강한 부드러움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패배가 아니라 승리의 몸부림을 우리는, 상사나 오너의 손과 머리, 그리고 가슴에 각인(刻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작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메기의 두려움을, 메기의 추억으로 만드는 용기야 말로 평생직장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 시대의 그 절망의 순간에 선 우리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장밋빛 내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꿈틀대면서 장남평야를 유영하던 미꾸라지와 그 미꾸라지를 살찌게 했던(자의든 타의든) 메기의 추억이 스크린처럼 가슴 속에 뜨거운 열기로 스멀거리는 이 짜릿한 느낌을 나는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작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작문이 정말 어려운 줄 알았다. 패러디와 다행시(多行詩)를 처음 접했을 때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장난이나 치는 하찮은 존재들로 보였다. 하지만 이미지 맵을 통해 어휘력이 향상되면서 패러디와 다행시(多行詩) 쓰기는 구성력과 상상력을 탄탄하게 해주었다. 장난처럼 다가온 작문이 진지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밋밋하던 뱃살이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초콜릿 복근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처럼 신기하고 희한한 일이 내게 기적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지각을 끊자 내게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내 독서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늘어난 독서량은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진화시켰다. 이해력과 비평력이 향상되었으므로 독서하는 방법도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말 그래도 선순환이 이어졌으므로 나는 정말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내 마음 속에서부터 푸르게 느껴지고 있었다.